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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rara Mar 08. 2020

그래도 봄은 오고 꽃은 피겠지

슴슴한 켄터키 일상 한 스푼-2

이곳 켄터키에도 코로나바이러스 확진자가 발생했다. 그것도 우리 가족이 사는 렉싱턴에서 첫 확진자가 나왔다. 앞으로 얼마나 많은 환자가 발생할지 우리 가족의 생활에는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칠지 걱정이 많지만 지금 할 수 있는 가장 현명한 행동은 열심히 손 씻고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하면서 최대한 평범한 일상을 영위하는 것.

그래도 이런 상황에 여행을 갈 수는 없는 노릇이어서 아이 봄방학을 앞두고 계획했던 뉴올리언가족여행은 모두 취소했고 개인적으로 5월에 계획 중이던 스페인 산티아고 길 걷기는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급속도로 퍼지고 있는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 비행기표도 예약하지 못하고 있다.

 한국은 일련의 사태를 겪으면서 의료체계의 신속한 대응과 우수한 접근성, 정보의 투명한 공유로 외국 언론에서도 호평을 받고 있는데 이곳은 사생활 보호 등의 이유로 확진자의 동선, 직업 기본적인 내용도 공개가 되지 않고 있는 답답한 상황이다.

그래도 봄은 오고 있다. 추운 날씨와 잦은 비로 한동안 YMCA 실내 트랙만 돌고 있던 터였다. 바깥에서 걷는 것만큼은 아니지만 트레드밀 위에서 걷는 것보다는 실내 트랙이 낫다. 트랙의 절반 정도는 통유리 창을 통해 작은 시냇물이 흐르는 풀밭을 바라보면서 걸을 수 있고 운이 좋으면 풀밭을 뛰어다니는 수달도 멀리서나마 목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바깥에서 걷는 시간이 그리웠는데 모처럼 해가 반짝이던 오후, 부랴부랴 공원에 나가보니 어느새 개불알꽃이 소담스럽게 피어있는 게 아닌가. 반갑고 대견한 마음에 작은 꽃잎을 쓰다듬어 주고 싶었다. 내가 살던 진주는 봄이 되면 온통 벚꽃으로 분홍빛 물이 들곤 한다. 동네에서 보는 흔한 벚꽃에 질리면 가까운 지리산이나 섬진강으로 달려가서 보다 유명한 벚꽃도 구경할 수 있다. 나중에 이곳 렉싱턴은 어떤 꽃으로 기억될까?

오늘은 지난 1월 추위가 한창일 때 세인트루이스 식물원에 갔다가 사 온 야생화 씨앗을 집 앞에 뿌렸다. 주차장으로 이어지는 잔디밭에 풀 없이 흙으로만 되어 있는 작은 공간을 모종삽으로 살살 긁은 후 통에 든 씨앗을 꺼내서 흙 위에 골고루 뿌렸다. 이베리스의 하얀 꽃, 베이비 블루아이즈의 파란 꽃, 네모필라의 보라 꽃, 아프리칸 데이지의 주황색 꽃 등 집 앞에 알록달록 야생화가 피어난다면 그걸 바라볼 때마다 마음이 꽃이 핀 듯 화사해지겠지. 내일은 아들에게 자주 읽어줬던 동화책 속 주인공 미스 럼피우스가 동네 여기저기에 루핀 꽃씨를 뿌린 것처럼 내가 자주 가는 산책로며 공원 여기저기에 야생화 씨를 뿌려볼 작정이다.

내가 뿌린 꽃씨가 꽃을 피어내고 길을 걷는 누군가의 마음이 그 꽃으로 잠시나마 화사해진다면 좋겠다.


봄은 어김없이 찾아오고 꽃은 분명히 필 것이다. 

온 세상을 휩쓸고 있는 바이러스도 언젠가는 잦아들 것이다.


한 하늘 아래

너와 나는 살아있다.

그것만으로도 아직은 살 수 있고

나에게 허여 된 시간을

그래도 열심히 살아야 한다.

그냥 피었다 지면

그만일 들꽃이지만

홀씨들 날릴 강한 바람을

아직은 기다려야 한다.

-서정윤의 들꽃에게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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