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볍게 떠나는 과학여행 : 08 강원도 철원한탄강주상절리길
나는 강원도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대학을 다니기 전까지 강원도라는 물리적 공간을 벗어난 적이 별로 없다. 지금은 흔하지만, 그 당시 우리 집에는 자동차도 없었기에 가족끼리 여행을 떠나는 일도 없었다. 고작 학교에서 가는 수학여행 정도가 내가 강원도를 벗어나는 유일한 일이었다. 대학을 다니기 위해 잠시 강원도를 떠났지만, 국방의 의무는 다시 강원도로 돌아와 수행했으니.
내가 나고 자란 강원도지만, 사실 나는 강원도에 대해서 자세히 알지 못한다. 오랜 시간을 보냈지만 내가 살던 동네 이외에는 관심도 별로 없었고, 돌아다니지도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학과 관련된 내용을 떠들고, 글로 쓰고 있는 지금에 와서는 강원도라고 하는 공간이 과학과 관련해서 많은 이야깃거리를 가지고 있는 공간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이번에 찾아간 곳은 강원도 철원이다. 강원도 철원은 국가지질공원이자 유네스코가 승인한 세계지질공원인 '한탄강지질공원'이 시작되는 곳이다. 철원지역과 한탄강 유역은 신생대 제4기에 분출한 용암에 의해 만들어진 현무암 지형이 발달되어 잇는 곳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구멍이 숭숭 뚫린 검은색 돌 '현무암'은 제주에만 있다고 생각하고 하는데, 그렇지 않다. 내륙에도 현무암을 볼 수 있는데, 그중 대표적인 곳이 바로 철원을 비롯한 한탄강 유역이다.
<철원한탄강 주상절리길>은 지난 2021년 개장한 곳으로 올 4월 개장 3년 만에 방문객 200만 명을 돌파했을 만큼 사람들이 많이 찾고 있는 곳이다. 길이 3.6km의 이 길은 절벽을 따라 아슬아슬하게 매달린 길이 주는 스릴과 한탄강 유역의 아름다운 풍경으로 유명한 곳이다. 내가 이곳을 찾은 날에도 양쪽 매표소 주차장에는 수많은 차들이 주차되어 있었고 주상절리길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사실 이곳은 아슬아슬한 잔도와 풍경으로 유명하지만, 다양한 지질학적 구조를 살펴볼 수 있는 자연학습의 장이기도 하다. 길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주상절리는 물론이고, 판상절리, 단층, 부정합, 하식동굴, 돌개구멍 등의 다양한 구조를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곳이다.
주상절리는 용암이 식어 현무암과 같은 화산암이 될 때 만들어지는 기둥모양의 구조를 말한다. 액체 상태인 용암이 고체상태인 암석으로 변할 때 부피가 작아져야 하는데, 용암 전체가 한 덩어리로 수축할 시간적 여유가 없어 부분적으로 수축점을 중심으로 수축이 일어나며 만들어지는 지형이다.
기둥 모양의 주상절리와는 달리 수평 방향으로 넓은 판 형태로 암석이 갈라지는 구조도 볼 수 있다. 이런 구조는 현무암이 아니라 이 지역의 기반암을 이루고 있는 화강암에서 관찰된다. 원래 화강암은 땅 속 깊은 곳에서 마그마가 천천히 식어 만들어진다. 이렇게 만들어진 화강암이 지표에 노출이 되면, 생성 당시 존재했던 높은 압력이 사라지게 되고 이 영향으로 암석이 껍질처럼 벗겨지는 '박리'현상이 관찰되기도 하며, 수평 방향의 암석 갈라짐이 보이게 된다. 이런 갈라짐을 '수평절리', '또는 판상절리'라고 한다.
또 주상절리길을 걷다 보면 길 반대편 강변에 잘 발달된 절벽 지형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절벽을 자세히 살펴보면, 가로로 길게 뻗은 선(균열)이 보인다. 이 선 아래쪽과 위쪽의 현무암은 각각 다른 용암에 의해 만들어진 현무암이다. 용암이 한번 흐르고 굳어져 현무암이 만들어진 후에 다시 용암이 흘러 두 번째 현무암 층을 만들고 다시 용암이 흘러 또 다른 층을 만드는 식이다. 이 지역에서는 최소 세 차례 이상 용암이 흘렀다고 알려져 있다.
이외에도 주상절리길에서는 다양한 지질 구조를 확인할 수 있다. 강물이나 빗물에 의해 절벽의 아래쪽이 먼저 침식을 받으면서 부서져 절별 안쪽으로 움푹 파인 '하식동굴'과 주상절리 기둥이 부서져내려 쌓이면서 만들어진 '돌무더기(너덜)', 지층이 큰 힘에 의해 끊어진 '단층'도 확인할 수 있다.
순담 쪽 강바닥을 보면 검은색 돌과 흰색 돌들이 마구 섞여 있는 강바닥을 볼 수 있다. 이 지역의 기반암인 화강암과 그 위를 부정합으로 덮고 있는 현무암에서 기원한 돌덩이를 모두 강바닥에서 확인할 수 있기 때문에 이런 특징을 보인다.
물론 길 자체가 주는 스릴감도 빼놓을 수 없는 매력이다. 절대 사람이 걸을 일이 없는 절벽에 조성된 길이니 마치 하늘 위를 걷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사실 길의 상당 부분이 공중에 떠 있는 구조이기도 하니 '하늘길'이라는 말이 마냥 틀린 말도 아니다. 주상절리길은 일부 계단이 있긴 하지만 난도가 높은 걷기 코스는 아니다.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도 충분히 걸을 수 있다. 다만 공중에 설치된 구조물을 걸어야 하므로 고소공포증이 심한 사람에게는 적합하지 않다.
참고로 이곳은 9시~16시에 드르니, 순담 양쪽 매표소를 통해 입장할 수 있다. 매주 화요일과 1월 1일, 추석, 설날 당일에는 휴무다. 입장료는 성인 만원, 18세 이하 소인은 4천 원이지만, 철원사랑상품권으로 각각 5천 원과 2천 원을 돌려주니 실제 입장료는 5천 원, 2천 원이다.(상품권은 철원 지역의 시장, 음식점 등에서 사용 가능하다) 보통 주상절리길 양쪽 끝의 '드르니'나 '순담'에서 반대쪽으로 향해 걷게 되는데, 공휴일에는 각 매표소 주차장을 연결하는 셔틀이 운영된다. 한쪽 주차장에 차를 대고 3.6km의 코스를 걷고 나오면 셔틀을 이용해 자신의 차가 있는 곳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다는 의미다.
과학과 관련된 다양한 지형을 확인할 수 있고, 아름다운 풍경을 두 눈에 담을 수도 있으며, 동시에 스릴까지 즐길 수 있다니? 일석삼조의 여행지라 할 수 있다. 가족, 아이들과 함께 이번 주말은 철원으로 한번 떠나보시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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