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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G Jul 10. 2020

'돌밥돌밥 이제 못하겠어요. 밥 프리를 선언 합니다

밥 차리다 미친 여자 실제로 있었다.

  

내 그럴 줄 알았다. 이 넓디넓은 지구 상에 밥하다 미친 여자 하나쯤은 있을 줄 알았다. ‘서프라이즈’, ‘차트를 달리는 남자’ 같은 프로만 봐도 별별일이 다 있던데, 밥하다 미친 여자는 내가 몰라 그렇지 당연히 어딘가에 있을 것 같았다


[헬렌 니어링의 소박한 밥상]에 의하면 실제 외국의 한 농가에서 어떤 부인이 일꾼 대여섯 명의 식사 준비로 하루를 다 보내다가 어느 날 오후 조용히 미쳐버렸다는 얘기가 나온다. 정신병원으로 가는 마차에 타서 그 부인은 이렇게 되뇌었단다     


"인부들이 20분 만에 싹 먹어치웠어. 20분 만에 다 먹어치웠어”   


내가 이 같은 일이 있을 것 같다고 확신한 것은 나 역시 그녀의 마음을 천 번 만 번 이해하기 때문이다. 고작 20분이면 끝날 행위를 위해 온종일 수고로움을 감내해야 했던 그녀의 허무함... 나 역시 하루를 되돌아봤을 때 삼시 세끼 밥한 기억밖에 없을 때의 그 기분이란, 조용히 미쳐가는 그녀의 마음과 비슷했을 것이다.


코로나 이후, 아이들의 삼시 세 끼를 챙겨 왔다. 배달음식을 좋아하지 않고 같은 반찬이 연이어 나오는 걸 싫어하며 식성이 완전 극과 극인 까탈 남매로 키워온 죄로 나는 매일을 밥하는데 상당 에너지를 소진해왔다. 글을 쓰다가도, 책을 보다가도, 일을 하다가도 밥때가 되면 하던 일을 모두 멈추고 ‘오늘은 뭐 해 먹나’ 두뇌 회로를 돌려 하루 세 번 강제적 요리를 해내야만 했다.     


자취 때부터 지금까지 20년이 넘게 해 온 요리지만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다. 매일 냉장고 문을 열어 어떤 요리를 해야 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일은 즐거움이 아닌 피곤함에 가깝다. 어렵지 않게 한 상 뚝닥 차려 내는 엄마들을 보면 진심으로 존경스럽다. 나의 요리는 시작부터 끝까지 무척 부산스럽다. 그에 비해 결과물은 너무 초라하다. 요리 재능은 애초부터 없는 것 같다.  

 

재능은 그렇다 치고 나는 요리에 드는 공이 너무나 아깝다. 고작 한 끼를 위해 상당 시간을 할애하는 것이 과연 마땅한 일인가 싶다. 아이들이 잘 먹어라도 주면 다행이지만 그 역시 복불복이다. 나름 정성껏 차렸는데 깨작대는 아이들을 보면 마음속으로 몇 번이고 밥상을 엎었다. 아무리 따져봐도 비효율적인 가사노동이라는 결론에 이른다.

      

그래서 나는 밥 프리선언을 했다.


한 끼 굶으면 큰일 나는 줄 알고 어딜 가더라도 햇반만큼은 목숨처럼 챙겼던 지난날의 나 자신에게 사표를 냈다. 밥하는 시간을 최대한 줄이고 내 시간을 확보해야겠다고 결심했다. 하루 종일 가족을 위해 이 한 몸 애쓰는 내게 밥으로부터의 자유는 선택사항으로 둬도 되지 않을까?


나는 아이들에게 선포했다.     


밥투정하지 마라.

먹기 싫으면 안 먹어도 된다. 대신 새로 차리는 일은 없다.

먹고 싶은 메뉴는 미리 얘기해라. 밥하는 중간에 말하면 안 들어준다.  

다 먹은 밥상은 본인이 치워라.

하루 한 끼는 간편식으로 대체한다.       


진지한 내 결심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이들은 건성으로 알겠다고 답했다 이렇게나 쉽게 수긍할 일인가 싶으면서도 그간 나 혼자 끙끙대 온 기분이 들어 맥이 좀 빠졌다.  


사실 한국인만큼 '밥''밥' 거리는 민족이 없다. 기본적인 인사부터가 밥 얘기다. “밥은 먹고 다니니?” “아파도 밥은 챙겨 먹어” “다음에 내가 밥살게” 등등. 거의 모든 얘기가 기승전 밥이다. 한국인이 밥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기 어려운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얼마 전 어깨 수술을 하신 어머님께 찾아뵈러 간다고 전화를 드리니 어머님이 그러셨다


"내가 지금 팔을 못써서 와도 밥 못 챙겨줘. 그러니 오지 마"


문병차 어머님을 뵈러 가는 건데 밥을 못해주니 오지 말라니. 내가 해도 되고, 외식을 해도 되고, 시켜먹어도 되는 일인 것을. 무조건 자신이 해먹여야  옳다고 생각하는 부모님의 마음이 안쓰러운 동시에 안타까웠다. 엄마들의 밥 인생, 이젠 정말 프리 선언해도 되지 않을까?


아이들은 밥만 먹고 자라지 않는다. 엄마의 웃음을 먹고, 엄마의 행복을 먹고 엄마의 말을 먹고 자란다. 밥하기 싫은 나 같은 엄마들이 갖다 붙인 말일지라도 더 이상 난 밥에 연연하지 않으려 한다.


매일 입버릇처럼 하는 말, ‘밥하기 싫다’ 대신 ‘오늘은 분식 콜?’ 하며 아이들 앞에서 좀 더 행복한 엄마로 마주하기 위해서.  


밥 독립운동가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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