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당탕탕 다둥이와의 추억
장군이는 길 때는 3주, 짧을 때는 1주일 간격으로 들여다볼 수 있었다. 파주에 위치한 외갓집은 당일로 다녀와도 부담이 없는 거리였다. 장군이까지 포함해서 6마리의 개동 생들은 성격도 각기 다르고, 에너지도 제각각이었다.
그중 첫째 뽀미가 가장 쫄보였지만 에너지와 영리한 것까지 1등이었다. 지나가는 말로 부모님은 항상 "역시 믹스가 제일 똑똑하고 건강해." 종을 나누자는 건 아니었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뽀미는 병원에서 예방접종을 할 때면 항상 모두의 관심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단단한 몸의 근육에 힘을 주면 주삿바늘은 휘어지기 일쑤였고, 서럽게 우는 목소리는 병원에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졌다. 몸집은 가장 크지만 가장 아기 같았던 뽀미였다.
나이 순으로 둘째 민우는 장군이가 태어나기 전, 집안의 유일한 수컷이었다. 가족에게 조금이라도 해가 될 것 같다 싶으면 산책하다 마주친 불친절한 덩치 큰 말라뮤트에게도 당당하게 맞서는 상남자였다. 이전의 집에서 학대가 있었는지, 민우 앞에서는 긴 막대기는 들지도 못했다. 민우는 파리채만 들어도 무서워서 몸을 바들바들 떨며 짖어댔다.
펫 페어에 갔던 어느 날, 가장 앞서 걸으며 양옆을 호위하며 근처에 오는 강아지 친구들을 한껏 경계하며
"나 되게 무서운 애야. 우리 가족 건드리지 마 다 덤벼!"
라고 쏘아대는 눈빛은 작은 몸집과 상관없이 아주 든든하게 느껴졌다. 이렇게 잘생기고 교감이 잘될 뿐 아니라, 듬직한 아이를 이전 주인은 왜 버리고 갔을까. 하지만 덕분에 우리 가족에게 와주었으니 고마웠다.
은비는 그저 공주님이었다. 어려서부터 입이 짧았고, 이름을 불러도 내키지 않으면 곁도 내어주지 않았다. 또 임신을 했을 때에는 한우 생고기만 먹었다. 은비는 사실 아장아장 걸어 다니던 4개월 차, 가벼운 산책 중에 지나가던 아주머니에게 "똥개"소리를 들었었다. "어머 쟤는 뭔데 저렇게 둥그니? 신기한 똥개다"라고 반복하시는 아주머니의 며느리는 어쩔 줄 몰라하며 죄송하 다했다.
사실은 감사하다. 한동안 우리 가족은 은비를 "우리 똥개 공주님"이라고 놀리며 웃음이 끊이지 않았기 때문에.
장군이는 뽀뽀 귀신이었다. 태어날 때부터 곁을 주지 않던 은비보다 나를 더 따랐고, 할머니 집에 가서는 할머니 껌딱지였다. 어릴 때부터 얼굴 옆에서 잠드는 게 버릇이 들어, 눕자마자 잠들기 전까지 뽀뽀세례를 해댔다. 세상 모든 것에 호기심이 많고, 텐션이 높아 쉽게 진정되려면 오랜 시간이 걸리는 오두방정의 아이콘. 산책마저도 공중부양 산책을 했다.
장군이에게 푹 빠져있던 어느날 친구는 모르는 번호로 "누나, 곱창사와 -장군-"이라는 문자를 보내는 장난을 쳤다. 곱창을 좋아하는 나는 순간 벙쪄서 어라? 장군이가? 라고 생각했지만 이내 웃음이 터졌다.
귀여운 장군이가 정말 말을 할 수 있었다면 어땠을 까.
업둥이 금비는 오자마자 언니, 오빠들에게 치여서 눈치 보고 커야만 했다. 한 번이라도 더 예쁨 받고 싶어서 곁을 파고드는 녀석이었고, 항상 사랑을 갈구하는 아이였다. 금비는 항상 졸졸졸졸 내 뒤만 쫓아다녔는데, 이 녀석과의 일화는 아직도 심장이 쿵 내려앉는다. 현관문을 잠깐 열어놓은 사이 갑자기 금비가 없어진 것이다. 멀리 갈 수도 없는 찰나의 순간인데 그 어디를 봐도 금비는 보이지 않았고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잠옷 바람으로 울며불며 퉁퉁 부은 눈으로 지나가는 사람마다 붙잡고, 혹시 하얗고 다리 짧은 귀여운 강아지 못 보셨냐 물었다. 멀리서 의경 집단이 순찰 차, 무리 지어 걸어오는 것을 보고 눈물 콧물 범벅된 상태로 그들을 붙잡고도 물었다. 금비는 어디에도 없었다.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와 바로 전단지를 만들어 출력하기 시작했다. 앞이 보이지 않을 만큼 눈이 부었을 때, 달그락 소리가 들렸다. 스무 살 이후에 이사를 간 집에는 마당 대신 베란다가 있었고, 베란다 끝에는 보일러실이 자리 잡고 있었는데 미는 형식의 문이었다. 금비는 그 문을 밀고 들어가 얼떨결에 닫힌 문을 열지 못하고 그 앞에서 잠이 들었던 것이다.
그렇게 몇 시간을 잠옷바람으로 돌아다녔는데, 집안에 있었다니.. 이 녀석이 얄미웠지만 이내 금비를 찾았다는 안도감에 녀석을 꼭 안고 펑펑 울었다.
다둥이 집에서는 애정을 적당히 분배해주는 것이 참으로 어렵다. 각각의 성격이 다르기 때문에 산책도 성향이 맞는 아이들끼리 시켜야 될 뿐만 아니라 따로따로 개별 산책까지 해줘야 그나마 에너지를 분배시킬 수 있었다.
다행히 공격적인 성향이 있는 아이들이 아니라 서로 싸우는 일은 단 한 번도 없었는데, 그중 뽀미와 금비는 질투가 있어 중재를 잘해줘야 했다. 덩치로 보면 뽀미가 우세했지만, 힘으로는 금비도 만만치 않았기에..
네 마리 모두 입맛이 제각각이라 그에 맞춰 식단도 통일하지 못하고 각각 챙겨주었다. 유별나게 까탈스러운 은비는 사료만 주면 이틀이 지나도 밥을 먹지 않았다. 그에 비에 뽀미와 금비는 무엇이든 잘 먹는 편이어서 수월했다. 민우는 이전 집에서 자율배식을 했는지 먹고 싶을 때만 먹는 습관이 들여져 있었다.
무엇하나 정말 쉬운 게 없었다. 강아지 식구의 주된 케어는 나의 역할이었기에 학업을 마치고 집에 오면 집사의 일과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중 가장 힘든 것이 목욕이었는데, 뽀미는 워낙 흙에 구르던 아이라 3주, 4주에 한번 정도 목욕을 했다. 단모종에 윤기 나는 털을 가진 뽀미가 물을 좋아했다면 목욕은 정말 수월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알아주는 쫄보였기 때문에 목욕 또한 다른 세 마리를 씻길 때보다 더 많은 시간을 소요했기 때문에, 지쳐서 쉬는 시간까지 포함하여 꼬박 주말 하루의 스케줄이었다.
민우와 은비는 포메 특유의 이중모로 목욕은 얌전히 잘했지만 털 말리는 시간이 한 시간은 거뜬했다. 물기가 사라질수록 그들의 털은 북실북실해졌다. 지금처럼 드라이룸 기계가 있었다면 얼마나 좋을까.
가장 수월한 것은 금비였다. 얌전하기도 하고, 살짝 짧은 다리 때문에 행여 하얀 모색이 지저분해질까 항상 주기적으로 집에서 미용을 해줬다. 빠르게 씻고 물기를 말려줄 수 있던 유일한 강아지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방울이 하나도 가끔 버거울 때가 있는데, 어떻게 이 많은 아이들을 다 케어했었는지 모르겠다.
사랑의 힘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