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홍화일 Oct 07. 2023

모로코 북촌 한옥 마을

02. 탕헤르 탐방


마작 한 판 해야 할 것 같은 탁자와 1인 1침대가 있었던 호화로운 하룻밤을 아쉽게 보내고 바깥으로 나섰다. 전날 밤에 막 도착했을 땐 그렇게 어둡고 무서웠던 이 골목이 햇살 아래서 보니 아주 별 것도 아닙디다.


항구 도시인 탕헤르는 고지대에서 바다가 보인다.

의외로 넓은 도로며 빽빽한 골목, 건물도 다르고 사람들도 다른데도 왜인지 영도가 생각났다.



구시가인 메디나로 가는 길에는 햇빛 받으며 낮잠 자고 있는 고양이들이 많이 보인다. 평화롭게 자는 모습이 귀엽다가도 한국의 길고양이나 런던의 산책냥들에 비해 앙상한 모습이 안쓰럽기도 하고.


메디나와 가까워질수록 택시들이 자주 눈에 띄었다.

쁘띠 택시와 일반 택시의 요금은 제법 차이나는 편. 하늘색 하늘 밑에 하늘색 쁘띠 택시들.

밤에는 미처 몰랐던 탕헤르의 색깔은 하늘색이었다.



모로코의 도시들은 낮 열두 시는 되어야 슬슬 기지개를 켠다.

오늘 안에 셰프샤우엔으로 이동할 작정이었기 때문에 거리가 좀 떨어진 관광지들은 과감히 포기하고 메디나를 여유롭게 구경하기로 했다.

메디나로 들어서는 큰 문을 지나면 은근슬쩍 길 안내를 제공하고 팁을 받으려는 이들이 속속들이 등장한다. 처음엔 동양인이 신기해서 말을 붙이는 줄 알고 몇 번 받아주다가 아, 이거 팁 각이구나 싶어, 골목으로 도망갔다.


시가지의 좁은 길에서는 골목마다 다른 향신료 냄새가 난다. 대문 없는 구멍 가게에는 달걀과 넓적한 빵이 쌓여 있고 오전이라 그런지 리어카에 빵을 가득 싣고 우리의 후각을 자극하는 현지인들도 가끔 보였다.

유럽이 이제 슬슬 식상해질 즈음 마주한 이국적인 풍경에 홀린 듯이 골목을 구경하는데 문득 어딘가 기시감이 드는 것이…


이것은,

한옥 마을의 느낌?



목조 대문 앞에 널려 잇는 말린 열매는 할머니댁 베란다에서 말라가는 빨간 고추가 생각나고. 아프리카에서 느끼는 고향의 정취라니요. 깨끗하고 잘 관리된 벽이 꼭 지은지 얼마 안 된 북촌 같았다.

가끔 가다 눈에 띄는 기념품 가게의 마그넷들은 화려하기 그지 없고.


현재 집 없는 떠돌이 신세이기에 마그넷을 모으는 취미는 없었지만 하나쯤 들고 가고 싶었는데 스페인을 오래 여행했던 친구가 마그넷이 스페인과 너무 닮았다고 해서 수집욕이 조금 사그라들었다.



여기 너무 재밌다고 한옥… 아니 메디나 골목 구석 구석을 헤매고 돌아다니다 보니 이제는 정말로 위에 음식을 넣어줘야 할 시간.

그런데 구글맵이 위치를 잘 잡지 못한다. 골목은 다 똑같이 (한옥처럼) 생겼고 방향 감각 상실하기 일보 직전 땀을 삐질삐질 흘리다 식당 하나를 발견하고 홀린 듯이 들어갔다.

모로코에 왔으니 타진을 먹어봐야지, 하던 우리 마음을 안다는 듯 대문 앞에 걸어놓은 타진 사진.


세 명 여행의 최대 장점은 음식을 여러 가지 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주문을 해야 하는데 주인 할아버지는 영어를 전혀 하지 못하셨고, 손짓 발짓으로라도 알아들으면 좋겠는데 뭔가 못 미더운지 계속 고개를 갸우뚱거리더니 갑자기 사라져 버리셨다.

그리고 영어를 하는 다른 할아버지와 함께 나타나신!


임시 통역가 할아버지도 너무 친절하셨다. 야구장에서 옆에 앉은 아재한테 파울 물어봤을 때의 그 기분.

덕분에 무사히 타진, 쿠스쿠스, 꼬치까지 주문 완료.

인고의 시간 보내던 중 레모네이드가 먼저 나왔다. 유리잔의 미지근한 온도에 조금 실망한 것도 잠시, 한입 먹는 순간 진짜 레몬만 갈아 만든 것 같은 찌릿한 상큼함이 식도를 타고 내려왔다. 모로코 레몬 강국이네요.


곧 이어 음식이 연달아 나오는데 타진을 보자마자 옆에서 내 마음의 소리가 나왔다.


“이거 뚝배기 아냐?”


비주얼도 뚝배기, 맛도 뚝배기. 아프리카에서 찾은 고국의 맛. 쿠스쿠스는 호불호가 갈렸지만 타진만은 만장일치로 또 먹어야 한다는 평.

밥 먹는 동안 길냥이 선생님이 자꾸 우리의 자리를 탐냈다. 당당히 우리 뒷자리에 엉덩이를 깔고 앉아 있는데 보내야 한다는 이성과 이대로 우리 집에 같이 가자 하는 본능 사이에서 갈등하다 주인에게 얘기하자 가차 없이 뒷목을 들어 가게 밖으로 보내버려서 괜히 얘기했나 싶었다. 인간이 미안해.



버스 시간까지 아직 여유가 있어 메디나를 빠져나와 요새로 향했다.

가는 길에 역시나 자주 보이는 고양이들. 고양이 천국이다.


새장 옆에서 쉬는 고양이도 있었는데 아무래도 느낌이 좀…

식사와 함께 찰칵 아닌지.



바닷가 항구가 훤히 내려다 보이는 고지대의 요새.

건너편에는 지브랄타 해협을 사이에 두고 있는 스페인 타리파가 눈앞에 보인다. 페리가 있어 모로코에서 스페인으로 넘어갈 때 많이 이용한다고 했다.


하얀 벽에 파란 바다가 묘하게 제주도 같은 풍경.




어쩐지 한국이 계속 떠오르는 탕헤르에서 일정을 마무리하고 짐을 찾기 위해 다시 숙소를 찾았다.


CTM 버스 타는 곳을 더블 체크하려고 숙소 직원한테 한번 더 물어봤는데 정류장 위치가 우리가 알아온 것과 달랐다. 이상한데 싶었지만 그래도 현지인이 알려준 게 맞겠지 싶어 직원이 가라는 곳으로 갔는데 왠걸, 버스 시간마저 달랐다.


생각보다 깔끔하고 현대적인 느낌의 정류소.

이미 CTM 버스 정류장으로 돌아가기에도 빠듯한 시간이라 결국 두 시간을 더 기다려 여기서 버스를 타기로 했다. 셋이 모여 얘기하다 보면 두 시간은 순식간이지.


우리가 탈 버스가 드디어 정류소에 들어서고 탑승하려는데 짐칸에 캐리어가 우리 것밖에 없었다. 한층 더 싸한 기분을 억누르며 일단 탑승.

배기가스의 냄새가 지독하고 다소 더럽긴 했지만 드높은 악명 치고 버스 상태는 나쁘지 않았다. 출발 시간이 되어도 움직일지 말지 느긋하게 간을 보던 버스는 이윽고 출발하자마자 약 10분에 한번씩 멈추기 시작했다.


숙소 직원, 그는…

우리에게 마을버스 정류장을 알려준 것이다.


덕분에 예상 시간보다 한참 늦게 출발하는 찐 로컬 버스를 타고 현지인의 버스 히치하이킹을 목도하며 2시간 반 거리를 네 시간에 걸쳐 달리게 되었다.

헛웃음이 나왔지만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또 긍정봇 납득봇이 된 우리. 도시인 듯 시골인 듯 아무것도 없는 벌판이 펼쳐지다가도 하천과 빽빽한 주거지들이 나타나는 바깥 풍경이 흥미로웠다. 정류장이 아닌데도 사람이 서라고 하면 서는 버스가 신기하기 그지 없고… 현지인 놀이 재밌구나.


그리고 모로코 국도에 널어버린 4시간을 든든하게 채워준 웨하스.

역시 웨하스 강국이다.


사실 나는 멀미 때문에 타자마자 곧 뻗어 버렸는데(지금 생각하면 일행과 나란히 앉지도 않았는데 무슨 근자감이었는지) 나중에 일행에게 얘기를 들어 보니 버스가 문도 열고 달렸다고 한다.

정신을 몽롱하게 만들던 퀴퀴한 냄새를 생각하면 환기를 위해 적절한 선택이 아닌지.

(나만 몰랐던) 제법 스릴 넘치는 로드트립을 했다.


그렇게 셰프샤우엔으로 가까워지는 중.

늦게 출발했으면서 자주 서기도 한 버스 덕분에 예정 도착 시간은 이미 훌쩍 지나 있었고 해는 이미 지고 있었다. 자고 일어나니 이미 깜깜해진 바깥, 드문드문 보이는 가로등, 어두워질수록 마음은 점점 더 불안해졌다.

호달거리는 심장을 진정시키며 도착한 셰프샤우엔.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택시 삐끼가 붙었다.


공항에서 그렇게 바랐던 택시 삐끼가 왜 여기선 무서운지.

게다가 호객꾼이 영어를 너무 잘했다. 상대가 영어를 잘할수록 어쩐지 더 긴장하게 되는 이 곳.

하지만 이미 늦은 밤 우리에겐 선택권이 없고 택시가 있는 게 어디냐 싶을 뿐.

얼결에 호객꾼이 안내하는 봉고로 가니 심지어 창문마다 커튼이 쳐져 있었다.


“이거 타도 되는 거 맞아?”

“우리 장기 안전해?”


자꾸만 나오는 헛웃음 어쩌면 좋나요.

대책도 없이 여기서 밤을 샐 수도 없는 노릇이니 시키는 대로 하긴 해야지, 뭐. 캐리어까지 들어주는 과한 친절을 받으며 봉고에 몸을 실으면서도 긴장감은 극에 달하고 있었다.


이전 02화 여기가 공항이야, 공원이야? 탕헤르 도착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