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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말가 Jul 03. 2020

노화에 대한 자세

나는 늙는 게 싫어요


안녕하세요. [502의 라디오브런치] 이야기 길잡이 이오영입니다.

여러분~ 무탈하신가요? 전 무탈합니다. 시절이 하 수상하여 평안하신 지를 여쭙게 되는 요즘입니다.


 전 5학년 때부터 칠판 글씨가 잘 보이지 않아서 안경을 쓰기 시작했는데요, 그렇게 한 40년 동안 안경을 쓰고 가까운 것과 먼 것을 보는 데에 지장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런데 41살 어느 날부터인가, 휴대폰을 보다가 텔레비전으로 눈을 돌렸을 때 초점 조정이 맞지 않는 거예요. 먼 곳을 보다가 책을 볼 때도 같은 현상이 반복됐죠. 불편해서 안경을 새로 하기 위해 안경점에서 검사를 받는데 안경사가 나직하게 말하는 거예요.


"나이가 어떻게 되시는지 모르겠지만, 노안이 온 거 같으신데요?"

쿵!

41살인데 노안이라니! 노안이라니!!


더 어처구니없는 것은 노안이 시작되게, 눈이 나빠지게  만든 원인이었어요. 그 당시 유행했던 애니팡이라는 게임 때문이었어요. 게임에 눈이 멀어서 하트 구걸해 가며 게임하다가 진짜로 눈이 아작(?)난 거죠. 디지털의 폐해도 폐해지만 게임 중독이 이렇게 무서운 거라는 걸 새삼 깨달았습니다.


 버티다 버티다가 결국 작년부터는 책 읽기가 너무 불편해져서 돋보기를 쓰기 시작했는데 올해는 조금 더 나빠진 것 같아요. '치킨 살 발라먹기, 게살 발라먹기, 반찬 하나만 골라 집어 올리기'가 돋보기를 쓰지 않으면 불편해요. 흑흑!

그리고 손톱과 발톱 깎을 때 안 보이는 거, 이거 정말 은근 짜증 나요. 요즘은 그냥 감으로 깎는다니까요. 근데 아이러니하게도 떨어진 손톱, 발톱은 엄청 잘 발견한다는 거 아닙니까!


 노화는 이뿐만이 아니었어요. 작년쯤부터는 건망증이 확 심해졌어요. 목욕하고 나와서 머리 말리다가 문득, 내가 이를 닦았는지 혀를 닦았는지 코를 풀고 나왔는지 의심스러울 때가 종종 생겨요.

가스 잠금은 두 번씩 확인해야 안심되는 건 기본이고, 무선 주전자에 물 끓여놓고 물이 다 식도록 잊고 있다가 물 끓이려고 다시 갔을 때 주전자에 물이 있는 걸 발견하고는 "아, 맞아!" 이러는 날도 있어요.

단무지 쌓아놓는 거야 뭐 20세기 때 일이랄까- 예사고요. 술 마신 다음 날은 증세가 더 심해져서 이젠 술을 좀 많이 줄이려고 해요. 음주는 인생 사는 낙(樂) 베스트 3위 안에 드는데... 말이죠.

갑자기 벌떡 일어나서 방으로 가다가 "내가 왜 방에 가려고 했지?" 하거나, 빨래를 들고 세탁실로 가야 하는데 부엌으로 가질 않나, 전자레인지에 음식 데워놓고 까맣게 잊은 채 아침에 발견하기도 하고, 약을 먹었는지 안 먹었는지 헷갈려서 남은 약을 세어 볼 때도 있었네요.

적고 보니 심한 거 같은데요.....


 그리고 자주, 잘 씻으려고 해요. 나이 들면 냄새난다잖아요. 묘한 노인 냄새 아세요? 뭔가 그 파우더향 같은 파우한 냄새. 짙은 섬유유연제 냄새, 짙은 세탁세제 냄새, 짙은 화장품 냄새.  불편하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화장품이나 세제, 유연제는 모두 무향을 써요. 섬유탈취제도 잘 고르셔야 해요. 탈취제는 탈취가 아니라 덮어 씌우는 거라 그 향이 다 날아가고 나면 에탄올 냄새랄까 먼지 냄새 같은 잔향이 남기도 하는데 그게 너무 거슬릴 때가 있어요. 나이 들면 냄새도 중요한 거 같아요. 요실금도 무시 못하죠. 괄약근 조절 힘도 젊은 시절보다는 약해지는 것도 사실입니다. 아으…


 50살. 오쉽쌀...

신체적으로 노화되어가고 있는 것이 느껴질 때는 솔직히 조금 마음이 착잡하죠. 거울을 보면 놀랄 때가 많습니다. 내 머릿속에 있는 내 얼굴이 아니라 20년은 늙어 있는 내 얼굴을 보고 깜짝 놀라요. 1년 정도 염색을 하지 않았더니 거의 백발이 됐거든요. 그래서 더 할머니처럼 보이기는 해요. 기미도 그렇고 탄력 없는 피부도 그렇고 이가 시린 것도 그렇고 백발도 모자라 흰색 눈썹을 발견했을 때는 정말......

거부할 수 없는 자연의 섭리를 거부하고 싶어서 발을 동동 굴러봅니다. 드러누워봅니다. 자연에 소리 질러 봅니다.


 늙고 싶지 않아!    할머니 되기 싫어!    

 시간이 흐르는 게 싫어!    너무 빨라........ 요.....


이런 거부의 몸짓이 무색하게 무릎, 손가락, 팔꿈치, 손목의 통증 증후군은 50살이 되기 전부터 이미 시작됐어요. 그래도 뭐 이런저런 증세 빼고는 건강한 편입니다. 근 4년 동안 병원 한번 간 적이 없을 만큼 건강합니다. 골다공증도 없고, 위나 심장도 건강하다네요. 건강검진상으로.

 거스를 수 없다면, 기왕 늙을 거라면 건강하게 늙을 수 있게 노력할 겁니다. 병원을 굉장히 싫어하고 병원에 돈 내는 건 더더더더 끔찍하게 싫거든요! (의사분들 싫어하실라나?^^)

 



 신체 운동을 하면 뇌도 운동이 돼서 정신건강에 좋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저는 운동이 좀... 버겁습니다. 끈기 있게 오래 하지 못하고 쉽게 포기해 버리거든요. 저에게는 [502의 라디오브런치] 방송을 하는 것이 노화를 늦추는 약인 것 같습니다. 사람이 너무 느슨해지면, 뇌까지 느슨해지잖아요. 방송의 긴장감이 느슨해지는 것을 조금 팽팽하게 당겨주는 느낌이에요. 이렇게 방송을 하는 동안에는 정신이 젊습니다. 즐거워서 그런 거겠죠?

여러분도 즐거운 꺼리(?)를 찾으시고 노화를 늦추시길 바랄게요~.


오늘은 [502의 라디오브런치]는 여기까지입니다. 다른 이야기로 다시 찾아오겠습니다.

지금까지 이야기 길잡이 이오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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