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갈이에서 발견해 싱크대 하수구에 버려졌지만 용케 살아남은 달팽이 두 마리가 있었다. 왠지 다시 버릴 수 없어서 같이 공생하기로 했고 그리하여 붙인 이름이 큰 녀석이 얼수구, 작은 녀석이 얼싱크다.
하지만 얼싱크는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을 보내고어쩌면 나에 의해 생매장을 당했을지도 모를 깊은 잠에 들었다.
얼수구는 혼자서 씩씩하게 잘 지내는 것으로 봤다. 얼수구 마음을 읽는 것은 매우, 상당히 어려웠으므로 내 마음을 반영해서 그렇게 봤다.
얼수구에게 딱히 잘해준 것은 없었다. 알을 낳을까 봐 흙도 깔아주지 않았으며 청경채를 아삭아삭 잘 먹는 걸 알면서 그냥 집에 있는 양배추나 배추, 상추를 번갈아 주었다. 그리고 달걀껍데기를 곱게 갈아서 주는 정도였다.
얼수구는 잘 돌아다니다가도 박쥐처럼 뚜껑에 매달려 잠을 자기 일쑤였고, 등껍데기에 물을 뿌려주면 자다가도 일어나서 돌아다녔다. 달걀가루 먹고 싸놓은 똥은 얼마나 이쁘고 기특한 지 힘들게 갈아준 보람을 느끼게 했다. 눈을 맞추며 고개를 갸웃거리는 모습이나 도롱뇽 흉내를 내고 있는 모습을 보면 미소를 짓지 않을 수 없었다.
매일매일 하루에 50번 이상은 들여다봤다. 보고 있으면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가버렸다. 그래서 얼수구의 운동반경이 궁금해서 하이퍼랩스 촬영도 했다. 30분 촬영하면 3분인가 정도로 압축해서 빠르게 보이는 촬영이다. 얼수구의 사생활을 도촬 한 느낌적인 느낌이었지만 지금도 매일 한 번은 그 영상들을 돌려본다.
오늘 얼수구의 집을 치웠다.
얼수구가 고이 잠에 들었다. 얼싱크 때처럼 생매장을 하지 않기 위해 5일 동안 지켜보았다.
5일 동안 얼수구를 지켜보면서, 얼굴을 내미는 게 아닌가, 살짝 움직인 거 아닌가, 스스로에게 희망고문을 했다.
얼수구는… 더 이상 등껍데기 밖으로 얼굴을 내밀지 않았다. 얼수구의 등껍데기가 투명해졌다. 온몸이 수축해 버려서 그런가 보다.
얼수구가… 얼수구의 등껍데기가 말라비틀어져 부서지기 전에 얼수구를 얼싱크 옆에 묻어주었다.
15센티 남짓한 얼수구의 집을 치웠을 뿐인데 그 자리가 훵-해 보인다. 너무 훵-……하다.
추억을 쌓았다.
예전 달팽이 사육에 대한 나쁜 기억을, 얼수구가 좋은 기억으로 어루만져주고 떠났다.
달팽이의 수명은 1년에서 2년. 그중에 60일 정도를 나와 함께 살았는데 과연 길팽이들보다는 나은 삶이었을까? 나는 진심으로 그러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