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전환기에 있을까?

김연아, 박태환, 박지성이 아닌 잉여 인간의 푸념

by 무근지

22년도부터 습관을 들여서 매일 일기를 쓰며 살지만, 하루 당 3줄짜리 다이어리로 길게 쓰는 경우는 잘 없어서 그때그때의 마음과 감정들이 잘 담기지 않는다. 그러다 요즘 혼란스러운 일들이 생겨 감정을 좀 덜어내고자 브런치를 켰다.


요즘엔 인생의 의미에 대해서 많이 생각하는 시점이다. 사실 최근에 다시 시작한 만화 작업도 그렇고 공부할 일들이 생겨 책을 좀 들춰 봤는데, 왜 이렇게 오랫동안 책을 놓고 살았는지 후회가 정말 쓰나미처럼 밀려 왔다. 문외한 주제에 사소한 것(주로 돈)에만 집착하고 산 시간이 아깝다. 끊임없이 생각하고 공부해도 모자란 시간. 그런데 고른 책들이 분야별로 참 다양했는데 내가 이상한건지 아니면 내가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건지, 하나의 메세지로 귀결되었다. 삶에 의미는 없고 인생은 그냥 아무 것도 아니니 뭐든 집착하지 말고 너의 삶을 살아가라는 메세지.


어릴 적엔 "인생은 아무 것도 아니다"라고 하면 욱하는 감정이 들었다. 아무 의미가 없으면, 열심히 살 필요도 없고, 그냥 죽는 게 났다는 얘기잖아? 왜 내 자유 의지를 억눌러! 쀍! 하고 소리지르고 싶었다. 고등학교 때 잠깐 미션 스쿨에 다녔는데, 신부가 갑자기 교리 시간에 우리를 모아 놓고 설교를 했다. "너희는 잉여 인간이야. 그냥 길가에 보이는 쓰레기랑 비슷해. 열심히 살고 짱구 굴려 봤자 아무 소용 없어. 김연아, 박태환, 박지성 이런 애들이나 박수받고 관심받고 사는 거지." 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그 때는 그 반짝이는 대머리에 샤프를 꽂아버리고 싶었다. 그런데 희안하게 그 말은 삶의 어떤 순간 순간에 부표처럼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그래서 최근에 그 말을 의미를 다시 복기해 봤다. 너희같이 아무 관심 받지 않고 사는 보통의 인간은 사회적 의무 속에서 너무 자유롭고 사실은 아무렇게나 내가 추구하는 삶을 지향하며 살아도 된다. 그렇다면 너희들은 왜 끊임없이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고 옹졸한 의미를 부여하면서 살고 있지?...라는 의미는 아니었을까? 영원히 진실을 알 수 없겠지만, 뚜렷한 건, 신부의 그 메세지는 곧이곧대로 듣는 말은 아니었을 것 같다. 왜냐하면 입시 전쟁으로 살벌한 고등학생에게 최상의 집중력이 발휘되는 아침10시에, 귀중한 1시간을 굳이 할애해서 "너희들은 쓰레기다"라는 말을 그냥 할 것 같진 않다. (그냥 그 말이 하고싶었던거라고 하기엔, 오랜 세월 끊임없이 유혹을 멀리하고 신에게 귀의한 교인이 아닌가?)


PP11010100018.JPG 2010년 대 스포츠를 주름잡던 세 사람.


그렇게 김연아, 박태환, 박지성이 아니었던 고등학생은 어른이 됐다. 자신에게도 남에게도 딱히 득 되지 않는 소모적인 관리직 일자리, 곰팡이가 수시로 스멀거리는 14평짜리 구옥빌라에서 아무 행복을 느끼고 있지 않다. 솔직히 말하면 로마 시대 귀족 노예와 젼혀 다를 게 없다. 심지어 깔끔하고 번듯한 귀족이나 원로원의 노예도 아니다. 그냥 좀 잘 사는 집에 한 20살 차이나는 원로원과 정략 결혼한 여성의 노예 쯤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가장 불행한 노예는 본인이 불행한 줄 알아버린 노예이다. 기원전 300년 대 아테네 인구는 4만5천명이라고 집계되는데, 그것은 여성과 아이, 노예를 제외한 숫자였다고 한다. 숫자에 포함되지도 않는 시민이다.


그나마 내가 행복하다 생각하는 순간은 만화 그릴 때, 지성적 대화 할 때, 먹고 싶었던 거 먹을 때, 남편의 보호가 안락하다고 느낄 때 정도이다. 그런데 인간이 과다하게 행복하면 그것은 마약에 취한 거고 잘못된 것이다. 그래서 사실 이 정도 빈도로 행복하면 어쩌면 다행일 수도 있겠지만, 한편으로는 의문이 떠나지 않는다. 왜 이렇게 밖에 못 살고 있지? 별로 갖고 싶은 것도 없는데 돈을 많이 안 모으면 안 될것 같아서 모으고 있고, 일자리가 왠지 없으면 안 될 것 같아서 퇴사도 못하고 있다. 남들과 다르게 살면 잘못된 것 같아서 비슷하게 살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그게 뭐 나쁜 건 아니겠지만, (사실 진짜 아무런 의미같은 건 없겠지만)확실한 결론은 하나 도출된다. 이렇게 살고 싶지는 않다.


혹시 내가 우울한 걸까? 되짚어 봤다. 우울하진 않다. 오히려 요즘 내 상태는 너무 [과하다] 라는 말이 옳다. 여러가지 일을 너무 동시 다발적으로 생각해서 뇌에 과부하가 오고 흰머리가 많아졌다. ADHD를 의심하고는 있다. 그 상태를 눌러주는 것은 요가 하는 시간밖에 없다. 그 외에는 초단위로 생각의 흐름이 지나간다. ktx를 탔을 때 창문으로 각양각색의 풍경이 지나가는 것 처럼 직장, SNS, 가족, 집, 돈, 사업... 모든 생각이 동시에 떠오르고 멈추지 않는다. tv를 켰을 때 채널을 바꾸는 것처럼 쉬프트된다. 사실은 좀 어지럽다. 우울할 시간이 없는 것도 있다. 휘발되는 것들을 붙잡을 공간은 없다. 뭔가 뇌에 많이 꽉꽉 채워져 있어서 비집고 들어갈 틈은 없는데, 뭐가 채워져 있는 지는 모르겠고, 그냥 단지 지나가는 풍경인 [직장, SNS, 가족, 집, 돈, 사업 등]이 들어올 자리는 없다. 그것들은 그냥 시간을 잠깐 소모하고 날아가는 생각이다. 어쨌든 우울하지는 않다. 저런 풍경들이 뇌리에서 사라지면 조금은 선명해질 것 같다. 그런데 사라지지 않는다...


그런 생각을 왜 하냐는 친구들의 질문이 떠오른다. 왜 그렇게 생각해? 뭘 그렇게 의미를 부여해? 그냥 사는 거지. 눈 앞의 행복을 쫓으면 그만이야. 그것도 맞다. 아마 내가 최근에 읽은 책들도 내게 그런 지적을 했을 수도 있다. 당연히 단순하게 생각하는 것, 그것도 잘못된 건 아니고 나처럼 이렇게 생각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것도 잘못된 건 아니다. 더 나은 건 없다. 그냥 그들은 그렇게 살고 나는 나대로 살면 된다. 그런데 나는 더 나은 선택을 하고 싶다. 아직까지 내 눈에는 다수의 사람들이 그렇게 살고 있어서 그들처럼 사는게 나아 보인다. 갑자기 신부님의 말이 다시 귓가에 맴돈다.


김연아, 박태환, 박지성도 아닌 너희 잉여 인간의 선택에 대중들은 아무 관심 없다.


그 신부는 우리에게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걸까?

그때 그 17살 여고생 36명을 앞에 두고 굳이 내뱉어서 한 말의 참뜻은 뭐였을까?

역시나 그 말에 아무런 의미 같은 건 없었을지도 모른다.

애초에 김연아, 박태환, 박지성도 아닌 잉여 인간의 말에 귀 기울일 필요도 없을텐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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