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저씨, 제가 아저씨를 뭐라고 불러야 할까요? 아는 게 아무것도 없으니 제가 이름을 지어드릴게요. 제 마음속의 아저씨는 '키다리 아저씨'예요.”
존 그리어 고아원의 '제루샤 애벗'이 대학생 '주디'가 되어 처음으로 마주한 세상은 모든 것이 낯설고 눈부셨습니다. 대학 기숙사 방에 짐을 풀고, 난생처음 가져보는 '내 책상' 앞에 앉아 만년필을 쥔 그녀의 손은 얼마나 떨렸을까요? 아저씨는 매달 한 번, 공부에 대한 진척 상황을 보고하는 편지를 쓰라는 조건을 내걸었지만, 주디에게 이 편지는 단순한 보고서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평생 '누구의 아이'도 아니었던 그녀가 세상에 내보내는 첫 번째 존재 증명이었습니다.
주디는 아저씨의 정체에 대해 아는 것이라곤 그저 자동차 불빛에 길게 늘어났던 '그림자'뿐이었기에, 그를 '키다리 아저씨'라고 부르기로 결심합니다. 아저씨는 단 한 번의 답장도 주지 않는 침묵의 존재였지만, 주디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 침묵 덕분에 주디는 세상에서 가장 솔직한 고백들을 쏟아낼 수 있었습니다. "아저씨, 저는 오늘 생전 처음으로 체크무늬 드레스를 입었어요!", "아저씨, 저는 이제 셰익스피어의 희곡을 원서로 읽기 시작했답니다!"
이 장면을 떠올리며 저는 오늘 제가 겪은 잠실롯데호텔시그니엘의 오후를 떠올렸습니다. 주디가 대학의 높은 교정에서 세상을 내려다보며 희망을 품었듯, 저 역시 79층의 높이에서 서울 시내를 내려다보며 우리가 꾼 태몽 '황금 똥탑'의 꿈을 떠올렸습니다. 답장이 없는 아저씨를 향해 끝없이 재잘거리던 주디처럼, 저도 아직 얼굴을 보지 못한 뱃속의 손주에게 끊임없이 말을 걸었습니다. "아가야, 이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세상은 정말 아름답단다. 너도 곧 이 아름다운 세상을 보게 될 거야."
주디의 편지는 결국 수신인 불명의 일방적인 외침이 아니었습니다. 온 우주가 그녀의 성장을 지켜보고 있었고, 그 침묵 너머에서 아저씨는 누구보다 뜨겁게 그녀의 문장들을 읽고 있었으니까요. 우리의 태담 역시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비록 아기가 대답하지 않아도, 우리의 사랑은 주디의 잉크가 종이에 스며들 듯 아이의 영혼 속에 켜켜이 쌓이고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