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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준영 Apr 22. 2024

<더 문> 뛰어난 SF, 눈높이가 조금 달랐을 뿐

SF 영화 다시보기 : 01 화려한 CG로 모두를 놀라게 한 <더 문>

  미국에는 여전히 인류가 달에 간 적이 없다고 믿는 '달 착륙 허구설'을 주장하는 음모론자들이 많이 있다. 수 없이 존재하는 많은 증거는 전혀 믿지 않고 자신들의 주장만 반복하는 사람들이다. 확증편향에 빠진 사람들인지 아니면, 돈벌이 수단으로 음모론을 선택하고는 스스로 최면을 거는 사람들인지는 확실치 않지만. 물론 달 착륙은 사실이다. 미국은 ‘아폴로 계획’을 통해 달에 여러 차례 사람을 보냈다. ‘아폴로 11호’가 달 착륙에 성공한 날이 1969년 7월 20일이니 벌써 50년이 지난 일이라는 점은 놀랄 일은 아니다. 하지만 그 사이 미국을 제외하고는 그 어떤 국가도 유인 달 탐사에 성공하지 못했다는 사실은 아주 놀랄만하다.         

  학창 시절 닐 암스트롱이 달에 첫발을 내딛는 영상을 접한 후, 한동안 우리나라는 과연 언제쯤 달에 사람을 보낼 수 있을까?라는 의문을 가진 적이 있었다. 2020년쯤이면 달은 물론이고 화성까지 우리나라 사람들이 갈 수 있을 거로 생각했는데, 나의 미래 예측은 여지없이 빗나갔다. 그래도 누리호 발사 성공으로 발사체를 갖게 되었고, ‘다누리호’라는 탐사선을 달 궤도에 올려두었으니 아주 먼 미래의 일은 아닐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2023년에는 대한민국의 깃발에 달 표면에서 나부끼는 장면을 볼 수 있었다. 물론 영화 <더 문> 이야기다.


<더 문> 포스터(출처 시네21 영화정보)


  영화 <더 문>은 2023년 8월 개봉한 우리나라 SF 영화다. '신과 함께'로 흥행 감독의 대열에 합류한 김용화 감독의 작품이었고 280억이라는 제작비와, 설경구, 김희애, 도경수 등 실력 있는 배우들이 참여한 작품이라 개봉 전부터 관심을 받는 작품이었다. 물론 코로나19 등으로 침체한 영화 시장 상황이 조금은 우려스럽긴 했지만, 개인적으로는 걱정보다 기대가 컸던 작품이었다.      

  개봉하고 며칠 지나지 않아 극장을 찾았다. 당연히 <더 문>을 보기 위해서였다. 알다시피 <더 문>은 흥행에서는 분명 실패했다. 내가 영화를 본 그날, 사실 나는 그러려니 했다. 내가 서울 근처의 한 도시에 거주하다 보니 평일에는 통상 동네 극장에는 사람이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솔직히 그렇게까지 대중들의 외면을 받을 줄 몰랐다. 사람들에게 <더 문>은 별 볼 것 없는 영화였을지 모르지만, 나에게는 아니었다. 정말 훌륭한 SF였다. 다만 대중들과 눈높이가 조금 달랐을 뿐.      

  <더 문>의 스토리에 대해서는 자세히 언급하지 않으려 한다. 나는 여전히 <더 문>이 볼만한 영화라고 생각하기에, 이 글을 통해 영화를 접한 분들이 적극적으로 찾아보시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스포일러는 할 수 없으니 말이다. 어쩌면 ‘사고로 인해 홀로 달에 고립된 우주 대원 선우(도경수)와 필사적으로 그를 구하려는 전 우주센터장 재국(설경구)의 사투를 그린 영화’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이 정도는 영화 소개 사이트에 나와 있는 내용이니 말이다.     


  내가 <더 문>에서 인상 깊게 보았던 장면이 몇 가지 있다. 그중 첫 번째는 고장 난 우리호(달 탐사선)를 수리하기 위해 승무원 2인이 우주 유영을 하는 장면이다. 주인공 선우(도경수)의 선배인 상원(김래원)과 윤종(이이경)이 비극적으로 죽음을 맞이하는 그 장면 말이다. 우주 유영 장면이 실제 과거 미국의 우주왕복선이나 국제우저정거장(ISS)의 우주인이 유영하는 장면을 떠올리게 할 정도로 실감 났다. 물론 상원(김래원)이 어쩔 수 없는 상황임을 인지하고 스스로 탐사선에서 멀어지는 장면은 그래비티에서 조지 클루니가 시야 밖으로 천천히 사라지는 장면을 떠올리게 했지만 말이다. 어쩌면 감독의 의도였을지도 모를 일이다.


달 표면에서 시료를 채취하는 선우 (출처 시네21 영화정보)


  또 다른 인상 깊은 장면은 월면차를 타고 달 표면을 탐사하는 선우의 모습이었다. 사실 달 표면 은 모두가 인상적이었다. 영화 설정상 미국에 이은 두 번째 유인 달 착륙이니 오죽하겠는가. 특히 달 착륙선이 착륙하는 장면, 유성우가 쏟아지는 와중에 달을 질주하는 장면은 압권이었다. 쏟아지는 유성우가 만든 운석 구덩이가 과학적으로 오류라는 지적이 있긴 했지만, 우주에서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을 적절히 표현했다는 생각으로 넘어갈 수 있다. 영화이기에 시각적인 효과 역시 중요함은 당연하다. 물론 뛰어난 시각 효과도 감동적이었지만 우리나라의 과학자(UDT 출신이긴 하지만 분자 물리학을 전공한)가 달에 가서 직접 드릴링 작업을 통해 달에서 연구를 진행하고 샘플을 채집한다는 설정에 감동했는지도 모르겠다.     


유성우를 피해 달 표면을 내달리는 월면차(출처 시네21 영화정보)


  초반에 등장하는 태양폭풍에 의한 재난 현상도 눈여겨볼 만한 장면이다. 우리호는 영화 초반부터 지구와 통신두절 상태다. 영화에서 등장하는 통신두절의 이유는 흑점 폭발로 인한 태양폭풍이다. 태양폭풍은 태양한 번에 엄청나게 많은 물질을 방출해 우리에게 영향을 주는 것이다. 실제로 태양폭풍은 통신기기와 전자기기를 먹통으로 만들 수 있다. 우주 공간에 나가서 달로 향하는 우리호는 지구 자기장에 의한 방어 영역을 벗어났을 테니, 피해를 더 심하게 받을 수 있다는 점도 충분히 가능한 시나리오다. 참고로 우리나라도 태양풍 변화를 감시하고 있으며, 필요한 경우 우주재난경보를 발령하기도 한다.


  물론 과학적 설정이 다소 아쉬운 부분들도 있다. 일단 달 궤도를 돌고 있는 우리호와 나로우주센터가 실시간으로 소통한다. 지구와 달 사이의 거리는 빛의 속도로도 왕복 2.5초 이상 걸린다. 교신이 바로 옆 사람과 이야기하듯이 진행되는 것은 과학적 오류다. 달 착륙선을 왜 서서 제어하는지도 의문이다. 그리고 영화에서는 달 착륙선이 여러 차례 엔진을 점화하며 이륙을 시도하는데 통상 우주선은 과할 정도로 연료를 싣지 않는다는 점을 고려하면 다소 무리한 설정이다. 하지만 <더 문>은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영화다. 아쉽기는 하지만 그것 자체가 큰 흠은 아니다.     

  또 과학적 오류는 아니지만 영화를 본 사람들이 오해하지 않도록 설명해야 할 장면도 있다. 우선 소백산천문대는 영화에서는 재국(설경구)을 비롯한 몇 사람만 근무하고, 근무자들이 사냥이나 다니는 곳으로 묘사되지만 그런 곳이 아니다. 현재도 연구를 비롯해 여러 가지 목적으로 꾸준히 활용되는 곳이다. 물론 주 망원경의 크기가 그리 크지 않은 것은 안타깝지만. 그리고 극 중에 등장하는 달 궤도 유인 우주정거장은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 미국 주도로 추진되고 있는 아르테미스 프로젝트가 성공적으로 진행된다면 훗날 달 궤도에 우주정거장이 만들어질 수도 있겠지만 한참 시간이 더 필요한 일이다. 

  왜 인지는 모르지만 우리나라가 미국 등 우주 연합국가의 반대를 무릎쓰고 달탐사선을 발사한 설정인데 이 점도 조금 의아하긴 하다. 우리나라가 달 탐사에 나서게 된다면 국제 공조를 통해 추진할 가능성이 더 크다. 미국과 각을 세우고 달 탐사를 벌이리란 생각을 하기는 쉽지 않다. 아마 우리나라에서 그 정도의 예산을 편성하지는 않을 것이다. 갑자기 정치적 이슈가 되지 않는 한 말이다. 


나로우주센터 관제실의 재국(출처 시네21 영화정보)


  영화이기에 과학적 오류는 어느 정도 허용된다. 하지만 영화가 만들어내고 유지하는 감정선이 관객들에게 공감을 주지 못한 것은 어느 정도 사실이다. 어쩌면 관객들이 <더 문>에서 느끼기를 원한 감정은 슬픔, 안타까움이나 자랑스러움이 아니라, 담담함이었을지도 모른다. 주인공들이 부르짖음과 눈물이 아니라 담담한 목소리와 떨리는 손길을 스크린에서 보였다면 흥행 성적도 조금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배우들의 연기는 흠잡을 데 없었다.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을 부각하는 듯한 장면(달 착륙후 대통령의 연설), 선우가 위기에 빠졌을 때 흐르는 음악은 비장한 분위기를 자아내는데 이 점도 조금 아쉽기는 하다. 

  리우드의 영화 중 우리나라에서 사랑을 받은 영화는 의외로 많다. 천만 관객을 돌파한 ‘인터스텔라’는 물론이고 ‘마션’이나 ‘그래비티’와 같은 작품들도 좋은 성적표를 받았다. 어쩌면 우리나라 관객들은 오락과 신파보다는 엄밀한 과학적 근거가 더 강조된 SF 영화를 좋아하는  모르겠다. 하지만 ‘인터스텔라’도 가족 간의 사랑이 중요한 주제였고, 전 세계에서 흥행에 성공한 ‘아바타 2’ 역시 가족 간의 사랑이 핵심 키워드다. 그런 측면에서 보자면 한국 신파라고 해서 ‘더 문’이 받았던 혹평은 다소 가혹하게 느껴진다. 어찌 되었든 신파가 오랜 기간 한국 영화의 흥행 코드였던 점을 고려하면 더더욱 그렇다.     

  우리나라는 사실 SF 불모지에 가깝다. 가끔 장편 SF 영화가 등장하긴 했다. 하지만 다른 장르에 비해 SF는 외면받는 장르라는 것에는 이견이 없다. 비교적 최근에 '승리호'와 '정이', '외계+인' 등의 영화가 제작되긴 했지만, 상업적으로 성공을 거두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어쩌면 '더 문'을 비롯해 앞서 언급된 영화들로 인해 SF 장르의 영화 제작이 더욱 어려워지지 않을까 걱정이 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가 잊으면 안 되는 점이 하나 있다. 실패 없이는 성공도 있을 수 없다는 점이다. 어떤 실패는 정말 의미 없는 실패이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은 실패도 많다. 나는 '더 문'이 그렇다고 생각한다.

  더 문으로 축적된 우리의 CG 기술이, 이제 충분히 우주를 배경으로 영화를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이, 더 부각되길 바란다. 그래서 더 많은 우리 SF 영화가 등장하기를 바래 본다. 사실 훌륭한 재료는 많이 있다. 최근에는 한국 SF 소설도 질적으로, 양적으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우리나라 작가들의 SF 소설 중에 영화화할 만한 것들도 많다. 마침 김초엽 작가의 ‘지구 끝의 온실’, ‘스펙트럼’이 영화로 만들어진다는 소식을 접했다. 더 문으로 축적된 에너지가 이런 작품들을 통해 폭발하기를 기대해 본다.     

  어찌 되었든, 내 눈에 <더 문>은 단순히 우리나라가 만든 우주 재난영화는 아니었다. 한국 영화가 SF 장르에서도 성장하고 있다는 증거였고, 우리가 어떤 영화를 보여줄 수 있는지 증명하는 훌륭한 도전이었다. 흥행에 실패했으면 어떠한가? 과학자들은 실패에서 마냥 좌절하지 않는다. 실패의 원인을 찾고, 그걸 발판 삼아 한발 더 나아간다. 유명한 로봇공학자인 데니스 홍 교수는 과거 한 강연에서 이런 말을 했다 “걸림돌과 디딤돌은 둘 다 돌이다, 우리가 어떻게 생각하고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더 문>을 걸림돌로 볼 것인가? 아니면 튼튼한 디딤돌로 볼 것인가?

자 이제 우리의 선택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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