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비야, 호스텔 빌런
라고스에서 마법 같은 3일을 보낸 뒤, 버스를 타고 세비야로 떠났다. 세비야는 길가에 오렌지 나무가 참 예쁘다는 이야기를 전에 들어서 오렌지빛이 먼저 떠올랐다. 빨간 플레멩고는 얼마나 정열적일까. 스페인은 음식이 참 맛있다는데, 이제 밥 같은 밥을 먹을 수 있으려나. 스페인에 가면 꼭 바르샤와 레알마드리드가 경기하는 ‘엘 클라시코’경기를 보면서 호날두와 메시를 보고 싶었는데, 호날두는 유벤투스로, 메시는 파리로 가버렸네. 조금만 더 빨리 올걸.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동안 시간이 한 시간 빨라졌다. 스페인 국경을 지났구나. 반도인 우리나라에선 국경을 넘기가 쉽지 않은데 버스를 타고서 금세 다른 나라로 갈 수 있는 유럽의 촘촘함이 부러웠다.
세비야에 도착하자 비가 내릴 듯 하늘이 흐렸다. 오렌지 나무 늘어선 거리에 초록색 레알 베티스 유니폼을 입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알고 보니 내가 세비야에 도착한 날은 17년 만에 세비야 연고팀인 레알 베티스가 결승에 올라 우승컵을 두고 발렌시아와 경기를 하는 날이었다. (결국 레알 베티스는 우승했고 다음날 도시에 큰 축제가 열렸다.) 빗줄기가 조금씩 떨어질 때 호스텔에 도착했다. 체크인을 하고 내가 머물 방으로 들어갔다. 남미 중년 여성 둘이 짐을 정리하고 있었다. 낮인데도 창문을 닫고, 불을 끈 채 짐을 정리하길래 ‘헤이, 와이 돈유 온 더 라이트~, 앤 오픈 더 윈도, 이츠 베러.’라고 이야기했더니 둘이 마주 보고 웃으면서 실내등을 켰다.
숙소에서 사용할 짐을 정리하는데 남미 여자 둘이 자리가 비좁았는지, 복도로 캐리어를 들고 갔다. 그리고 1분 정도 지났을까. 갑자기 2층 침대에서 누군가 쿵 하고 뛰어 내려오더니 방문을 쾅 하고 찼다. 그러고 밖에서 짐을 정리하는 여자들에게 온갖 욕을 하고는 나에게로 다가왔다. 2미터에 가까운 거구가 험악한 표정으로 갑작스레 다가오니 나도 겁이 좀 났다. 방에 저런 거구가 있는지도 몰랐다. 하지만 기세에서 밀리면 안 될 것 같아서 (나 대한민국 예비역이야.) 최대한 침착하게 물었다. 와츠 더 플라블럼, 돈 유 헤잇 투 오픈 더 윈도우?(무슨 일이니, 창문 여는 거 싫어하니?) 그랬더니 창문을 열어두는 것은 괜찮지만, 방문은 자는데 시끄러우니 열지 말라고 했다. 무슨 헛소리인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알겠다고 했다.
어젯밤까지만 해도 옌틀이랑 다정하게 대화하고 참 좋았는데, 하룻밤 사이에 지옥이네. 욕을 먹은 남미 여자가 리셉션에 항의를 했는지, 직원이 올라와 남자에게 이런 식이면 머무를 수 없다며 조심하라 했다. 남자는 알겠다 했다. 끝이야..? 남미 여자 둘이 방을 옮겨 달라고 했지만 남는 침대가 없어 불가능하다고 했다. 나도 못 옮기겠구나. 하아. 어차피 같이 지낼 수밖에 없다면 적을 두면 안될 것 같아서 어디서 왔냐 물었다. (영어를 못해서 구글 번역기로 대화를 했다) 이탈리아에서 왔다는 이 남자는 행색이 노숙자 같았다. 누더기 같은 옷을 입고 캐리어니 배낭이니 온갖 짐을 지 2층 침대에 다 때려 박고 살았다. 워커도 안 벗고서. 이상한 동영상을 보여주면서 웃는데 앞니가 하나 없었다. 기이한 소름이 돋았다.
노숙자인지 밀수입자인지 정체를 모르겠는 이탈리아 가이는 낮에 자고 밤에는 유튜브를 큰소리를 틀어놓고 밤을 보냈다. 영상을 보다가 허전하면 대마를 피웠는데, 낮에 있던 소란 이후로 다들 겁을 먹어서 아무 말도 못 했다. 그는 독재자였다. 나도 화가 났지만 영화에서 본 이탈리아 갱이 생각나서 쉽게 이야기할 수 없었다. 그래도 자존심이 너무 상한다. 대한민국 육군 예비역 주먹맛을 보여줄까. 여행 중이니 참기로 했다. 다른 숙소를 알아볼까 고민도 했지만 삼일 밤만 지내자 이것도 여행이다. 버티기로 했다. 하지만 이틀 밤을 넘기지 못했다. 일정을 하루 줄여 그라나다로 떠날 버스와 머무를 숙소를 예약했다. ‘행복은 선택.’ 세비야를 떠나는 편이 행복이다. 그래 가자. 드러워서 내가 나간다. 세비야에 이틀 머무르면서 마음에 드는 사진도 넉넉히 담았다며 합리화를 했다. 다음날 짐을 싸는데 이탈리아 가이도 짐을 쌌다. 저걸 죽여 말어.
그라나다로 가는 동안, ‘하루 만에 세계가 잘도 바뀌는구나.’ 허탈하게 웃었다. 라고스에서는 정말 좋았는데. 이탈리안 가이를 떠올리면서 다른 사람과 함께 생활한다는 의미가 무엇인지 곰곰이 그려 보았다. 사전을 찾듯 기억을 더듬다, 문득 오래전 수능 공부할 때 배운 공자가 떠올랐다. 공자는 사람의 이상향이 ‘인(仁)’을 지닌 군자라 했다. ‘인(仁)이란 ‘亻(사람인변 인)’에 ‘二(두 이)’가 합쳐진 글자이다. 그러니 군자란 두 사람 사이에 어짊을 아는이라고 할 수 있겠다. 공자는 ‘인’이 무엇인지 직접적으로 이야기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제자들이 전하는 이야기로는 충(忠)과 서(恕)를 지닌 사람이라고 한다. 앞에 글자는 ‘마음 심(心)’ 자에 ‘가운데 중(中)’ 자를 더했고, 뒤에 글자는 ‘마음 심(心)' 자에 ‘같을 여(如)’ 자를 더했다. 즉 군자란 상대의 편에서 마음을 하나로 모으는 사람이다.
군자까지 바라진 않았지만, 문득 이탈리안 가이가 불쌍해졌다. 더 다정히 어울릴 수도 있는데, 자기 마음속에서만 사는구나. 너 때문에 내가 어지간히 불편했거든. 그런데 너도 참 외롭겠다.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칠 때 종종 사랑받고 싶은데 사랑받는 법을 몰라서, 마음과는 다른 행동을 하는 친구들이 있었다. 그럴 땐 내가 아닌 상대의 마음을 생각하게끔 가르치곤 했는데, 어려운 일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쉽게 들여다볼 수 없는 사람의 마음이란 누구보다 차고, 건조하니까. 그 마음에서 꽃을 피우기는 정말이지 어렵다. 정말. 그리고 라고스에서 다정하게 나를 대해주던 사람들을 돌아보았다. 종종 사람들과 어울려 생활하기 편하다고 느껴질 땐 내가 잘나서가 아니라, 친절하고 다정한 이들과 함께 하기 때문임을 잊는다. 그런 이들과 함께 할 때는 우주의 놀라운 배치에 아무리 경배해도 부족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