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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G Jun 25. 2020

결혼식, 망했습니다.

결혼식 실패 썰, 그래도 잘 삽니다.


드디어 때가 왔다. 일생일대의 이벤트, 내 결혼식!    

  

화려하고 멋진 배경 속에 공주 같은 나를 상상했다. 하지만 그건 드라마나 영화 속 이야기일 뿐. 현실은 도떼기시장 속 정신이 반쯤 나간, 오프숄더 드레스가 어색한 주인공이었다. 어쨌든 주인공은 주인공이다.      


결혼은 남녀의 사랑만으로 가능하다지만, 결혼식은 얘기가 다르다. 대부분 부모님의 결정으로 이루어진다. 스몰웨딩, 주례 없는 결혼식을 제안했다가 보기 좋게 까였다. 그도 그럴 것이 그간 부모님이 축의금으로 뿌린 돈을 생각하면 사람들이 오기 쉬운 장소에 가성비 좋은 뷔페 음식을 마련하는 것이 부모님 입장에선 합당한 일이었다.    


우리의 진실된 사랑 맹세 따위는 그리 중요해 보이지 않았다.


좁은 나라에서 뭔 놈에 문화 차이는 그렇게 많이 나는지. 경상도인 우리 측은 여자 쪽에서 식을 올리는 게 맞다 하고 용인 남편 측은 남자 쪽에서 해야지 뭔 말이냐고 했다. 둘 다 맏이에다 첫 잔치라 의견이 팽팽하게 맞섰다. 결국 남편의 설득으로 시댁에서 백번 양보해 친정 근처로 식장을 잡을 수 있었다.      


후져 보이는 삼류 호텔에서 나의 결혼식은 진행됐다. 그런데 시작부터 조짐이 좋지 않았다. 갑자기 내린 눈으로 인해 용인에서 시어른과 동네 분들을 잔뜩 태운 하객 차량이 시간 내 도착을 못한 것이다. 식이 곧 진행될 예정이니 자리에 앉으라는 멘트가 연이어 들려왔다. 남편은 발을 동동 굴렀다. 까딱하면 부모님 없이 결혼식을 치르게 생겼으니 그 마음이 어땠겠는가. 하필이면 그 날이 길일이라 뒷 시간도 여유가 없었다.


 기다리니 마니 하는 와중에 한복 치맛단을 들춰 잡은 어머님과 요란한 구둣발 소리를 내며 아버님이 뛰어왔다. 예식 시작 딱, 5분 남은 시점이었다. 땀이 흥건한 채 혼주석에 앉아있는 시부모님을 보며 마음이 착잡했다.  

조바심이 끝나자 이내 떨림이 찾아왔다. 아빠가 남편에게 손을 건네주는 지점에선 진짜 드라마처럼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그러던 찰나, 감동이 불안감으로 바뀌었다. 남편 친구인 사회자가 무대 공포증인 건 왜 그제야 알 게 된 걸까?

       

“주례사 선생님 말씀... 아니 아니, 축하 노래가... 어... 그게 아니라...”      


평소 인터넷 라디오 방송도 진행하고, 말솜씨가 남달라 남편이 특별 섭외한 친구인데 알고 보니 실제 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선 진행을 해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순서가 뒤죽박죽, 엉망진창이었다. 식장은 어수선해졌다. 보다 못한 주례 선생님이 나서 순서를 정리해주었다. 화려하고 멋진 결혼식의 바람 따윈 이미 물 건너갔고 제발 무사히만 끝내다오. 신에게 빌었다.


다음은 축가가 말썽이었다. 신랑 친구 중 한 노래 한다는 친구에게 축가를 부탁했는데 준비해온 노래의 MR이 식장엔 없다고 했다. 무반주 생목 멜로디 축가가 우리의 앞길을 축복해주었다. 흥도 없고 볼 만한 이벤트도 기대하기 힘들다고 생각한 하객들은 서둘러 식사를 하러 떠났다.

반지교환 순서에선 반지 케이스를 들고 있던 친구가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수다를 떠느라 때를 놓치고, 대구에서 인천공항 까지 우리를 태우고 가던 웨딩카는 미리 기름을 채우지 않아 고속도로 중간에서 또 한번 애를 태웠다.


뭣하나 생각대로 된 게 없었던 나의 결혼식. 이런 결혼식이라면 두 번 다시 하고 싶지 않다고 하자 남편은 그래서 결혼식을 하는 거라고 농을 쳤다.      


나의 결혼식은 이렇게 실패로 끝났다.      


가끔 티브이에서 눈부시게 아름다운 결혼식을 올리는 셀럽들을 본다. 그래, 내가 꿈꿔온 결혼식의 모습은 저런 거였는데.... 그런데 얼마 못 가 헤어졌다는 기사를 접할 때마다 뭔가 기분이 이상하다. 그리고 이런 생각에 이른다.  정말 내 결혼식은 실패였을까? 다소 생각처럼 되지 않은 결혼식이었지만 결혼 생활은 13년째 아주 잘하고 있다.   


어느 날 내 결혼사진을 보고 아이가 그랬다.       


“우와 엄마 아빠, 꼭 동화 속 왕자랑 공주 같다”      


그래, 지금 보니 내 결혼식은 실패가 아니다. 어쩌면 실패한 결혼식, 실패한 취업, 실패한 인생. 이런 건 애당초존재하지 않는 게 아닐까? 그저 살아가는 날 중에 생각대로 되지 않는 날이 몇 날쯤 있었을 뿐이다. 나는 내 결혼식이 그랬고, 다른 누군가는 취업이, 또 다른 누군가는 사업이 그랬던 것이다. 그 순간을 우리는 ‘실패’라고 오해하고 있는지 모른다.



실패란 사람들이 지어낸 말에 불과하다. 그러니 잊지 말자. 우리가 실패라고 오해하고 있는 순간은 틀림없이 더 나은 삶을 향해 지나가고 있는 과정의 날일 뿐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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