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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라보라 Jan 21. 2021

제주도민들만 아는 맛집이 어디야?

[제주도민들만 아는 맛집이 어디야?]


내가 제주에서 살고 있다는 말을 했을 때 상대방의 반응은 크게 두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첫 번째, “너무 부럽다. 매일 바다도 볼 수 있고. 나도 일 년만 제주에서 살아보고 싶다.”

두 번째,  “도민들만 아는 맛 집들 많이 알겠다. 나 여행 가면 알려줘.”     


모두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해서 너무 미안한 이야기지만 사실 매일 그 맑고 푸르른 예쁜 바다를 보지 못한다. (어떤 바다는 거칠고 무서워 도망쳐 오기도 한다.) 아쉽게도 모두의 삶이 그러하듯 나의 삶도 바퀴처럼 굴러가다 보니 내가 지내는 곳이 제주라는 것도 잠시 까먹는다. 하지만 그 부러운 마음은 안다.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누릴 수 있는 곳에 있다는 것. 하지만 우리는 언제나 가까이 있는 것에 마음이 무뎌진다. 그리고 소홀해진다. 이런 마음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우리는 내일도 그곳에 있을 테니까. 일상이 여행이 될 수는 없는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제주의 일상과 제주의 여행을 구분 지어 놓았다. 제주를 여행을 하는 날을 정해 놓는 것이다. 그 날은 운전하는 순간부터 설렘이 가득하다. 유난히 바다도 예뻐 보이고 눈에 들어오는 모든 것들이 특별하다. 마음가짐이 모든 걸 바꾸어 놓는 순간이다.     


제주에서 한 달 살이, 일 년 살이가 모두의 로망이자 매년 버킷리스트처럼 회자되고는 한다. 너무나 추천한다. 기회가 있다면 부디 꼭 제주에 와서 살아보길 바란다. 한 가지의 당부는 한 달을 일 년을 모두 여행처럼 지 낼 수는 없다. 계획을 잘 세워도 매일을 2박 3일 여행처럼 다닐 수는 없다. 분명 첫날에 환호성 치던 바다도 일주일이 넘어가면 시시하게 보이는 순간이 온다. 이럴 때 중요한 건 일상과 여행의 강약 조절이다. 두 경계를 잘 구분하지 못하면 짧게 온 여행보다도 큰 아쉬움을 안고 돌아갈 수 있다. 그러니 일상 모드와 여행 모드를 적절히 스위칭하며 지내야 한다. 

               

맛 집은 오히려 여행자들이 더 잘 아는 것 같다. 우선 먹어봐야 맛있는 집인 걸 알 텐데 여행을 다닐 때보다 더 외식을 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도민만 아는 맛 집이라는 곳을 알 길이 잘 없다. 그리고 가장 분명한 건 제주여행할 때 먹는 음식과 제주에서 살면서 먹는 일상 음식은 확연히 다르다. 제주 도민 맛 집은 분명 일상에서 흔하게 먹는 음식일 확률이 높다. 제주에 놀러 와 자장면이나 낙지볶음, 떡볶이, 카레를 먹으러 가자고 하면 분명히 퍽 실망할 것이다. 나도 어쩌다 외식을 하는 날이면 인플루언서의 힘을 빌린다. 그들에게 더 핫하고 다양한 정보가 가득하다. 그중에서 정말 괜찮을 것 같은 곳을 골라서 가는 거다. 물론 광고글에 낚여 실패하기도 한다. 

     

아마도 그들의 말속에는 나의 소중한 여행에서 관광객만 넘치는 북적이고 맛도 없는 곳에서 돈과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은 마음 때문일 것이다. 나도 너무나 잘 안다. 하지만 여러분이 생각하는 도민 맛 집은 예상과는 좀 멀 수도 퍽 내 입맛이 맞지 않을 수도 있다. 혹시라도 여러분의 여행 중에 관광객 많이 없고 정말 입맛에 딱 인 맛 집을 알게 된다면 나에게도 소개를 해주실 바란다. 나도 꼭 알고 싶다.     

     

덧붙여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 있다. 제주의 집이 있다 하면 바다 인근에 있는 마당이 있고 돌담이 있는 그런 집을 종종 상상한다. 그런 집을 상상하며 우리 집을 방문하게 된다면 크나크게 실망할 것이다. 우리 집은 누구의 집보다도 평범하고 돌담도 없으며 바다 인근도 아니다. 누구나 살고 있는 빌라와 같다. 로망과 실용적인 것은 거리가 좀 있다. 멋진 뷰에 제주를 흠뻑 느낄 수 있다는 숙소들을 보면 나도 참 가보고 싶다. 물론 여행으로 말이다. 잘 꾸며진 공간들을 보면 제주에서 내 집에만 머무르는 것이 꽤나 아쉬움이 남는다. 허나 분명 그곳이 나의 집이었다면 여러 많은 불편한 것들을 감수해야 했을 것이다. 제주와 나의 타협점이 현재 나의 집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의 평범한 나의 집에 나는 아주 만족한다.     

  

많은 이들의 가벼운 한마디를 조금은 진지하게 받아친 것 같아 민망하다. 내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내 삶에 로망 따위는 일절 없다는 말이 아니다. 지금도 우리 집 거실 창 밖에는 멀찍이 한라산이 지키고 있지 않은가. 다만 제주의 삶이 핑크빛 동화만은 아니라는 걸 조금은 말하고 싶었다. 그리고 어쩌면 그 동화는 우리의 마음에서 만들어 내는 존재이지 않을까 생각을 한다. 허무한 상상이 아니라 내 마음에 따라 언제든 어디서든 핑크빛으로 만들어 낼 수 있는 거라는 걸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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