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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화일 May 09. 2023

기어이 아프리카까지 갔다네요, 시계 방향 모로코 여행

Prologue 아프리카 대륙에 발을 딛기 전까지

함께 살 때 우리 가족의 취미는 텔레비전이었다.


가족간의 대화는 주로 저녁 시간, 텔레비전을 보며 이루어진다.

예능 프로그램을 보며 이게 웃긴지 안 웃긴지에 대해 토론하고 음악 프로그램을 보면서 각자 최애 가수를 어필하고 여행 프로그램을 보면서는 다음 가족 여행지를 구상한다.


제목엔 아프리카를 걸어 놓고 뭔 말인가 싶겠지만 가끔씩 우리는 ‘걸어서 세계속으로’ 같은 프로그램을 보며,


“음, 가 보고 싶지만 저긴 안 되겠지.”


라고 말하기도 했다.


우리가 랜선 여행으로 만족했던 수많은 대자연 속에는 끝없이 펼쳐진 사막 또한 있었다.

그래서 내 모로코 여행의 계기는 기억 속 쌓이고 쌓였던 우리 가족의 랜선 여행과 뗄레야 뗄 수가 없다.


운도 좋았다.

드물게도 모로코를 가 보고 싶어 하는 친구를 만났고(강조하지만 모로코에 가려는 주위 사람 정말이지 드물다),

친구가 하필 나와 함께 있을 때 과감히 모로코 행을 결정했으며(시칠리아 여행을 고작 몇 주 앞둔 채였다),

그의 일행은 일면식도 없는 나를 흔쾌히 이번 여행의 동반자로 받아줬다.


모로코 여행 합류가 결정되고 본격적으로 비행기까지 예매하고 나니


“저런 데는 누가 가노?”


커다란 텔레비전 속 사막을 보며 엄마가 중얼거리던 우리 집 거실의 풍경이 머릿속에 스쳐 지나갔다.


엄마.

그 사람이, 바로 나예요.




그럼 이제 모로코 여행 준비를 할 차례,

뭘 해야 하나.


개인적으로 여행 계획으로 J와 P를 나누는 건 부질없다고 생각한다.

여행을 자주 하다 보면 점점 소위 말하는 ‘P의 여행’으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처음 가 본 나라의 땅에서 계획이 완벽하게 이행되기란 어차피 어려운 일이지만 그럼에도 그 곳 또한 마찬가지로 사람 사는 곳이므로 굳이 분 단위로 계획을 세우지 않더라도 일은 해결되기 마련이라는 걸차츰 이해하게 된다.

물론 아니라고 생각하신다면 당신의 의견이 옳습니다. 무계획이란 그냥 융통성을 빙자한 게으름 피우기일지도.


공교롭게도 우리는 모두 P의 여행에 길들여져 있는 J 셋이었다.

당장 모로코 출발 일주일 전 다녀온 시칠리아조차 매일 아침 그 날의 행선지를 정하곤 했지만, 미지의 아프리카 대륙을 앞두고 나는 상당히 쫄아 있었다.

여기는 정말로 사전 정보 없이는 못 간다는 생각에 시칠리아에서 돌아오자마자 평소에는 거들떠 보지도 않던 여행 유투브 영상과 블로그를 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목도한 수많은 삐끼와 캣콜링과 바가지와 기타 등등…

몸도 몸이지만 마음의 준비도 단단히 필요했다.


스무 살, 난생처음 배낭여행을 준비할 때처럼 그 나라의 평균 시장 물가까지 외워 가지는 않았지만 최근 몇 년간 한 여행 중에서는 제일 많은 정보를 미리 접하고 갔다. 그런데도 아쉬웠다.


여행을 다니면서 마지막까지 강렬하게 남는 기억은 새로운 것을 마주한 순간이 아닌 기존의 이미지가 전복되는 순간이다.

까탈스러운 런던에서 소탈하고 말 많은 영국인 할아버지와 한 시간 반 동안 떠들었을 때, 철두철미하고 자동화된 이미지의 독일의 기차역에서 무더기로 발견한 고장난 티켓 판매기들, 놀라우리만치 깨끗하고 기계화된 북경의 지하철처럼.


그래서 모로코에 대해 너무 아는 게 없어 깨질 편견조차 없을 것 같아 아쉽다는 그런 오만한 생각을 했다.


아프리카 국가에 대한 고정관념은 내 무의식 속에 생각보다 꽤 깊게 박혀 있었다.

이번 모로코 여행은 내 속에 존재하는 줄도 몰랐던 그 편견들이 무참히 깨지는 순간들의 연속이었다.

그리고 숨이 막히는 배기가스와 코를 찌르는 모로코 박하 향, 고요한 사막과 거대한 북두칠성 앞에서 별에 기대어 살아갔던 고대인들이 이해되던 밤, 안데스 산맥을 타고 롤러코스터처럼 흔들리며 9시간을 달리던 미니밴,

이미 머릿속에서 많이 미화된 모로코의 기억을 한 조각이라도 잊기 전에 서둘러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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