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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준영 Apr 29. 2024

신록의 계절에 마주하는 초록

일상 속 과학 마주하기 : 01 봄.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녹색의 향연

  개인적으로 내가 특별히 더 좋아하는 계절은 없다. 각 계절마다 장점이 있는가 하면 단점도 있기 때문이다. 나에게 있어서 봄은 단점이 부각되는 계절이다. 내가 봄철 꽃가루 알레르기가 심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특히 자작나무류의 꽃가루 알레르기 반응이 심한 편이다. 동네 이비인후과 선생님의 말씀에 따르면 나의 알레르기 반응 수치가 본인이 지금까지 본 것 중 최고 수준이라고 했다. 물론 지금도 여전하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오늘 역시 약의 도움으로 버티고 있음은 물론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봄이 마냥 싫지는 않다. 봄에만 볼 수 있는 '신록'의 빛깔 때문이다.


  학창 시절에 읽었던 국어 교과서 속의 작품 중 제목이 기억나는 것은 한 손에 꼽는다. 그중 하나가 <신록예찬>이라는 수필이다. 기억하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신록예찬>은 봄이 온 산이 녹엽으로 물들기 시작하는 신록의 아름다움과 의미, 힘을 논한 이양하 선생의 1947년 작품이다. 작품 속 구체적 표현은 전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제목만은 잊히지 않는다. 이제 중년이 되어서일까? 최근에는 봄이 보여주는 '신록'의 아름다움이 더 크게 느껴지곤 한다.


겨울에서 깨어나 노랑, 연두, 녹색이 빛으로 어우러진 4월의 산


  식물에게 있어 잎은 중요한 기관이다. 광합성을 통해 에너지를 생산하는 기관이며 동시에 호흡과 증산작용도 잎에서 일어난다. 식물은 잎이 없으면 양분을 생산하지도 못하며, 뿌리에서 물을 빨아들일 수도 없다. 물이 뿌리 끝에서 몇 십 미터 높이의 가지 끝까지 물을 올려 보낼 수 있는 것은 증산작용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잎이 새로 올라오는 시기의 식물은 아름다울 수밖에 없으리라.


  신록의 사전적 의미는 '늦봄이나 초여름에 새로 나온 잎의 푸른빛'이라고 정의되어 있다. 단어의 원래 뜻에는 새롭게 올라온 잎의 빛깔만을 의미한다. 물론 이때 나뭇잎 한 장 한 장이 보여주는 빛도 곱다. 이토록 부드러우면서 은은한 광택이 흐르는, 동시에 마음속의 무언가를 건드리는 녹색 빛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하지만 봄 산이 아름다운 더 큰 이유는 여러 종류의 나무들이 틔워낸 잎이 어우러져 다양한 색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나무는 종류에 따라 조금씩 다른 색을 보여준다. 나뭇잎은 모두 녹색 계통이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모두 색이 다르다. 연두색, 녹색, 군청색 등등. 가끔 미술이나 디자인을 전공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을 하곤 하는데, 그런 생각을 하게 만드는 이유의 절반이 바로 봄의 산사면에서 발견하는 녹색 계열의 빛 때문이다. 디자인을 전공하면 저 다양한 녹색들을 별도의 색 이름으로 부를 수 있지 않을까? 파인 그린, 아티초크 그린, 라임 펀치, 그린피스, 올리브그린, 오팔그린, 씨 그린 등의 신기한 이름으로 당당하게 말이다.


나무들은 나무의 종류에 따라 조금씩 다른 색을 보이는데, 이런 차이를 활용하면 사진만으로 나무의 분포를 알 수 있다.


  나무마다 다른 잎 색을 연구에 이용하기도 한다. 예를 들면 특정 지역에 자생하는 나무의 종류와 분포를 조사할 때 이런 특성을 이용할 수 있다. 항공사진이나 인공위성 사진을 활용해 빛의 특성을 분석하면 특정 지역의 수목 분포를 지도로 만들 수 있다. 예를 들면 북한산에는 참나무류가 30%, 소나무가 25%, 낙엽송이 15%, 전나무가 10%, 기타 나무 20% 정도가 있다는 식으로 분류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지도에 각 나무 종이 분포하는 지역을 표시하는 것도 가능하다.


  전통적인 수목 분포 조사 방법은 현지 조사다. 그러다가 항공사진이 쓰이기 시작했고, 최근에는 인공위성 사진을 활용한 수목 분류 방법이 개발되고 있다. 더욱이 최근에는 AI가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는 만큼 여기에 빅데이터를 접목한다면 아마 사진 한 장으로 정확한 나무의 분포를 조사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현지조사를 통해 비교적 정확하게 수목 분포를 파악하고 있는 지역의 사진자료로 AI를 학습시키면 정확도가 어마어마하게 올라갈 것이다.


  이양하 선생님의 '신록예찬'에서 신록의 계절은 5월이다. 신록이라는 단어가 의미하는 때는 늦봄에서 초여름으로 월로 말하자면 결국 5월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지구온난화의 영향인지 몰라도, 오히려 4월 중순에서 말 경의 산이 더욱 아름다운 빛을 뽐내고 있다. 5월이 되면 한여름의 짙은 녹음으로 산의 빛깔이 변한다. 그 색도 물론 아름답지만 싱그러운 신록 정도는 아니다. 


이제 신록의 빛을 감상할 수 있는 시간이 별로 없다. 다시 보려면 1년을 기다려야 한다. 볼 수 있을 때 많이 봐두자. 그런 의미에서 이번 주말은 등산을 한번 가보는 것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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