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자신과의 전쟁

by 새나

큰 아이를 키우면서 1년간 대학원을 휴학했다. 아기와 하루하루 지내다 보니 아기가 자는 시간에 해야 할 일이 참 많다는 것을 알았다.

아기가 깨면 아기랑 눈 맞추며 놀아주고 아기의 발달에 도움이 된다는 클래식 음악도 틀어주었다.

아기에게 흑백의 도형으로 이루어진 초점 도서를 보여주기도 했다.

아기는 까르르 웃기도 하고 내가 오고 가는 것을 눈동자만 움직이면서 바라보기도 했다.

배가 고프면 울기도 하고 쉬를 했다고 칭얼거리기도 했다. 요즘 말로 독박 육아까진 아니었지만 남편이 공부하러 간 사이에 혼자 집에서 아기를 보다 보면 남편이 언제 오나 목 빠지게 기다리곤 했다.

빨래도 하고 청소도 하고 음식도 하고 아기가 자는 사이에는 빠르게 집안일을 하곤 했다. 그리고 집에서 할 수 있는 알바를 구해서 아기가 100일 되었을 때부터 했다.

다행히 대학원 전공과 관련된 알바를 재택으로 할 수 있었다. 그러다 보니 아기가 자는 시간에 할 일이 참 많았다.


아기가 자는 사이에 쉰다는 건 상상도 못 했다. 앞으로도 계속 일을 하려면 작은 알바라도 계속해서 커리어를 만들어가야 한다는 강박이 늘 나 자신을 조급하게 했다. 나 자신을 채찍질하고 애쓰게 만든 건 늘 나 자신이었다.

아무도 나에게 아기를 보면서 일하라고 하지 않았지만 아기만 보고 있으면 사회에서 낙오가 될 것만 같아서 난 참 부단히 애썼다.

그래서인가... 나는 매일매일 참 바쁘게 살았다.

100일 만에 집에서 알바를 하는 나를 보면서 엄마는 그렇게 일찍 일하면 나중에 손목이 안 좋아질 수 있다고 얘기하셨지만 나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사회에서 낙오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나를 더욱 강하게 붙들었고 일을 하면서 얻게 되는 성취감이 나를 더욱 매료시켰다.

일을 하다가 잠에서 깬 아기를 배 위에 올려놓고 앉아서 잠을 자다 보면 혼자 쿨쿨 잠을 자는 남편이 밉기도 했다. 아기가 깬 지 모르고 세상모르게 자는 남편이 무슨 죄가 있었겠냐만 그때는 왠지 모를 박탈감을 느끼기도 했다. 마치 혼자만 애 키우면서 고생하는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실상은 꼭 그렇지도 않았는데 혼자 자기 연민에 빠지곤 했던 거 같다.


나는 엄마라서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하는데 남자들은 결혼하고도 달라지는 게 없어 보인다는 생각이 들었던 거 같다. 한편으로는 맞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틀리기도 한 생각이었던 거 같다.

결혼 2년 차에는 결혼 전에 생각했던 것보다 힘든 결혼과 육아라는 현실이 나를 더 우울하게 만들었던 거 같다.


누구나 겪을 법한 일이기도 했던 결혼 2년 차의 하루하루였지만 매일매일 눈에 띄게 자라는 아기를 보면서 소박한 일상의 행복을 맛볼 수 있었다.

사실 남편과 나는 각자의 역할에 적응하느라 애를 많이 쓰고 있었고 서로 그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서로에게 투정 부리기도 어려웠다. 그만큼 우리의 일상은 꽤 무겁게 느껴졌던 거 같다.


매일매일 남편과 나에게는 자신과의 전쟁이 기다리고 있었던 거 같다. 내가 게으름을 피우면 남편에게 조금 더 기운 삶의 무게를 남편이 견뎌내야 했고 남편이 게으름을 피우면 나에게 조금 더 기운 삶의 무게를 내가 견뎌내야 했다.

우리는 하루하루 각자의 삶의 무게를 묵묵히 견뎌가며 아기를 키웠다.


서툰 엄마와 아빠와 함께 살고 있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하루가 다르게 무럭무럭 자라면서 방긋방긋 웃는 아기의 모습을 보는 것은 삶의 무게를 잊게 해 주는 달콤한 순간이었다.

아기를 함께 키운다는 것은 고개를 가누는 순간이 얼마나 경이로운지 느끼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순간은 엄마와 아빠만이 알 수 있는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순간이다. 아기라면 누구나 고개를 가누게 된다고 생각하지만 누구나 하는 것을 하게 되는 아기를 보는 그 순간이 모든 부모에겐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순간이다.

나 자신과의 전쟁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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