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수정 作 Saint paul de vence, France 종이에 잉크 (2019)
처음 '명상을 합시다'라는 말을 들었을 때
'그것 참 지루하겠군'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
실제로 명상을 하겠다고 앉아보니 따분하기 그지없었습니다.
머릿속에서는 온갖 망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집니다.
다리는 저려오고 코는 가렵고 허리는 뻐근한데 졸음은 어느새 슬며시 다가옵니다.
처음 정해놓은 30분이란 시간이 한없이 길게 느껴지고
'알람을 잘못 맞춰 놓은 게 아닌가'라는 의심이 확신으로 바뀌면서
살며시 옆사람 눈치를 살필 때쯤 마침내 시간이 다 되었음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립니다.
'이제 해방이로구나'라는 기쁨과 '내가 견뎌냈구나'하는 뿌듯함이 찾아오지만
'내가 지루함을 견뎌 내고 과연 무엇을 얻었나?' 생각해 보면 허무합니다.
'명상이 이렇게 고역이라면 굳이 시간을 내서 할 필요가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명상이 한 달 두 달 이어지고 1년 2년 지나가면서 이상한 변화가 일어납니다.
가만히 앉아있기만 했던 거 같은데 마음이 평온해집니다. 욕심과 분노가 사라집니다.
머리가 맑아지고 오감이 활짝 열립니다. 생각이 바르게 정리되고 몸이 가벼워집니다.
좌선을 하는 시간이 즐겁습니다.
10분 앉아 있기도 힘들었는데 1시간, 2시간씩 앉게 됩니다.
무엇이 달라진 걸까요?
명상이 지루했던 것은 내가 알아차리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무엇을?
몸, 느낌, 마음입니다.
우리는 몸이 나라고 생각하고 느낌과 마음이 나에게서 생겨난 것이라고 여깁니다.
우리는 몸의 상태와 생각의 흐름에 휩쓸려 한순간 한순간 살아갑니다.
그런데 명상을 하게 되면 몸과 느낌과 마음을 바라보게 됩니다.
내가 나를 바라보고 관찰하는 것입니다.
개입하지 않고 판단하지 않고 통제하려 하지 않고 가만히 바라만보다 보면 깨닫게 됩니다.
'몸에서 일어나는 감각이나 느낌이 나로부터 비롯되는 것이 아니구나'
'마음과 생각은 저절로 일어나 다음 생각을 불러오는구나'
같은 영화를 수없이 반복해서 본다면 얼마나 지루하겠습니까.
그러나 지금 내 몸, 지금 내 느낌, 지금 내 마음을 자세히 관찰해 보면,
정확히 똑같이 느끼는 것이 단 한순간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지루할 틈이 없습니다.
지루하게 느끼도록 만드는 것은 '같은 것을 또 보고 있다'는 자신의 생각입니다.
그러나 같은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매 순간이 항상 새롭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시간이 빨리 간다고 느끼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망원경 효과, 생체시계 효과 등등)
그 이유 중 하나는 새로운 경험이 줄어들기 때문입니다.
축적된 경험이 적은 어린 시절에는 호기심을 자극하는 새로운 경험이 수시로 일어나지만
나이가 들수록 그런 사건은 줄어듭니다.
초등학교 6학년과 중학교 1학년의 일상은 너무나 다르지만
사회생활 20년 차와 21년 차의 일상은 별로 다를 게 없다는 말입니다.
내가 '나'와 동일시하고 있는 몸, 마음, 느낌이
실제로는 '나'에게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
무엇을 관찰하든 지루하지 않고 오히려 흥미가 생깁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체험과 자각이
'모든 현상은 언제나 변화하고 있다', '변화하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이 책을 읽고 마음 알아차림과 명상에 흥미를 갖게 되었다면
다음의 책들도 읽어보시길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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