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하 장편소설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를 읽고서
누군가가 혼자 있는 당신에게 다가와 “멀리 왔는데 아무것도 변한 게 없지 않은가요?, “휴식을 원하지 않나요?”하고 묻는다면 어떨 것 같은가. 주인공은 이런 식으로 아무 예고 없이 의뢰인을 직접 찾아 나선다. 그곳은 마로니에 공원이 될 수도 있고 한적한 길모퉁이가 될 수도 있다.
용기가 있는 자는 따라 나설 것이고, 용기 없는 자는 그러지 못할 것이다. 여기서 주인공은 “용기 없는 자는 고통스럽고 무료하더라도 그대로 인생의 길을 걸으라”고 말한다.
주인공의 직업은 처음부터 공개되지 않고 베일에 쌓여 있다. 그는 자신의 직업을 예술가, 또는 상담사 등으로 표현했던 것 같다. 후반부에 갈수록 드러나는 그의 직업은 역겹기까지 하다.
구스타프 클림트의 <유디트>라는 그림을 아는가. 이 책에는 유디트를 닮은 여성이 나온다. 유디트를 닮은 외모를 가진 그녀는 구원이 필요한 사람이었다. 또 다른 의뢰인 미미도 “아무도 다른 누구에게 구원일 수는 없어요”라는 말을 한다. 그녀 또한 구원이 필요한 사람이었다. 주인공은 이런 의뢰인들의 사연을 엮어 소설을 쓴다.
이 소설의 마지막 페이지에서 나는 갑자기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그 이유는 일종의 깨달음이었던 것 같다.
이 소설은 인생의 허무함과 무가치함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또한, <유디트>, <사르다나팔의 죽음> 등 유명한 미술 작품과 연관 지어 소설 특유의 분위기를 증폭시킨다.
전체적으로 우울한 분위기의 소설이지만 오히려 여기서 나의 인생에 대해 다시 한번 긍정적으로 되돌아 볼 수 있었다. 인간은 상대적으로 모든 현상을 바라보기 때문에 ‘이런 상황과 비교하면 나는 정말 행복한 편이다’라는 생각을 하기 마련이다.
나 역시도 용기가 없는 사람이기 때문에 늘 변화를 갈망하지만 ‘멀리가도 변하는 게 없는’ 인생을 앞으로도 살아 나갈 것이다.
왜 멀리 떠나가도 변하는 게 없을까. 인생이란.
<김영하 장편소설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