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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화일 Jun 21. 2023

여기가 공항이야, 공원이야? 탕헤르 도착

01. 런던에서 탕헤르로

모로코 여행 경로는 대개 마라케시로 들어가서 탕헤르로 나오는 순서다. 탕헤르에서는 스페인이 당일치기가 가능할 정도로 가깝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항구에서 타리파가 보일 정도니.

우리의 경로는 반대였다.


런던에서 출발했기 때문에 고려해야 할 인아웃 장소 제약이 적었던 장점도 있었고 사실 이미 짜인 일정에 나는 비행기 표만 얹은 수준이라 어쩌다 그렇게 되었는지는 모르겠다.


여행이 끝난 시점에 돌이켜 봤을 때 매우 잘한 선택이란 생각이 들었는데  탕헤르 - 셰프샤우엔 - 페스 - 메르주가 - 마라케시 순으로 가면서 갈수록 도파민이 흘러 넘쳐서 반대로 돌았다면 갈수록 조금 심심하지 않았을까 싶었다.


떠나는 날,


추적추적 내리는 런던스러운 비를 맞으며 우리의 첫 번째 도시 탕헤르로 출발했다.



살다보니 아라비아 항공을 타게 되는 날도 다 온다며.


체크인을 하다 보니 좌석이 본의 아니게 랜덤으로 배정되어서 세 명이 뿔뿔이 흩어진 채로 앉았는데 한 시간쯤 지났을까 승무원들이 물과 샌드위치를 나눠주기 시작했다.

그제서야 비행기 표를 살 때 샌드위치 종류를 골랐던 게 생각났다. 아마 그림에 유일하게 양상추가 있는 것으로 골랐던 것 같은데 ‘과연 실물에도 양상추가 있을까?’ 했던 일행의 예언대로 샌드위치에 풀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같이 간 일행들은 자느라 받지도 못했다고 했다. 샌드위치보다 물을 놓친 게 더 아까웠다.


기차역 같은 탕헤르 공항.


출입구부터 검문소까지가 거대한 컨테이너박스 같았다.

모든 검문소가 일하는 중이었는데도 좀처럼 줄지 않았던 기나긴 줄을 빠져 나오고 나니 벌써 11시라 바로 앞에 있는 환전소부터 찾았다.



나란히 두 곳이 있었는데 긴가민가 할 때는 손님이 있는 곳에 가는 것이 국룰,

하지만 별로 친절하지도 싸지도 않았다고 합니다.


심지어 동전을 잘못 줘서 얘기했더니 그 돈은 아무것도 아니라며 오히려 내가 받을 금액보다 더 주는 것. 거의 통용 안 되는 금액이나 마찬가지라 중요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공항 환전소인데? 이래도 되나? 싶은 느낌.


짐 검사를 한 번 더 하고 빠져 나오니 웬걸, 밤 11시에도 공항의 모든 곳이 깨어 있었다.

유심 부스에는 사람들이 드글했고 안쪽 카페에서 쉬는 사람들도 있었다. 탕헤르 공항 문에는 야간 택시 비용이 정찰제로 붙어 있다. 꽤나 안심이 되지요?



유심까지 장착하고 나가니 이미 새벽 한 시였고 모로코 택시의 호객 행위는 익히 들은 바가 있어 다소 긴장되는 마음으로 나갔는데 나가자마자 어안이 벙벙해진 우리.


여기가 공항이야, 공원이야?


공항 앞 잔디밭에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돗자리를 펴고 놀고 있었다.

시작부터 문화충격을 안겨주는 모로코 여행.



우리가 상상했고 걱정했고 무엇보다 필요로 했던 택시 호객은 눈을 씻고 봐도 없었다.


주변에는 온통 공항 바로 앞을 쏘다니는 아이들과… 수다를 떠는 어른들과…

어디서 수박이라도 구해 와서 깔아놓아야 할 것 같은 한여름 계곡의 분위기였다.


이게 무슨 일이람,

그래도 어딘가엔 택시가 있겠지. 공항인데!


캐리어를 끌고 무작정 길을 건너다 보니 한 줄로 늘어선 차들이 눈에 들어왔다.

택시 같기도 하고 택시가 아닌 것 같기도 한 낡은 차들 근처에 얼쩡거리고 서 있자 아 우리가 기다리고 기다리던 호객꾼이 드디어 등장했다.

정찰제라 그런지 무조건 첫 차부터 나가는 식이었고 가격을 확답받은 후에 탑승.



겉으로만 봐도 오래된 티가 나는 차에 들어가 앉으니 거의 시간 여행을 떠난 듯한 느낌이 들었다.

한 이십 년 전쯤 봤을까, 돌려서 내리는 창문, 그나마도 온전치 않은 유리창, 절반 정도는 날아가고 없는 계기판, 한두 시간은 달려야 하는데 이 차가 그 때까지 무사히 달릴지도 의심이 갈 정도.

칠흑같은 고속도로를 지나 도시로 진입하니 새벽 한 시에도 환하게 불이 켜져 있는 탕헤르의 거리.

코로나 이후로는 서울도 밤 10시 이후는 어둡다 들었는데 탕헤르의 밤은 그저 환했다.

거리마다 있는 경찰과 아랑곳하지 않고 끼어들기를 하는 차들, 판치는 무단횡단. 이게 무슨 창과 방패야?

자꾸 웃음이 나왔다.


그래요, 제발로 왔어요, 여기를.


마침내 도착한 숙소.


도시가 내려다 보이는 대포 근처의 내리막길에 위치해 있었다. 그런데 주인장 왜 전화를 안 받슈?

다행히 숙소 바로 옆에 구멍가게가 있어 주위는 밝았다. 10분 후에 도착한다던 주인을 오매불망 기다리며 과자와 물을 사는 밤. 과자가 엄청 쌌다.

얼마나 지났을까 우리 옆으로 웬 청년이 차에 탄 채로 씩 웃으며 손을 흔들고 사라졌다.


“저 사람이 숙소 직원인가?”

“드디어.”

“유 레잇.”


하지만 그는 다시 오지 않았고.

그 사람이 아니었나보다. 하고 넋 놓고 있을 때 그 때 그 청년이 열쇠를 들고 다시 나타났다.

이 사람 맞았잖아! 왜 이제서야 나타난 거야!

하지만 여기는 아프리카, 납득봇이 된 우리는 하하 너 좀 늦었네 웃으면서 계단을 올랐다.

게다가 막상 들어간 숙소가 꽤 멋스러웠다.



거실에는 포커든 마작이든 뭐라도 두어야 할 것 같은 큰 테이블이 있고 침실 두 개에 부엌에는 큰 냉장고까지 잘 갖춰져 있었다. 오늘 밤만 급하게 머무르고 떠나야 하는 게 아쉬웠다.


별로 한 것도 없는데 지치고 힘들고 그런데 잠은 안 와.

난생처음 아프리카에 왔는데 어떻게 바로 잠이 들 수가 있겠어요.

아쉬운대로 대충 공항에서 받은 샌드위치를 뜯었는데 생각보다 맛있어서 1차 놀람, 조금 전 문 닫기 직전의 구멍가게에서 산 과자를 먹었는데 너무 맛있어서 2차 놀람.


모로코는 웨하스 강국이었던 것이다.

첫날부터 빠져버린 모로코 웨하스는 여행 내내 틈날 때마다 사제끼는 우리의 비상 식량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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