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아이를 낳고 달라진 것들

by 새나

나는 25살에 결혼하고 26살에 큰 아이를 낳았다. 흔히 말하는 뭘 모르고 결혼해서 뭘 모르고 아이를 낳은 경우이다.

불행 중 다행으로 친한 친구들이 결혼을 비슷한 시기에 하고 아이도 비슷한 시기에 낳았다. 그래서 혼자만 다른 세상에 사는 줄 모르고 살았던 거 같다. 큰 애를 낳았을 때는 대학원에 다니고 있었다. 사실 공부하기도 바쁜데 아이를 낳아서 휴학을 하고 아이를 키웠다.


누구나 첫 아이를 키울 때는 허둥지둥 당황하는 일이 한두 번이 아니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처음에는 아이가 우는데 도대체 왜 우는지 알기도 어려워서 같이 울고 싶어졌다.

산후조리원 신생아실에서 근무하는 선생님들은 아기 목욕도 척척 시키시는데 나는 남편이 집에 있을 때만 아기 목욕을 시켰다. 남편이 늦게 오면 기다렸다가 같이 목욕을 시키든지 가제손수건에 따뜻한 물을 묻혀서 간이 목욕만 해주기도 했다.

큰 아이를 낳고 나니 내 삶의 모든 것이 달라졌다.


나는 뭐든지 계획을 세우고 실천하려고 노력하는 편이었고 하루 종일 있었던 일들을 꼼꼼하게 다이어리에 적는 습관이 있었다.

그런데 순간순간 많은 일이 내 계획과 상관없이 일어나고 잠도 밥도 화장실에 가는 일 조차도 아기의 일정대로 맞춰야 하는 삶을 살게 되었다.

다른 것보다 잠을 아기에게 맞춰서 자야 하는 것이 잠이 많은 나에겐 가장 힘든 일이었다.

나의 욕구보다는 아기의 욕구를 우선으로 하는 삶을 살게 된 것이다. 아기를 보다 보면 참 소중하고 예쁘다고 느꼈지만 눈물 나게 나를 힘들게 하는 존재라는 생각도 들어서 잠깐이지만 산후우울증을 겪기도 했다. 머리로는 하나도 안 슬픈데 눈물이 줄줄 흘러내리는 묘한 경험을 하게 되었다.

남편이 산후조리원에 같이 있으면서 나를 안정시켜 주었고 함께 아기를 보면서 조금씩 괜찮아졌다.

아내의 산후우울증에 가장 좋은 처방은 남편의 관심과 돌봄이다. 아기를 낳고 나서 산후조리를 하면서 엄마가 해야 할 일은 참 많다. 내 몸 추스리기도 바쁜데 아기 수유를 해야 하고 때마다 몸 건강을 위해서 미역국과 밥을 먹어야 한다. 아기 먹일 젖이 잘 나오게 하기 위해서 입맛이 없어도 잠이 쏟아져도 밥은 챙겨 먹어야 한다.


큰 아이를 낳고 나서 내 삶의 선장은 내가 아닌 아기가 되어버렸다. 새로운 선장에 적응하느라 꽤 시간이 걸렸던 거 같다.

아기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아기의 울음소리에 따라 어떤 욕구로 인해서 우는지 알게 되면서 큰 아이를 키우는 건 훨씬 수월해졌다.

졸려서 배고파서 쉬나 응가를 해서 때론 딸꾹질을 하느라 아니면 소화가 잘 안 되어서 아기가 우는데 말로 설명해주지 않는 아기가 우렁차게 울기 시작하면 초보 엄마 아빠는 당황하기 마련이다.

당황하지 말고 아기에게 말을 건네면서 천천히 아기의 욕구를 해결해주면 아기와 부모가 좀 더 편안한 관계를 가질 수 있다.

내 인생의 선장이 내가 아니라 아기라는 걸 인정하고 적응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만 새로운 가족이 된 아기와 하루하루 살아가다 보면 누구나 적응하게 된다.

조급한 마음을 내려놓고 하루하루 사는 일에 집중하는 것이 육아를 좀 더 수월하게 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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