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 글에 등장하는 모든 사람들을 A라고 칭하는 고약한 버릇이 있어서 간혹 독자분들에게 혼란을 주는 것은 아닌가 걱정이 된다. 머릿글자가 A가 아닌 사람이어도 일단 A라고 부르고 보는데, 왜냐하면 그 사람에 대해 글을 쓰겠다고 허락을 받고 쓰는 것이 아니다보니 최대한 그 사람을 특정할 수 있는 정보를 줄이고 싶기 때문이다. 자, 이제 글 쓰는 사람을 주변에 두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알겠지요. 글 쓰는 이는 허락을 받지 않고 여러분을 자기 글의 소재로 삼곤 합니다.
좌우지간 이번에도 A라고 지칭할 사람은 장인이다. 어떤 분야의 장인인고 하니 말할 수가 없다. 내가 앞으로 할 이야기를 읽고 A가 누구인지 알아차릴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에 A가 누구인지를 유추할 수 있을 만한 정보는 최대한 숨기고자 한다. 하여간 나는 A의 장인 정신을 존경했고 A가 세상에 내놓는 작품의 팬이다. 팬이었다.
과거형인 이유는 이 다음의 이야기가 다소 슬프기 때문이다. 가능하다면 여기서부터는 글씨를 좀 더 검게 쓰고 배경도 좀 더 회색으로 바꾸고 싶다. 하지만 그럴 수 없으니 슬픈 음악을 상상하면서 진한 검은 글씨라고 생각하며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A는 별다른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음에도 어느 날 갑자기 인생의 큰 고난을 겪었다. 너무 큰 고난이라서 그에게 일어난 일에 대해 알게 된 나도 마음이 쓰렸다. 나쁜 짓을 하지 않은 사람에게 끔찍한 일이 왜 일어나는가 하는 질문은 아마도 수많은 철학자들이, 그리고 수많은 신학자들이 곱씹고 또 곱씹었을 것이다. A도 아마 수백 수천 번은 질문하지 않았을까.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왜 이런 고통을 내가 겪어야 할까. 슬프게도, A는 본인에게 닥친 고난과 고통을 해석하는 과정에서 대단히 기묘한 길로 빠지고 말았다.
A와 재회하니 너무나도 많은 것이 바뀌어 있었다. 사고방식과 믿음 체계가 극단적으로 달라져 있었고, 그 새로운 세계관 안에서 A는 샤머니즘의 형태를 띤 괴이한 종교 같은 것에 빠져 스스로를 선택받은 사람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전생이니 구원이니 하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자신이 특별한 사람이라고 여겼다. A는 장인으로서 자부심이 강한 사람이었지만 그렇다고 메시아를 자칭하는 사람은 아니었건만.
내가 너무나도 대단한 운명을 타고났기 때문에 그런 나를 시험하고 시련에 들게 하기 위해 고난이 닥쳐왔다고 믿으면 사람은 조금 더 마음이 편해지는 것일까? 자신을 선택받은 존재로 생각하면 견디기 어려운 일들이 좀더 견디기 쉬워질까? 사상적으로나 종교적으로 허무주의자에 가까운 나는 잘 모르겠다. 그저 A가 새로이 설파하기 시작한 이야기들이 그의 작품세계에 영향을 미쳤고 그로 인해 내가 더 이상 A의 작품을 경탄 어린 시선으로 바라볼 수 없게 된 현실이 슬플 따름이다. 나는 장인 A를 잃었다. A가 정말로 메시아인지는 나도 모르겠다. 하지만 A는 장인이었다. 그리고 나는 세상에 메시아 하나가 더 있기보다는 장인 하나가 더 있는 편이 더 아름답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멈추기가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