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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G Aug 21. 2020

열두 번째 인상은 자신 있습니다

첫인상은 자신 없지만...

나는 첫인상 덕을 본 적이 없다. 표정이 많지 않아서일까? 덕은 커녕 뜻하지 않은 오해를 산 적이 더 많다.


얼마 전 한 지인이 나에 대해 안 좋은 얘기를 하고 다녔단 사실을 알게 됐다. 그런데 그 이유가 내 인상이 안 좋아서란다. 자길 쳐다보는 눈길이 기분 나빴다나 어쨌대나. 고작 그 사람과 두 어번 만난 게 다인데… 더 이불 킥 할 사건은 내가 그 지인을 좋게 생각했다는 거. 나를 욕할 동안 나 혼자 그녀를 좋은 사람일거라 믿어온 것이다. 젠장.


이처럼 나도 사람보는 눈이 없다. 좋은 사람인 것 같아 정 주고 마음 주고 사랑도 줬는데 알고 보니 쓰레기 이질 않나, 천하에 나쁜 놈인 것 같아 두 번 다시 볼일 없겠다 싶었는데 세상 이런 천사가 없네? 늘 이런 식이다.


매번 낚이는 것도 한두 번이지, 나는 이제 첫인상을 믿지 않는다. 남편도 나의 이런 변죽을 잘 알기에 첫 만남에서 내린 내 평가를 거의 무시한다.  오늘 ‘걔 별로인 거 같아’ 했다가 몇 달 후 절친이 돼 있는 경우가 허다했으니.


이런 일이 반복되자 사람을 만났을 때 첫 느낌이 별로 안 좋은 사람에게 왠지 더 호감이 간다. '느낌이 안 좋은데? 뭔가 괜찮은 구석을 숨기고 있는 거 아냐?'라는 식으로. (말하고 나니 변태 같다)


첫인상 판단미스! 대체 뭐가 문젤까? 기대치 때문일까? 생각해 보면 상상력이 불러낸 참사인 것 같다. 그 참사의 희생양이 떠오른다.


이직후 첫 출근하는 날. 팀장이 나를 편집실로 데려가 메인 피디를 소개했다. 얍살스러운 눈으로 나를 힐끗 보더니 건성으로 ‘에’ 하고 까딱했다. 으레 봐 온 겉멋 든 피디겠거니 했다.


나는 그곳에서 자투리 코너를 맡았는데 어느 날 메인 피디가 촬영장에서 전화가 왔다. 촬영 현장에서 섭외로 인한 문제가 생겼단다. 소리를 버럭 지르며 요목조목 따지는데… 사람 기분 나쁘게 하는 대회 있으면 1등 할 사람일세 라고 생각했다.


나도 억울했다. 메인 작가가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인데 왜 나한테 소리 지르냐고 바락 대들고 싶었지만 소심 A형 조작가는 그저 묵묵히 한 귀로 듣고 뒤끝으로 남겼을 뿐이다. 조용히 핸드폰을 열어 그 피디의 이름을 왕싸가지로 저장했다. 프로그램이 끝나면 두 번 다시 마주치지 말자 했던 그 왕싸가지와는 16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친하게 잘 지내고 있다.


그것도 너무 친해서 같이 살 정도로 말이다. 애도 둘 씩이나 낳고.... 여보, 몰라봐서 미안.


비호감이 언제 호감으로 딸깍! 체인지됐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처음 내가 느꼈던 모습은 아주 단편에 불과했다.오랜 시간 함께 일 하며  나의 상상과는 전혀 다른 모습도 많이 발견하게 됐다. 늬집 개똥밭인가 해서 발로 툭툭 찼는데 보물이 수두룩히 묻힌 유적지 같은 사람, 그 사람이 현 남편이었다.


남편만 이 같은 억울함을 당한건 아니다. 학창 시절, 내가 정말 싫어하던 한 녀석이 있었다. 여리한 외모에 매사가 늘 긍정적인 녀석이었다. 늘 손해 보는 듯, 항상 웃으며 남한테 양보하는 녀석을 나는 가식적이라 생각했다. 쟨 벨도 없나? 싶은 생각에 틀림없이 뭔 꿍꿍이가 있을 거라 생각했다.


꿍꿍이는 무슨 꿍꿍이… 그냥 그런 애였다. 그 녀석? 결혼 전까지 죽고 못살던 내 룸메이자, 현재까지 내 베프로 지내고 있다.

사람보는 눈이 이정도로 없으면 깨닫는 바가 크다. 먼저, 사람을 함부로 판단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첫인상에 또 속았네… 라는 말을 하지 않으려면 두 번째 , 세 번째 인상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자세히 봐야 예쁘다. 오래 봐야 사랑스럽다 라는 시처럼 사람을 볼 때 자세히 보고 오래 보려 한다. 그렇게 조금씩 스미듯 천천히 알아간 사이일수록 더 오래 긴밀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


내 첫인상의 불호에 대해서도 크게 연연하지 않기로 했다. 첫인상은 자신 없지만 열 두번째 인상 쯤은 자신있기 때문이다. 예전엔 내 첫인상을 어떻게든 만회해보려 과도한 친절과 웃음을 남발했다.


하지만 이젠 안다. 관계란, 그렇게 의도적으로 만들어지는 게 아니란 걸, 적당란 노력과 타이밍 그리고 생각의 코드가 맞아야 한다는 걸. 그게 잘 맞춰지려면 어느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도.


사람에 대한 섣부른 판단과 기대도 삼간다. 첫인상은 좋았는데 나중엔 아니었던 사람들도 따지고 보면 죄가 없다. 나 혼자 이런 사람일 거야 라고 북 쳤다가 왜 아닌 거야 하고 장구 쳤던 걸 수도 있지 않은가.


첫인상은 그저 첫인상으로만 두자. 그걸로 평가하는 것도 반칙이다 두번째 세번 째 네번째 인상에게도 기회는 줘야하지 않을까? 그래야 나같은 사람들이 오해를 덜 받는다.


내 첫인상이 떨꺼웠다는 그 지인에게 한마디 하고 싶다


"그때 저 최대한 상냥한 표정으로 당신을 쳐다본 거였거등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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