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획대로 살 수 없는 엄마

by 새나
다이어리는 무의미

나는 무척 계획적인 사람이다. 심심할 땐 다이어리를 펴서 달력을 보고 빈 시간에 무엇을 할지 계획하는 것이 취미였다. 예쁜 색연필과 스티커로 다이어리를 꾸미고 하루하루 어떻게 살고 있는지 일기를 쓰고 미래를 계획하곤 했다.

책을 읽고 나면 책에 대한 느낀 점과 감명 깊은 구절을 적기도 했다. 공연이나 영화를 보고 내 생각을 정리하면서 즐거움을 느끼기도 했다.

시간 날 때는 라디오를 들으면서 라디오에 청취자 글을 보내거나 무료공연 관람 이벤트에 신청해서 당첨된 적도 많다.

그런데 엄마가 되고나서부터는 계획대로 되는 일이 없어서 한동안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매일매일 시간을 쪼개고 잠을 줄이는 것도 한계가 있었고 수시로 엄마를 찾는 아기를 돌보다 보면 하루하루가 어떻게 흘러가는지 몰랐다.


쉽지 않은 육아

아기가 100일이 될 때까지 모유수유를 하고 밤중 수유를 하느라 잠을 깨곤 하는 날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아기는 소변과 대변을 번갈아가면서 싸고 기저귀를 갈아달라고 우는 일도 다반사였다.

육아는 해도 해도 끝나지 않는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일처럼 느껴졌다.

아이의 월령에 맞는 옷을 구입하고 놀이용 장난감을 사고 잠깐 사용할 실내놀이터나 보행기는 대여를 했다. 아기의 계획대로 살아가는 하루하루는 무척 비생산적으로 느껴졌고 아기만 키우면서 전업주부로 사는 것이 무척 숨 막히는 일로 다가왔다.

빨리 사회로 돌아가서 대학원 공부도 이어서 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고 마음은 조급해져만 갔다. 아기의 미소는 참 사랑스러웠지만 그것만으론 나만 뒤쳐지는 거 같다는 불안감을 떨치기엔 역부족이었다.


밤새 일을 하며

엄마는 계획대로 살 수 없는 사람이라는 사실에 적응하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은 일이었다. 왠지 모를 좌절감과 우울감이 끊임없이 나를 덮쳐왔다.

그건 아무도 이해할 수 없는 나만의 고통이었다.

결혼 전에 나만 생각하며 내 미래를 꿈꿔왔던 것과는 너무나 동떨어질 현실이 견디기 힘들어서 나는 전공과 관련된 알바를 하면서 밤을 새우곤 했다.


밤새며 일하는 것보단 아기를 보는 일이 더 힘겹다고 느끼던 나의 유일한 탈출구는 잠을 줄여가면서 일을 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해야지만 나만 뒤쳐지고 있다는 생각에서 잠시라도 자유로울 수 있었다. 커리어에 대한 끈을 놓지 않으려는 나의 모습이 힘겨워보이기도 하고 악착같아 보이기도 했는지 엄마는 너무 힘들게 살지 말라는 말을 자주 하셨다. 그런데 정작 엄마는 일하는 엄마의 모습을 보여준 가장 가까운 인생 선배가 엄마 자신이라는 걸 모르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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