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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노담, 그러나 노답

잘하는 게 아무것도 없습니다

by 김수국 Jun 29. 2021



   "너는 잘하는 게 뭐니?"라고 물었을 때, 바로 대답이 나오는 사람이 부럽다. 그게 어떤 것이 됐든 말이다. 나는 아무리 생각해 봐도 없으니까. 유년 시절의 나는 피아노 치기를 좋아했는데, 덕분에 나의 첫 꿈은 피아니스트였다. 하지만 엄마가 학원을 그만 다니자고 권유하셨다. 그 말은 내게 하루 아침에 떨어진 날벼락 같았다. 선생님이 재능이 없다고 하셨단다. 그래서 피아노 학원을 잠시만 다녀도 다 나간다는 그놈의 콩쿠르 근처도 못 가 봤다. 무려 5년이나 다녔는데! 나도 드레스 입고 남들 앞에서 연주해 보고 싶었는데! 줄리어드 음대에 가야 한단 말이에요. 엄마는 조를 기회조차 주지 않고 나를 교과 종합학원에 보냈다.  

  학창 시절에는 중위권이라고 말하기에는 잘하고, 상위권 학생이라고 말하기에는 모자란 그 어중이떠중이였다. 공부를 확 못 하면 적성이라도 찾고, 공부를 잘하면 좋은 대학에 진학할 텐데. 어째 그런 와중에 중학생 때 너무도 강렬한 은사님을 만난 나머지 꿈이 교사가 되어 버려서 성적에 맞는 지방의 한 사범대에 진학했다. 가서 보니 수능 성적은 내가 좋았을지언정, 나는 교수 능력도 부족했고, 딱히 재능도 없었으며, 특출 난 머리나 끈기가 없었기 때문에 보기 좋게 임용시험에서 거듭된 고배를 마시며 ‘고시 폐인’이 되고 말았다.

  사람은 저마다 잘하는 게 하나 정도는 있다고 하던데, 내게는 어째 아무것도 없었다.  



  이룬 것도 없다. 고용보험에 가입이 되었던 이력을 ‘영끌’해서 합치면 2년 4개월이다. 남들은 자산을 영끌해서 집을 산다는데 나는 스펙 부족, 학점 개판, 자격증 없고, 학벌 안 좋고, 외적으로 뛰어난 것도 없으며, 타고난 재능 없고, 노력도 끈기도 부족하다.



  하고 싶은 게 없다. 잘하는 게 뭐냐는 질문보다 하고 싶은 게 뭐냐는 질문에 사람들은 더 쉽게 대답을 하지만 나에게는 이조차도 어려웠다.


  "니는 제일 하고 싶은 게 뭐고?"

  "없는데요."


  아빠는 마치 드라마나 영화에 나오는 ‘느그 아부지 뭐 하시노?’와 같은 톤으로 물어보셨고, 내 대답을 매번 답답해하셨다. 나는 아빠가 하는 질문 중 저 질문이 가장 싫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모르겠는데, 하고 싶은 게 뭐냐고 묻는다고 자판기처럼 툭 나오는 건가. 내 친구들은 저마다 꿈이 있는데, 나는 꿈을 버렸으니. 아마 아빠는 ‘느그 딸 뭐 하노?’ 하는 질문이 가장 싫었을지도 모르겠다. 나를 노량진으로 보내 놓고, 잠깐 만나러 왔을 때 친구와 통화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우리 딸? 서울에 있지, 뭐." 하시더라. 아빠 친구분은 내가 서울에서 취직한 줄 아셨을 거다. 시험에 계속 떨어지고, 취직도 못 하는 딸이라 부끄럽고 죄송했지만 어쨌든 상황은 변하지 않았다.



  노력하기도 싫다. 하지만 돈은 많이 벌고 싶다. 이 얼마나 철딱서니 없는 생각인가. 어린 시절의 나는 내가 월 4천 정도는 버는 사람으로 자연스레 성장할 줄 알았다. 그런데 공립학교 교사가 꿈이었다니. 어떻게 보면 정말 창의적인 꿈이다. 지금 내 장래 희망을 쓸 기회가 있다면 돈 많은 백수라고 쓸 거다. 그런 밋밋한 인생을 살아서 어떡하냐고, 사람은 일을 해야 한다고 다들 말하는데 백수가 우울한 건 돈이 없는데 시간은 흐르고, 나이가 많아지면서 상황이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돈 많은 부자 백수라면, 돈 때문에 하지 못했던 배움이나 활동들을 마음껏 하면서 '24시간이 모자라'를 외치며 누구보다 바쁘게 살 수 있을 거다.



  그래도 내가 쟤보다는 낫지의 ‘쟤’를 맡고 있다. 직업상담사도, 난생 처음으로 본 신점도 나는 참 어렵다고 했다. 듣고 싶은 말을 들으려고 했던 것은 아니지만, 내가 그렇게 '노답'의 인생이구나 하는 것을 확인받은 기분이라 썩 유쾌하지는 않았다. 시간이 지나니 슬슬 반발심이 들었다. 정말 내가 노답이고, 최악의 인생을 살고 있는가. 정말 아무 재주도 없으며, 무능한가. 꿈을 버린 대가가 이렇게 큰 건가.



  "꿈을 버리고도 살 수 있나요?" 이에 대한 답은 사실 많은 사람들이 "그렇다."고 대답하고 있는데, 하나만을 바라보고 쫓아온 나에게는 왜 이렇게 어려울까. 우물 안 개구리가 세상으로 나오기 위해서 폴짝폴짝 뛰고 있는 것 같다. 그 벽은 너무 높고, 너무나 두꺼워 보였다. 그렇다면 벽을 뛰어넘는 게 아니라, 뚫어 버리면 어떨까. 은혜 갚은 까치가 머리로 종을 들이받았듯이 구멍이 뚫려 그 사이로 빛이 들어오기를 바라면서. 우물 안 개구리의 도약은 이렇게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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