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이지 내가 불편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시간을 보내고 싶진 않았다. 운동 이외에도 나에게 도움이 될 만한 걸 해야 했다. 연간구독을 해놓은 밀리의 서재를 열어 책을 읽었다. 네이버 계정을 새로 파서 블로그를 쓰기 시작했고, 책을 읽다가 변화하는 세상의 생산자가 될 것이냐. 소비자가 될 것이냐는 물음에 AI 공부도 시작했다. 일 때문에 멈춘 영어공부도 하기 위해서 SPEAK을 결제했다. 유튜브에 각종 인문학, 경제, 철학, 과학 등 지식인들의 채널을 구독해 틈날 때마다 보았다.
일을 그만두니 사람들이 앞으로 뭐할 거냐고 물었다. 예전에는 삶에는 의미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내가 선택하고 하는 모든 일에 의미가 없으면 그건 불필요한 일이라 여겼다. 해야 할 만한 이유를 찾았고, 없으면 시도하지 않았다. 살다 보니 큰 꿈과 목표보다는 단순한 삶을 지속하고자 하는 욕구가 있었고, 무언가 되겠다, 목표가 설정해두고 전진하기 전에 기본 소양을 쌓는 생활을 채우자는 신조로 바뀌었다. 복잡한 생각을 당장 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일에 치이던 삶에서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귀한 시간이 찾아왔는데도, 만족스럽지 않았다. 몸은 편했지만, 마음은 어딘가 불편했다. 내 생각, 말과 행동이 날카로웠다. 여전히 예민했고, 거슬리는 행동에 불편함을 감추지 못했다.
봉사활동을 하거나 자선사업을 하는 것은 바보 같은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생활의 민폐를 주는 사람에게는 눈치를 줘야 했고, 잘못한 것을 알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도 러닝을 시작했지만, 마라톤을 나가는 것은 환경파괴, 돈 낭비라고 생각했다. 공원에서 오프리쉬로 강아지를 내버려 두거나 자동 줄로 반경을 넓히는 사람들을 째려보거나 대놓고 한숨을 쉬었다. 도로에서 정지선을 지키지 않거나 골목에서 과속하는 운전자들을 노려보았고, 길에서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과 눈을 마주치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카페에서 키오스크를 오래 만지는 아주머니의 뒤통수에다 짜증스러운 한숨을 내쉬었다. 낯선 사람과 대화할 기회가 생기면 부담스럽다는 티를 냈다. 생산적인 활동을 하지 않는 인간은 존재의 가치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 사람들을 돕는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없었다.
나를 다듬고자 하는 시간과 내가 보는 회색빛의 세상은 들어맞지 않았고, 삐뚤어진 마음은 멈출 줄 몰랐고, 부정적인 시선들과 관점이 항상 내 주변을 맴돌고 있었다. 뭔가 뒤틀려있는 것 같았고, 내가 꼬일 대로 꼬여버린 기분이었다.
무엇이, 어디부터 잘못된 것일까.
내 마음의 물이 탁했다. 정말이지 내가 불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