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남편과 사이가 참 좋다. 우리가 사이가 좋은 건 늘 각자의 기호를 존중해주기 때문이다.
17년째 함께 사는 우리는 자연스럽게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살아간다. 그건 서로 약속을 한 것도 아니고 마치 남한과 북한 사이에 DMZ가 있듯이 천연 자연의 평화 지구로 평화를 유지하는 것과 같다.
17년째 함께 따로 또 같이를 유지하면서 살아가는 이 날이 오기까지 쉽지만은 않았다. 여느 부부와 마찬가지로 산 넘고 물 건너 수없이 잔잔한 다툼을 겪고 화해하는 일을 반복하다 보니 서로에게 필요한 적당한 공간을 가지게 되었다.
이 평화지구는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시간의 흔적이자 묘한 균형감을 안겨준다. 하루 이틀 살아가면서 사람과 사람 사이의 섬이 필요하듯이 부부간에도 필요한 평화지구가 있었던 거다.
우리의 평화는 전쟁의 시간과 고단함을 견뎌낸 후 얻은 열매이다. 잠시 보면 눈에 넣어도 안 아플 것만 같은 예쁘고 귀여운 아기가 울거나 짜증을 내기 시작하면 다시 아이의 쌔근쌔근 잠든 모습을 보기 위해서 인내의 시간이 필요하다. 아이의 울음소리는 평화지구의 평화를 예고 없이 깨고 끝을 알려주지 않고 울려 퍼진다.
깊은 잠에 빠져있던 나에게 어떤 예고도 없이 칭얼거리기 시작하는 아기의 소리는 때론 회피하고 싶은 업무가 되곤 한다.
'어떻게 부모가 그럴 수가!'라는 놀라운 일들이 내 마음속 전쟁터에서 벌어진다. '일어날까? 그냥 잘까?' 소리 없는 눈치 전쟁이 시작된다.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제발 좀 일어나라'는 소리 없는 외침이 계속된다. 아기는 엄마, 아빠가 눈치게임을 하는지 모르는지 점점 더 크게 울기 시작한다.
잠결에 눈치 전쟁에서 진 1인은 억지로 몸을 일으켜 반쯤 뜬 눈으로 아기의 기저귀를 확인하고 입술에 손가락을 가져가 대 본다. 배고픈 아기는 손가락을 빨려고 입을 열심히 움직인다.
모유수유를 하는 경우엔 엄마가 백전백패이고 아기가 분유도 먹는 경우엔 몸이 먼저 움직여진 사람이 패자다.
아기가 밤에 곱게 잘 때까지 매일 밤마다 전쟁은 계속되고 엄마와 아빠의 눈치게임은 갈수록 과열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