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아르코창작기금선정작(시)
외면할 수 없는 사건은 손 닿을 만한 곳에
두고 자주 꺼내서 만져보아야 한다
마침내 문을 개방하고 들어왔을 땐
와락 껴안을 뻔했지
여긴 살기에도 죽기에도 좋은 곳이야
너무 늦게 발견되었다고 혀를 차지만
600년 동안이나 엎어져 있던 마애불도 있잖아
잊혀진 것은 속도에서 벗어나거든
빌려 쓰던 방은 아늑한 사각(死角)
무엇이든 묻어두기에 적소
생의 끝을 여민 건 겨울옷
느긋한 소멸을 도울 맞춤한 수의
혼자 기분을 접고 염습하고 입관하고
혼자 향을 피우고 기억을 태우고
내가 내게 절하는 예식을 올리는 동안
세상 밖에서 상관없이
분주히 밀려왔다 밀려가는 계절은
계절의 기분만을 따르지
없는 나를 찾는 방문객을 맞으며
찻물을 올렸어
기다렸다고 말하지는 않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