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30대의 생활기록부 열람기
"과거로 돌아가면 넌 뭐 할래?"
잊을 만 하면 한번씩 듣는 질문이었다. 그 질문에는 불편하게도 '우리는 모두 과거로 돌아가고 싶다'라는 전제가 내포되어 있는 것만 같았다. 숏폼 광고와 매체만 봐도 과거로 돌아가고 싶어하는 사람들을 자극하기 위해 열심이다. 하지만 나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나는 과거로 돌아가고 싶었던 적이 없다. 그 이유로는 그냥 지금이 좋아서라고 낭만적으로 이야기하고 싶지만, 그렇지 않다. 정확히 말하자면 과거에는 내가 좋았다. 내 삶에 불만이 없었다. 그러나 철 든 내가, 과거의 나를 싫어한다. 왜 저렇게 오타쿠였는지, 어디 내놓기 부끄럽다. 그 시절에 쓴 글들이며 그림들 모두 흑마법(?)에 절어 있기 때문이다. 무슨 불만은 또 그렇게 많았는지, 열심히 과거를 부정한 결과일까? 나는 과거 그 시절의 대부분을 기억에서 지워 살고 있다. 아마 그 시절에 그렇게도 혐오했을 듯한 모습인 '평범한 직장인'이 되어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싶다.
그런데 또 한편으로는 아주 잘 알고 있는 사실이 있다. 제아무리 평범한 직장인이어도 너무 오랜 시절을 그렇게 살아서 여전히 애니메이션을 보거나 좋아하는 만화 ost 만 들어도 심장이 살랑살랑 뛰는 것은 막을 수가 없다. 최근 들어서 직장도 안정되고 생활도 조금씩 리듬을 찾아 가면서 내가 좋아하는 것에 집중하는 시간들이 늘었다. 언젠가부터 애니메이션 시청이 너무 소모적으로 느껴졌기 때문에 더이상은 안 보겠다고 다짐했지만, 주변에서 괜찮다고 한 애니메이션들은 또 굳이 메모를 해 놓지 않아도 왜이렇게 기억이 잘 나는지 모르겠다. 저녁이 생기고 편한 시간들에 애니메이션을 짬짬이 보기 시작했다. 너무 유치할 것 같은데, 라는 노파심은 온데간데없고 3,4시간이 훌쩍 사라지는 마법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역시 이건 소모적이야, 하고 끄려고 하면 다음 내용이 너무 궁금해서 참을 수가 없었다.
그런 시간들을 보내다가 어느 날 사무실 사람들이 유행처럼 시작한 게 있었다. '생활기록부 열람'을 해 보는 것이었다. 뭔가 어려울거라는 생각과는 다르게 정부24 사이트에서 생활기록부를 손쉽게 열람할 수 있었다. 처음에는 과거의 나를 싫어하는 나답게 거부했다. 무서워서 못 보겠다며 손사래를 쳤지만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는 탄식이나 환호성에 못 이겨 곧 정부24를 켜 볼 수밖에 없었다. 다운로드 되는 도중에는 뭔가 무서웠다. 이제 거의 기억이 나지 않는 과거를, 담임 선생님이 어떻게 봤을지 내심 무서웠기 때문이다. '음침하고 혼자 그림그리기를 좋아함'따위로 적혀 있다면(사실이지만) 상처받을 것 같기도 했다. 온갖 상상 끝에 생활기록부가 열렸다. 보고 나니까 고3때 수능 전에, 선생님께서 보여주셨던 기억이 어렴풋이 났다. 두려워한 시간이 무색하게 생활기록부는 꽤나 기계적으로 작성되어 있었다. "쾌활하고 친구들과 잘 어울림." 개중에는 눈에 띄는 특성도 있었다. "그림그리기를 좋아하며 친구들과 잘 어울리나 남에게 관심이 없음."
여러가지 감정이 교차하면서 한편으로는 담임선생님의 노고가 크게 다가왔다. 학생 하나하나 안 보는 것 같아도 모두 보고 계셨던 것이다. 그리고 어떤 시간에 이 메모들을 했을까. 그리고 나는 놀라운 발견을 했다. 초등학교 1학년부터 고등학교 3학년까지 내 손으로 직접 적은 장래 희망을 보게 된 것이다. 초등학교 1학년을 제외하고는 어쩜 이렇게 일관되게 '만화가'라고 적혀 있는지, 그 단어가 너무 놀라웠다. 처음의 감정은 부끄러움이었다. 그 다음에는 복잡한 감정이 흘러들어왔다. 부모님의 진로 희망 란에도 초등학교 1학년 때 '변호사'라고 적혀있는 것을 빼고는 일관되게 '만화가'라고 적혀 있었다. 아마 내 생활기록부에 가장 많이 적혀있는 단어는 '만화가'인 것 같았다. 갑자기 내가 왜 만화가가 안 된 건지 아이러니했다. 이렇게나 간절했는데.
왜 남들처럼 한 길을 쭉 파고들지 못할까, 이것도 저것도 아닌 인간으로 언제까지 살 요량일까, 내가 매일 밤 자책하는 시간에 하는 말들이다. 서른이 넘어서까지도 좋아하는 것을 못 찾고, 꾸준히 하지도 못하고 여전히 방황하는 모습에 이제 실망하는 것도 지쳤다. 정말 많은 돈과 시간을 투자했는데도 여전히 내가 내 삶을 주체적으로 살고 있지 못하는 것 같았다. 다시 만화를 그리고 싶어도 사람들의 시선이 신경쓰였다. 언제부터 그렇게 타인의 시선을 신경썼는지도 모르겠다. '누가 봐도 멋진 삶을 살아가고 싶다'라고 생각했지만, 정말 말 그대로 구체적이지 않아서 이루어질 수 없는 공허한 목표로, 그저 결과가 좋지 않다고 슬퍼하는 모습이 정말 바보 그 자체가 아닐 수 없다.
10살 남짓부터 몇 년간 당당하게 진로 희망 란에 '만화가'를 적은 내가 부럽기도 하고 멋있다고 느껴졌다. 아무도 내 앞길을 막지 않았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지만, 생활기록부로 보이는 내 어린 시절에는 적어도 답을 잘 알고 있었던 것 같다. 남들의 시선 따위는 신경쓰지 않고 그냥 내가 원하는 것을 계속 하고자 했던 그 의지만큼은 대단했다. 사실 돌이켜보면, 만화가를 말리는 사람들도 많았다(아마 내가 내 딸이 만화가를 하고 싶다고 해도 몇 번은 말릴 것 같다). 현실도 녹록치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내가 만화가를 꿈꾼 이후에 제대로 완결해본 만화도 없다. 그 흔한 잡지떼기(만화가들 사이에서, 크로키 실력을 향상시키기 위해서 했던 그림 그리기 방법)도 못 해봤다. 그토록 가고싶던 애니고도 입학을 못 했다. 거 참, 뭘 믿고 저렇게 당당하게 썼냐. 솔직히 우스운 일이다.
아마 내가 그토록 과거로 돌아가고 싶어 하지 않았던 진짜 이유는 과거의 내가 지금의 나를 너무 한심하게 생각할까봐 그런 것이 아니었을까. 멋진 니가 커서 이런 어른이 된다는 게 너무 미안해서, 그래서 과거로 돌아가고 싶지 않은 것이다. 만약 지금도 애니메이션을 보면 두근거리는 것처럼 내 세포가 여전히 살아 있다면, 아니면 조금이라도 학습되었다면, 뚝심있게 내가 하고싶은것을 향해 달리는 어린 시절의 나처럼 남은 시간을 살아가고 싶다. 그리고 누가 뭐래도 당당하게 하고 싶다. 아마 최근에 풀리지 않던, 괴로운 고민들을 한방에 날려주는 묵직하고도 진귀한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