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겁게 일하고 싶은데, 그게 잘 안돼요."
퇴사 후 처음 읽은 책은 《내가 가진 것을 세상이 원하게 하라》였다. 어떤 책을 읽어야 하나 스크롤만 하다가 요즘 SNS에 퍼스널 브랜딩, 자기 브랜딩이 크게 이슈라 제목이 확 끌렸다. 난 어떻게 내 브랜딩을 할 수 있나 궁금했다. 그러나 내가 생각한 책 내용과는 방향이 완전 달랐고 나는 빠져들었다.
“문제는 회사가 아닙니다. 올바른 질문은 ‘이곳에서 내가 원하는 일을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할 수 있는
가?’입니다. 이에 대한 생각을 먼저 정리해야 해요. 여러분의 기준으로 문제를 바라보는 ’프레임‘을 새로 짜보는 거에요.”
《내가 가진 것을 세상이 원하게 하라》 중 – 최인아 저
바뀌지 않는 시스템, 무능력한 사람 혹은 회피하는 사람들에 치를 떨어왔는데, 위의 저 문장은 곰곰이 생각하게 했다. 나는 어떤 태도로 일했고, 어떤 마인드로 일을 했나.
나는 14년 차 상업영화 제작팀으로 일하는 프리랜서이다. 단칸방에서 엄마가 빌려준 비디오를 본 순간부터 나에게 영화는 감동이었고, 위로였다. 영화 보는 것을 오래도록 좋아하다가 나도 메시지가 있는 작품을 만들고 싶다는 염원에 시나리오작가가 되고 싶었다. 연극영화학과로 진학했고, 작가에서 프로듀서를 목표하며 상업영화 현장에 발을 들였다.
전례 없던 신기한 경험에, 휴일도 없이 돌아가는 촬영 현장에 내 몸을 맡겼다. 잠을 못 자고 일해도 다이나믹한 현장과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과 함께한다는 생각에 힘든지 몰랐다. 무엇보다 어리고 젊었다.
영화를 위해 라섹수술을 받았고 영화를 위해 영어 어학연수를 갔다왔고, 영화인들만 가까이했다. 온몸을 바쳐 일했던 영화도 있었다. 촬영장소 섭외, 촬영장소 장비 설치 관리, 배우의 기술 연습 스케줄 진행, 영화 소재 자료 수집, 스탭 및 배우 숙소 일정 관리, 프로모션 제안 등 맡은 역할에 비해 넘치는 업무량도 다 해냈다. 3시간 자면서 일하기도 하고, 굶으면서도 오로지 일 뿐이었다. 영화가 잘 만들어졌으면 했고, 영화가 흥행하길 바랐다. 그리고 그걸 위해 내가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누구도 나에게 강요하지 않았다. 나는 너무 예민해져 있었고, 나만큼 열심히 일하지 않는 그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같이 일했던 제작팀과 친밀하게 지내지 못했다. 그 작품이 끝나고 번아웃이 왔다. 너무 허무했다.
내 눈에만 자꾸 시스템의 문제점이 보이고, 내 눈에만 자꾸 일하는 사람들에 대한 불합리가 보이는 것인지. 목소리를 높일 수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다고,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다고. 그런 생각을 하다가 허탈해졌다. 내 안에 가득 차 있는 어떤 책임감 때문에 난 문제를 찾았고, 해결하고자 했고, 감정적이었다. 아마 그때부터였던 거 같다. 적절한 보상이 없는 일에 너무 열심히 하지 말자고, 남들처럼 적당히 하자고.
스물다섯 살의 나에게 어느 피디님이 나에게 어떤 마음으로 일하는지 물어본 적이 있었다.
“즐겁게 일하고 싶은데 그게 잘 안돼요.” 이 대답을 한 지 10년도 더 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