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난주 법정에서 있었던 일이다.
2만원짜리 무전취식 사건으로 구속이 된 노숙자 사건이었다. 무전취식은 형법상 사기이다.
이미 동종 전과가 상당히 많은 자였고 이 사건으로 법정이 열리기 전에 3만 1천원, 2만 4천원짜리 무전취식이 더 합해져서 3가지 사건을 한번에 재판 받게 된 사건이었다.
구치소로 접견을 가서, 본인이 한 것이 맞다고 인정하겠다는 얘기를 들었고, 그 이후에 두 사건이 추가된 것인데, 접견 당시 이미 다른 사건들이 있는 것을 알고 있었고 피고인은 본인이 한 것이라고 인정했다. 검찰청에 가서 기록을 살펴보아도 피고인의 자백진술등 증거가 충분한 사건이었다. 모든 범행을 인정한다는 내용의 변호인의견서를 제출하고 법정에 가서 공소사실을 모두 인정한다고 진술했는데, 그 다음이 문제였다.
법정에서 피고인이 나머지 두가지 사건은 자기가 한 것이 아니라고 갑자기 부인한 것이다.
정말 황당했다.
무전취식을 한 피고인들은 주로 1. 인정하거나, 2. 다른 누군가가(친구라고 하면서도 어디사는지 연락처도 모른다고 한다) 먹으라고 해서 먹었다고 거짓말을 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이 피고인은 "내가 안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금액이 겨우 2만원짜리인데 자기를 오래붙잡아 두지말고 오늘 빨리 선고를 해달라는 것이다. 피고인이 법정에서 딴 소리를 하는 경우는 종종 있어서 놀라운 일은 아니었지만, 뻔뻔하기가 이를데가 없었다. 어쩔수 없이 다음 재판일정을 다시 잡고, 피고인을 다시 만나러 갔다.
경찰 앞에서 조사받은 자료들을 전부 들고 피고인을 다시 만났다. 자기가 한 일이 아니라고 하도 우겨서 줄줄 읽어주었지만 정말 자기가 한 것이 아니고, 금액이 작은데 왜 이러는 거냐고 오히려 적반하장으로 나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제가 너무 억울한데, 변호사님이 자백하라고 해서 어쩔수 없이 하는 겁니다."라는 것이다.
그 순간 참았던 화가 솟구쳐서
"아니요. 억울하시면 안됩니다. 다 부인하고 경찰이랑 그 음식점 주인을 증인으로 불러서 전부 확인합시다. 피고인이 안한 일로 옥살이를 해서는 안되죠." 라고 했더니 아 이거 큰일이다 싶었는지
"아니에요 제가 자백하겠습니다. 제가 한일은 아니지만."
"아뇨. 본인이 하신 일만 자백하세요. 증인 불러서 확인하자니까요." 라며 끝도 없는 실랑이를 한참 하게 되었다. 결국 재판당일까지 본인이 입장을 정리해오기로 하고 구치소를 나왔다.
재판 당일, 피고인은 "제가 한 건 아니지만, 변호사님이 자백하는 것이 좋겠다고 해서 그냥 제가 한 걸로 합시다. 오늘 선고해주세요. 얼마 되지도 않은 금액으로 이렇게 저를 오래 붙잡아 두지 마시고요." 라는 것이다.
기가 막혔다.
법정에서 판사와 피고인이 실랑이를 하다가, 우여곡절끝에 인정하는 것으로 정리를 한 후, 검사가 구형을 했다.
피고인은 그 말을 듣더니, "아니 몇 만원어치 밥좀 먹은것 뿐인데, 너무 구형이 쎈거 아닙니까."라고 검사에게 따졌다.
변호인의 최후변론 차례에 일어나서 내 변호인의견서를 보다보니
"피해액은 합계 7만 5천원으로 피해금액이 큽니다" 라고 써 낸 것이 아닌가. ㅎㅎㅎ
명백한 오타였지만, 나도 모르게 내 "마음의 소리"를 썼나 보다.
그 사건이 있은 날부터 이상하게도 일에 있어서 의욕을 잃게 되었다. 그 날 오후 사무실에서 서면을 쓰다가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륵 흐르는 것이다. 내가 대체 무엇을 위해서 이렇게 국선변호를 열심히 하고 다니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찾아온 의욕상실로 브런치에 글도 못쓰고 이 일의 의미를 찾는 날들이 계속되었다. 국선 사건을 하다보면, 정말 살면서 한번도 만난적이 없는 부류의 사람을 많이 만나게 된다. 그리고 생각보다 자기 잘못을 뉘우치는 사람을 만나기란 참 어려운 일임을 깨닫는다.
의욕을 상실한 데다, 운동하다 발병한 팔저림이 3개월이 지났는데도 사라지지 않아 병원을 드디어(나는 참으로 미련한가 보다) 갔는데, 디스크가 심해진것이라는 얘기를 듣고 엄청나게 졸음이 쏟아지는 약을 처방받아왔다.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정신이라던가, 그 반대던가 아뭏든 몸도 마음도 건강을 어서 되찾고 싶은 날들이다.
언제쯤이면 사건을 사건으로만 대할 수 있을까.
아 아직 갈길이 먼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