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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준영 May 13. 2024

용암이 만든 넓고 평평한 땅

가볍게 떠나는 과학여행 : 09 철원 소이산(철원용암대지)

  우리나라는 산이 많다. 국토의 70% 이상이 산으로 이루어져 있으니 넓고 평평한 지형을 찾아보기는 쉽지 않다. 그렇기에 수평선은 몰라도 지평선을 두 눈으로 볼 수 있는 극히 드물다. 우리나라 전체를 따져봐도 이럴진대 강원도는 어떨까? 강원도는 우리나라에서도 특히 산이 많은 곳이다. 전체가 산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강원도에 그나마 비교적 넓고 평평한 땅을 가진 지역이 있는데 그곳이 바로 철원이다. 


  철원 하면 떠오르는 것이 몇 가지 있다. 하나는 북한과 접하고 있는 최전방의 군사 도시라는 것이고 두 번째는 오대쌀이라는 철원의 특산품이다. 최근에는 관광지로 조금씩 인지도가 올라가고 있는 듯 하지만 아직 저 두 가지를 넘어서지는 못하고 있다. 철원을 대표하는 저 두 가지 특징을 모두 살펴볼 수 있는 곳이 있다. 바로 오늘 소개할 소이산이다. 

철원역사문화공원 입구에서 바라본 소이산, 소이산은 해발고도 362m의 나지막한 산이다.

  소이산은  해발고도 362m의 나지막한 산이다. 1,947미터의 한라산이나 1,708미터의 설악산에 비하면 자그마한 동산 수준이다. 하지만 소이산은 어떤 이름난 산 정상에서도 볼 수 없을 멋진 풍경을 보여준다. 소이산이 보여주는 풍경에 대해서는 조금 후에 자세히 다뤄보려 한다. 


  우선 소이산에 올라가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걸어서 올라가는 방법이다. 소이산에는 소이산 생태숲 녹색길이라는 걷기 코스가 조성되어 있다. 이 길을 따라 걸으면 소이산 정상까지 가 볼 수 있다. 조금 더 쉽게 올라갈 수 있는 방법은 모노레일을 타는 것이다. 모노레일은 '철원역사문화공원' 내에 있는 철원역에서 탈 수 있다. 다만 모노레일이 8인승으로 사이즈가 작다. 주말과 같이 관광객이 많은 날은 미리 인터넷으로 표를 예매하고 가는 것이 좋다.

철원역사문화공원 내의 철원역과 소이산 모노레일. 철원역에서 모노레일을 탈 수 있다.

  소이산 정상에 서면 가장 먼저 넓게 펼쳐진 평야가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이곳에서 내려다 보이는 넓은 평원이 바로 오대쌀의 고향이라 할 수 있는 철원평야다. 강원도가 보유하고 있는 거의 유일한 넓게 펼쳐진 땅이다. 수많은 논들이 봄, 여름, 가을, 겨울 각기 다른 풍경을 보여준다. 평야는 북쪽으로 넓게 이어진다. 날씨가 좋은 날이면 저 멀리 북쪽의 산들이 지평선 끝이 살짝 걸려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지평선이라고 하기에 조금 아쉽지만 이렇게 탁 트인 시야를 얻을 수 있는 곳은 많지 않다. 과거 궁예가 자신이 건국한 태봉의 수도로 철원을 삼고 도성을 지은 곳이 바로 이곳 철원용암대지였다.

소이산 정상에서 내려다본 철원용암대지(철원 평야). 이 넓고 평평한 땅은 과거 용암에 이 지역을 가득 채워 만든 지형이다.

  이 넓은 평야는 용암이 만든 지형이다. 이렇게 용암이 흘러나와 만든 넓은 땅을 '용암대지'라고 한다. 철원용암대지는 약 54만 년 전에서 약 12만 년 전 사이에 철원 북쪽의 오리산과 680 고지를 중심으로 여러 차례 분출한 용암이 만든 지형으로 면적은 약 600㎢ , 평균 고도는 약 300m에 이른다. 점도가 낮은 용암은 액체와 같이 잘 흐르는 특징이 있는데 이렇게 분출된 용암이 낮은 지형을 따라 흐르면서 낮은 곳을 메우고 넓게 펼쳐져 만들어진 지형이다. 커다란 호수의 수면이 평평한 것과 마찬가지로 평평하게 퍼진 용암이 굳어 암석이 되면서 넓은 용암대지가 만들어진 것이다. 


  철원용암대지를 내려다보면 논과 논들 사이에 마치 '섬'처럼 남아 있는 지형들을 볼 수 있다. 나무가 우거진 작은 산, 언덕처럼 생긴 지형이라 확인하기도 쉽다. 이런 지형을 스텝토(steptoe)라고 한다. 스텝토는 과거에 용암이 차올라 용암대지가 만들어질 때 고도 높아 실제 용암의 호수 속에 섬처럼 남아있던 지형이다. 따라서 스텝토를 구성하는 암석은 그 주변의 용암대지와는 다르다. 

철원용암대지 중간에 남아있는 작은 산. 이런 지형을 스텝토라고 한다.

  소이산에서 내려다보는 철원용암대지는 '한탄강지질공원'에 포함된 지질명소다. 한탄강지질공원은 유네스코가 승인한 세계지질공원이다. 세계가 지질학적으로 가치가 높은 지역이라고 인증한 곳이라는 뜻이다. 소이산 정상에서는 또 다른 지질명소인 '샘통'도 내려다볼 수 있다. 물론 거리가 멀어 자세히 볼 수는 없지만 대략적인 위치는 볼 수 있다. 재미있는 이름을 가진 '샘통'은 지하수가 1년 내내 일정한 온도를 가지고 끊임없이 솟아오르는 지형으로 현무암 절리를 따라 스며든 물이 단단한 기반암인 화강암에 막혀 더 내려가지 못하고 흐르다가 솟아 나오는 용출수 지역이다. 샘통 인근 농가들에서는 이런 샘통의 특성을 활용해 고추냉이를 재배하고 있는데, 이 고추냉이는 오대쌀에 이은 철원의 대표 농산물로 유명하다.


  사실 소이산은 분단의 아픔과 한국전쟁의 흔적을 살펴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일단 소이산 자체가 오랫동안 군에서 관리하던 지역이다. 실제 정상 부근에는 포 진지와 미군이 과거 사용하던 막사, 벙커 등이 남아있다. 정상에서는 백마고지, 아이스크림고지 등 한국전쟁 당시 격전지를 볼 수 있다. 사실 소이산에서 보는 북쪽 지역의 상당 부분 민간인 통제구역이며, 현재 북한과 우리나라를 나누는 군사분계선도 확인할 수 있다. 당연히 북한 지역도 볼 수 있다.

소이산 정상 부근에 남아있는 미군 막사(왼쪽 건물)와 벙커(오른쪽 사람들이 들어가는 곳).

  소이산에서는 '노동당사' 건물도 내려다 보인다. 현재는 보수정비 공사 중(공사는 올 11월까지 예정)으로 가림막으로 가려져 있다. 노동당사는 1946년 북한의 조선노동당이 세운 건물로 현재 등록문화재로 관리되고 있다. 한국전쟁 이전 군정 시기 철원은 소련군정 치하였고 이때 지어진 건물이다. 남북분단의 아픔을 보여주는 흔적이라 할 수 있다. 

노동당사. 현재는 보강공사를 위해 가림막이 설치되어 있다. 예정대로라면 올해 공사가 끝나고 2025년부터는 다시 관람이 가능하다.

  사실 철원은 그동안 안보 관광지로 이름 높은 지역이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한탄강지질공원의 지질명소들을 중심으로 지질여행지로 급 부상하고 있다. 또 두루미와 같은 철새들을 조망하는 대표적인 지역으로도 이름이 높다. 역사와 과학을 함께 살펴볼 수 있는 관광지라니? 멋지지 않은가? 그리고 안보 관광과 지질 명소를 한 번에 있는 소이산! 반드시 한 번은 가봐야 하는 장소다.



소이산 정상에서 내려다보는 철원 용암대지! 영상으로 확인하기 

https://youtu.be/rOd-X2b6KW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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