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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술관 중독자 Apr 14. 2020

고딕 건축물의 반전

형이 왜 거기서 나와?



#1. 

오백 년을 훌쩍 넘은 나이의 고딕 양식 건물들을 좋아한다. 비바람과 시간을 견뎌낸 그 존재가 좋다. 사람의 손길이 계속해서 필요한 존재라서 더 좋다. 꾸준히 사용하고 망가진 부분을 때우고 떨어져 나간 부분을 채워넣어야만 그 모습으로 서 있을 수 있다는 게 어쩐지 위안이 된다. 

중세의 석공들도 알고 싶은 존재지만 현대의 석공도 궁금하긴 마찬가지다. 몇 백 년 전의 건물을 어루만지는 게 생업인 사람들은 누굴까. 그들이 옛 건물에 남겨 놓는 윙크, 현대인의 농담을 처음 알게 된 건 살라망카에서였다. 


스페인 살라망카 신 대성당의 우주인 조각

#2. 

살라망카에선 살라망카 대학교 입구의 복잡한 조각 장식에 숨어 있는 조그마한 개구리 조각이 가장 유명하지만(개구리를 찾아낸 학생은 시험을 다 통과한다는 설이 있음) 내가 놀랐던 건 신 대성당 입구 조각에 버젓이 자리잡은 우주인 조각 때문이다. 1500년대에 지은 건물에 우주인? 형이 왜 거기서 나와?



스페인 살라망카 신 대성당의 아이스크림 콘 먹는 용 조각

#3.

1992년에 대성당 복원 사업 때에 우주인 조각을 넣은 것인데, 우주인뿐만 아니라 아이스크림 콘을 먹는 용 조각도 있다. 이렇게 현대의 석공, 조각가들이 슬그머니 현대적인 터치를 넣는 것은 의외로 여기저기 있다. 역시 스페인 팔렌시아 대성당의 사진가 가르고일(1900년대 초), 스코틀랜드 페이슬리 사원의 에일리언 가르고일(1990년대), 네덜란드 덴 보스 대성당의 청바지 입고 핸드폰으로 통화중인 천사(1998-2010년), 최근의 작업으론 쾰른 대성당의 프란시스코 교황 가르고일(2018년, 중세부터 현재까지, 석공들의 유머 편에 올림)도 있다.

스페인 팔렌시아 사진가 가르고일
스코틀랜드 페이슬리 사원의 에일리언 가르고일
네덜란드 덴 보스 대성당의 핸드폰 통화중인 천사


 물론 이러한 현대적인 터치들이 석공들 마음대로 100% 되는 건 아닌 것 같고, 어느 정도의 논의와 허락을 받는 과정을 거치는 듯. 덴 보스의 핸드폰 천사는 원래 로켓 타고 날아가는 천사였다가 지금 모습으로 결정된 거라고 하니까. 게다가 이 천사를 만든 조각가는 ‘핸드폰엔 버튼이 딱 하나다. 신에게 연결되는 버튼.’ 이라는 말도 했다고 하니, 고딕 대성당에 핸드폰 든 천사가 있다 한들 좀 어떤가. 신이 있다면 그런 건 별로 신경 안 쓰실 것이다. 오히려 즐거워할지도 모른다. 어허 요녀석들, 내가 준 유머감각을 잘 쓰고 있군!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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