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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G Jul 31. 2020

박 여사의 외제차보다 새끈한 똥차

뭣이 중하리~ 내가 좋으면 그게 진짜 배기지

 남편과 드라이브하는 시간이 좋다. 달리는 차 안에서 음악을 들으며 두런두런 얘기를 나누면 마치 연애시절로 돌아가 데이트하는 기분이 든다. 이런 낭만적인 내 맘과 상관없이 남편은 드라이브할 때마다 늘 빼먹지 않는 레퍼토리가 있다. 그것은 바로 앞차, 건너 차, 좌우 옆 차에 관한 차종 분석이다.       


“저 차는 1억 2천이야. 나 저거 언제 사줄 거야?”

“어! 저 차는 신형인데 지난번 모델보다 별로다.”

“와우~저거 들이받으면 우리 쪽박 차는 거야 멀리 떨어져서 가야지”      


간만에 책 얘기, 철학 얘기하며 낭만 타령 좀 할까 한 나를 굳이 자본주의 세계로 갖다 앉힌다. 내가 볼 땐 다 그 차가 그 차 같은데 가격이 그렇게나 비싸다는 것에 한번 놀라고, 그걸 또 속속들이 알고 있는 남편에게 두 번 놀란다.


남편이 쭉쭉 빠진 외제차를 부러워할 때마다 나는 늘 엄마 얘기를 꺼낸다.      


“차는 그냥 굴러가면 돼. 우리 엄마 한번 봐봐, 아마 외제차를 준다 해도 지금 차랑 안 바꿀 걸? 엄마처럼 우리 차에 애정을 가져 애정을!”     


남편은 속으로 ‘어우 또 장모님 얘기야?’ 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우리 엄마의 똥차는 남들 시선을 엔진 삼아 달리는 수억 원의 고급 차보다 훨씬 값지다고.

우리 엄마의 진짜 독립은 아들딸 시집·장가보낸 후가 아니라 운전면허를 따고 난 후부터라고 생각한다. 내가 살던 곳은 하루에 버스가 다섯 번밖에 다니지 않는 오지 산골이다. 어린 시절 나는 그 버스를 타고 학교를 오갔다. 버스를 놓치면 집에 가지 못했기 때문에 늘 막차 시간에 맞춰 움직여야 했다. 아직도 마음이 불안한 날은 집에 가는 버스를 놓치는 꿈을 꾼다.      


일찌감치 도시 여성의 삶을 선택한 나는 어디든 오갈 수 있는 다양한 교통수단을 이용하고 있지만 엄마는 나이 50이 넘을 때까지 하루에 다섯 번 다니는 그 버스 하나에 의지하고 살아왔다.


아빠에게 차가 있었으나 경상도 남편 대부분이 그렇듯, 아내의 답답한 심정을 알아줄 리 없었다. 어디 가고 싶거나, 볼 일이 있다 해도 거의 나 몰라라 식이었다. 아빠가 볼일이 있을 때 얻어 타고 나갔다 오는 것이 엄마의 유일한 시내 외출이었다. 그조차도 아빠 볼일이 끝나는 시간에 맞춰서 일을 봐야 하니 늘 마음이 조급했을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가 운전면허를 따겠다고 선언했다. 면허 학원비가 80만 원. 단 돈 만원도 벌벌하는 박 여사가 그 돈을 들여 면허를 딴다고? 나는 화들짝 놀랐다. 설사 면허를 딴다고 한들 엄마가 운전대나 제대로 잡을 수 있을까 싶은 우려도 앞섰다. 엄마 나이 54세 때였다.     


나의 우려와는 달리 엄마의 운전면허 도전기는 의외로 순탄했다. 이론도 한 번에 패스, 실기도 한 번에 패스, 가족 모두  운전 체질이라며 엄마의 기운을 북돋아 주었다. 엄마는 면허 시험을 단번에 합격했다. 운전면허를 취득한 그 날은 지금도 엄마 인생에서 가장 잘한 날로 두고두고 회자되고 있다.      


나는 서울에서 일하다 가끔 고향집에 내려가곤 했는데 그때마다 아빠가 마중을 나왔었다. 그런데 어느 날은 기차역 앞, 익숙한 트럭 운전석에 아빠가 아닌 엄마가 앉아 있는 것이 아닌가. 시골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파란색 트럭 포터. 차 창을 내리고 손을 흔드는 것은 분명 엄마였다. 자그마한 체구에 그 파란색 트럭이 유독 커 보였다. 하지만 걸 크러쉬, 아니 맘 크러쉬 답게 내 짐보따리를 트럭 짐칸에 ‘휙’ 던지고, 나를 옆자리에 태워 액셀을 밟았다. 운전대를 잡은 의기양양한 엄마의 모습,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평균 시속 40-50km.  차 광고에 나오는 시승 감, 속도감 이런 건 엄마에게 전혀 중요치 않았다. 속도가 뭣이 중하리, 이 차 타고 딸 마중도 하고, 친구도 만나고 마트도 가고 농작물도 담 푹 담 푹 실으면 됐지.


내가 지금도 어려워 절절매는 주차도 엄마에겐 노 프라블럼! 시골의 널찍한 공터가 모두 엄마 전용 주차장이었다. 박 여사의 신명 나는 드라이브 인생은 그렇게 시작됐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는 동네 아줌마와 좀 더 과감한 시도를 했다. 차를 몰고 읍내를 넘어 시내까지 나간 것이다. 난생처음 4차선을 달려 시장을 향했다고 한다. 장날에 일부러 맞춰 갔다는데 초보 운전자가 장날 인파와 주차난을 어떻게 해결했을까?     


엄마는 깔깔깔 웃으며 말했다.      


“운전 잘하게 생긴 사람 붙잡고 주차 좀 해달라고 했제 하하하”      


발렛도 시골인심인가? 부탁받은 사람이 흔쾌히 오케이하고 아주 완벽하게 주차를 해줬다고 했다. 겁 없는 드라이빙 덕분에 엄마의 운전실력은 일취월장했다.


이젠 무사고 운전경력 10년 차가 넘는 베스트 드라이버다. 지금은 파란색 포터를 몰고 안 가는 데가 없고 못 가는 데가 없다. 친정에서 엄마가 안 보인다 싶으면 엄마의 트럭도 함께 없다.        


손자 손녀가 좋아하는 과자를 사러 간다고 부릉, 딸내미 반찬거리 사러 간다고 부릉, 밭에 모종 하러 간다고 부릉, 엄마의 트럭은 잠시도 쉴 틈이 없다.      


“엄마, 좋은 차 하나 사주까?”

“더 좋은 차가 어딨노? 뒤에 짐도 맘껏 싣고, 내 가고 싶은데 다 갈 수 있고, 이 차보다 좋은 거 없다. ”      


역시 엄마다. 한평생 명품이 뭔지도, 브랜드 옷이 뭔지도 모르고 살아온 우리 엄마...


그렇다고 아무것도 모르는 것은 아니다. 계절마다 바뀌는 신상 풀이름도 알고, 산나물 핫플도 알고, 과실의 수확 공식도 누구보다 잘 안다.  


내가 남들이 좋다는 거 좀 하고 살라고 툴툴대면 엄마는 늘 이렇게 말한다.


남들이 아무리 좋다 캐도 내가 좋아야 진짜 배기지.

맞다. 남들이 뭐라든 엄마의 똥차는 엄마에게 진짜배기 명품 차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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