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수필 Mar 10. 2023

#6. 소문의 위력

소설 연재/  빨간 지붕에 숨어

식당의 일과는 오전 11시부터 시작된다.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해국의 열정이 절정에 치닫았던 영업 첫 주에는 오전 9시부터 손님을 기다렸다. '오늘은 오겠지', '내일은 오려나' 하는 마음으로 꼬박 일주일 아침을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하지만 열흘이 지나고 보름이 흘러가도록 기대는 채워지지 않았다. 아무리 빨라도 12시께는 돼야 첫 손님을 맞을 수 있었다. 실망스럽긴 해도 낙담하진 않았다. 그 정도는 버틸만한 수준이었다. 진짜 심각하게 장사가 안 되는 날에는 오후 다섯 시에 문을 닫은 적도 있다. 그래도 울진 않았다. 세상 일이라는 게 원래 그렇지 않은가. 내 몸도 내 의지대로 안 될 때가 있는데 하물며 타인이다. 불특정 다수의 행동력이 계산대로 척척 들어맞길 바라는 건 애초부터 어불성설이었다는 걸, 해국도 모르진 않았지만, 세상은 각오했던 것보다 훨씬 더 냉담했다.


"엄마... 아무래도 영업시간을 조정해야겠지?"


스물아홉이면 다 큰 성인이지만, 해국은 여전히 엄마가 필요하다. 하는 일이 엉킬 때나 풀릴 때나. 사는 게 지루할 때나 재미있을 때에도. 모든 날 모든 순간에 그 이름을 찾게 된다. 돌아가신 엄마가 어디선가 지켜보고 계실 거라 생각하면, 그저 생각만으로도 공연히 위로가 된다. 텅 빈 공중에 대고 "엄마, 어머니, 나의 모친..." 을 쏘아 올리고 나면, 어지럽게 둥둥 떠 있던 감정들이 필터로 곱게 걸러지는 것만 같다. 그 덕에 견딜 수 있었다.


오전 9시 영업개시. 말은 쉬워 보였지만, 그 시간에 문을 열려면 식당 주인은 새벽형 인간이 되어야만 한다. 시간에 가속이라도 붙는 건지 아침나절에는 한 시간이 십 분처럼 휘발된다. 매일 오전 다섯 시에 눈을 뜬 해국은 반쯤 감긴 눈꺼풀을 하고선 동틀 녘의 카렐교를 내달렸다. 그렇게라도 운동을 하지 않으면 체력이 금방 바닥날 걸 알기에 아무리 귀찮아도 아침 조깅은 거르지 않으려 했다. 흥건하게 땀을 뺀 후에는 토스트나 시리얼로 아침밥을 때우고, 늦어도 7시 전에는 가게에 당도했다. 재료 손질부터 양념 준비, 육수 끓이기와 같은 밑작업을 하다 보면 두 시간도 태부족이었다. 하지만 암만 부지런을 떨어도 드라마틱한 변화 같은 건 일어나지 않았다.


"차라리 잘됐지 뭐. 엄마도 그렇게 생각하지? 아들이 조금이라도 더 잘 수 있잖아."


대여섯 살 무렵이었나. 어렴풋이 남아있는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목말을 타며 느꼈던 넓고 단단한 어깨의 감촉. 그게 전부다. 원망도 미움도 그리움도. 추억이 뒷받침 돼야 가질 수 있는 감정이기에. 해국에게는 아버지에 대한 그 어떤 것도 남아있지 않다. 대신에 어머니가 아버지였고 형제였고 친구였고... 온 우주였다. 그래서 그녀에 관한한 그 어떤 것도 잊을 수가 없다. 잃을 수가... 없다.  


지금 와 돌이켜보니, 일러도 너무 이른 나이였다. 소위 말하는 한창때 남편과 사별한 그녀는 슬퍼할 겨를도 없이 생계전선에 뛰어들었다. 마음먹기에 따라 팔자를 고칠 수도 있었지만, 그 선택은 하지 않았다. 왜 그러셨냐고 언젠가 한 번은 꼭 묻고 싶었는데. 답을 들어보기도 전에 성급한 이별이 왔다. 아들의 뒷바라지와 밥장사로 평생을 보낸 어머니. 누구보다 그 인생을 잘 안다고 자신한 해국이지만, 완벽한 오만이었다. 보는 것과 겪는 것은 허탈하리만큼 다르고 다른 일이었으니까.



"... 어서 오세...요"



현재 시각은 오전 10시 20분. 해국은 지금 자신의 눈을 의심하는 중이다. 헛것을 보고 있는 건 아닐까. 염원이 빚어낸 환영 같은 건 아닐까. 카운터 옆에 놓아둔 손바닥만 한 탁상시계를 몇 번이고 힐끔거리기 바쁘다. 영업시간보다 40분이나 먼저 찾아온 손님. 프라하에서 밥장사를 시작한 지 오늘로 딱 31일 째 되는 날인데. 이 시간에 손님을 받아보는 건… 아무리 기억의 페달을 밟고, 앞으로 감고 또 되감아봐도, 오늘이 처음이다.


"여기가 마민카군요. 사진보다 더 아늑하고 좋네요."


겉으로는 애써 태연한 척 맞이했지만 사진,이라는 말에 해국은 내심 당황하고 있다.


"사진이요? 어떤 사진을 말씀하시는 건지..."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사진요. 요즘 꽤 자주 올라오던데요?"


인스타그램? SNS? 그런 세계가 있다는 건 안다. 해국의 관심사는 아니지만 주위에서 워낙 말들이 많으니 모르려야 모를 수가 없다. 온라인 시장에서 거대한 인적 네트워크가 형성되고. 그 안에서 '나'를 드러내기 위해 그럴싸한 사진들을 경쟁적으로 올리고. 인친이니 팔로우니 인플루언서니. 해국은 듣기만 해도 어지럼증이 돋는 낯선 세계. 그럴 수만 있다면 언제까지고 발을 들이고 싶지 않은 딴 나라 이야기를, 자신의 공간인 마민카 식당에서, 오늘의 첫 손님과 함께 나누고 있다.


"인스타그램에서 여기가 프라하 신상 맛집이라고 난리들인데, 모르셨어요?"

"….. 제 가게가요?"


꽉 채운 한 달 만이다. 오전에 마수걸이를 해보는 게 목표라면 목표였는데. 오늘 이룬 작은 성취의 배경이 SNS였다니. 역시 그런 걸까. 홍보의 문제였던 걸까. 영업 철학이라고 하기엔 거창하지만 마민카 식당의 주인으로서 해국은, 맛으로만 승부하는 정직한 경영을 추구한다. 뜬구름을 잡는 것도 아니고, 고민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불안할 정도로 손님이 뜸한 날에는 스마트폰을 들고 한 시간을 꼬박 망설인 적도 있다. 모바일 홈화면에 깔려있는 앱스토어에 클릭한 다음, 검색창에 '인스타그램'이라는 다섯 글자를 기입한다. 마지막으로 다운로드 버튼 하나만 누르면 온라인 홍보의 길이 열린다는 걸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어쩐지 그런 쪽으로는 내키지가 않았다. 만약 그 모습을 지호가 목격했다면 "이 형, 배가 덜 고팠네. 역시 고리타분하다니까." 라며 핀잔을 주었을 것이다.


"불고기 김밥이랑 떡볶이로 할게요. 그리고 비렐은... 포멜로 있나요?"


비렐(Birell)은 체코의 무알콜 맥주 브랜드인데 종류가 꽤 다양하다. 구수한 듯 쌉싸름한 오리지널부터 청보리 맛이 나는 것도 있고, 세미다크 버전도 있지만, 포멜로(Pomelo)가 특히 인기다. 자몽 계열의 열대과일인 포멜로는 상큼한 과일향 때문인지 여성 손님들이 무척 좋아한다. 주문을 받은 해국은, 가벼운 몸짓으로, 냉장고에 넣어둔 차가운 포멜로 캔 하나를 꺼내어 길고 투명한 유리잔에 따르고 있다. 폭신하게 부푼 하얀 거품 아래로 시원한 노랑이 일렁인다. 일반적인 맥주색은 아니다. 그보다는 과일주스에 가까운, 말하자면 레몬색과 유사하다. 공교롭게도 음료를 주문한 손님의 네일 컬러와 비슷해서 잔을 쥘 때마다 손톱이 포멜로 속으로 잠기는 것 같은 착시가 일어난다. 더 신경이 쓰이는 건 사실 티셔츠다. 프라하에 사는 젊은 여성들은 배를 내놓고 다니는 걸 아무렇지 않게 여기는 건지 '크롭트 톱'을 즐긴다. 베어내다, 잘라내다,라는 의미가 들어간 크롭트 톱(cropped top)은 길이가 짧은 상의류를 총칭하는 패션용어다. 심지어는 지금 같은 겨울에도, 이렇게 시린 1월에도, 복부를 훤히 드러낸 여인들을 심심찮게 보게 된다. 그나마 오늘은 바람이 잠잠하고 볕이 따사로운 편인데. '그래서 이때다, 싶었던 걸까. 아니면, 오후에 파티라도 잡혀있나?'라고 해국은 머릿속으로 몰래 퍼즐 조각을 끼워 맞추는 중이다.  


"잘 먹었어요. 영수증은 됐고요. 얼마 전에 K-예능을 몇 편 봤는데요. 김밥하고 떡볶이를 참 맛있게 먹더라고요. 방송이라 오버하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진짜 맛있네요."    


흡족한 표정을 보니 겉치레로 하는 말 같지는 않다. '다행'이라는 말. 지금 해국의 머릿속에는 이말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사실, 불과 어제까지만 해도 후회 일색이었다. 비록 9급이긴 했지만 공무원이었다. 제 발로 철밥통을 걷어찬 것도, 프라하까지 날아온 것도, 말도 잘 안 통하는 해외에서 밥집 사장이 되겠다는 마음도... 전부 다 섣불렀고 무모했다고 스스로를 호되게 나무랐다. 그런 마음으로 다그친 게 불과 어제의 일인데, 하루 만에 이런 일이 생기다니. 이렇게 금방 마음이 녹다니. 아무리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게 사람의 일이라지만 그래도 이건 좀 너무한 게 아닌가. 오늘 이런 반전이 찾아올 줄 알았더라면 어젯밤 그렇게까지 자책하지는 않았을 텐데 말이다.


금발 머리에 노란 손톱을 하고선, 레몬색 무알콜 맥주와 K-푸드를 싹쓸이하고 간 그녀. 프라하의 낭만을 먹고 자랐을 배꼽티의 자유영혼인 그녀는 10시 20분 께 들어와 마수의 기쁨을 안겨주고, 12시가 채 되기 전에 자리를 비웠다. 썰렁한 허리 위로 도톰한 블랙 점퍼를 무심히 걸치며 이렇게 인사했다.


나 스클레다노우!

Na shledanou!


"안녕히 계세요"를 뜻하는 말. 나 스클레다노우. 해국도 그녀의 인사에 친절로 화답하며 입구까지 나가서 배웅을 했다. 골목 끝자락까지 걸어가 모퉁이 뒤로 멀어질 때까지 지켜보았다. 그러는 동안에 물음표 하나가 차올랐다. 이 감정의 이름은 뭘까. 벅참? 성취감? 그것도 아니면 안도? 뭐라고 꼬집어서 설명할 수는 없지만 오늘은 여느날과는 느낌이 사뭇 다르다. 왠지 출발이 좋다. 이러다 금방 또 실망할 수도 있겠지만, 설령 그렇다고 해도 지금의 이 감정을 깨고 싶지는 않다. 단전에서부터 끌어 오르는 벅찬 흥을 동력 삼아 비장하게 행주를 집어든다. 전에 없이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테이블을 박력있게 쓱쓱 닦아본다. 물리적으로 닦이고 있는 건 테이블이지만, 꼭 그렇다고 볼 수만은 없는 게... 식탁을 닦을수록 윤이 나는 건 깎인 나무가 아니라 해국의 기분이었다. 붉은 소스만 덩그러니 남아있는 빈 그릇과 오렌지색 립스틱 자국이 묻은 비렐 잔은 재빨리 주방으로 가져가 뽀드득 소리가 날 때까지 씻어서 고이 엎어 놓았다. 그런 후에는 가게 안을 어슬렁거리며 흐트러진 물건들의 각을 잡는다. 그러고도 시간이 남자, 자연히 스마트폰으로 눈이 간다. 온라인에 떠돈다는 마민카의 사진들을 찾아보려 검색 엔진을 돌리던 참인데,


"Dobre rano.(좋은 아침)"

"안녕하세요~"

"Hello~"


12시. 점심시간의 시작과 동시에 행렬이 시작됐다. 손님이 줄을 잇는다는 게 어떤 건지, 해국은 오늘에서야 그 말의 참 뜻을 체감하게 되었다. 현지인, 한국 사람, 관광객 할 것 없이 국적 불문의 세계인이 마민카식당으로 몰려들고 있다. 손님이 오는 건 당연히 반갑고 기쁜 일이다. 해국이 늘 꿈꿔왔던 순간이기도 하다. 하지만 뭐랄까 어안이 벙벙하기도 하고 당혹스럽기도 하고 뭐에 씌인 것 같기도 하고, 여러모로 심경이 복잡해졌다. 우선적으로는, 납득하기가 어렵다. 누군가 일부러 꾸며낸 상황은 아닐까. 해국은 끊임없이 의심의 레이더를 돌리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누가 봐도 이건 자연스러운 흐름이 아니다. 요즘 식으로 말하자면, 일부러 작정을 하고 돈쭐 내러 온 것 같은 기분마저 든다.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해국의 심증일 뿐이지만.


"네! 지금 갑니다. 잠시만요~"


오픈 런을 시작으로 저녁 장사를 앞둔 오후 5시까지, 해국은 엉덩이 한번 붙일 새도 없이 뛰어다녔다. 그러다 잠깐씩 정신이 드는 순간이 있었는데, 그럴 때는 지호를 생각했다. '이 녀석은 한가할 때는 줄기차게 드나들더니 오늘따라 왜 이렇게 잠잠한 거야.' 와 같은 푸념이 자신도 모르는 새에 튀어나왔다. 머릿속에는 주문서가 어지럽게 포개져 있고, 공기 중에는 체코어와 영어와 한국어가 어지러이 난무했다. 차라리 철인3종경기를 치르는 게 낫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살인적인 체력전을 치러냈다. 오롯이 혼자서 평소 매출의 3배를 감당한 것이다.


'정말로 이게 다 소문의 위력인 걸까.'


오전에 다녀간 배꼽티 그녀의 말대로 온라인이든 어디든, 진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게 틀림없다. 그렇지 않고서야 갑자기 이럴 수는 없다고, 해국은 점진적으로 의심을 확신으로 굳히는 중이다. 그런데 왜일까. 이런 상황이 오면 마냥, 한없이, 그저 뛸 듯이 기쁘기만 할 줄 알았는데... 마음이라는 게 그렇게 단순할 수가 없다는 걸, 오늘의 경험이 알려주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