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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G Aug 14. 2020

'"그냥 죽으세요" 유리멘탈이 악플을 만나면...

 생긴 건 환불 원정대인데 마음은 유릿장인 사람, 바로 나다.      


그런 내가 공개적 글쓰기를 하고 나니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혹여 껄끄러워 진 지인이 보고 있진 않을까?’ ‘태클 걸만한 문구가 있진 않나?’ ‘내가 믿고 있는 사실이 진짜일까?’ 그래서 웬만하면 남 얘긴 잘 안 쓴다.      


하지만 가족은 예외다. (잘 모르지만) 가족은 오랜 기간 봐왔고 무엇보다 내 글쓰기를 열렬히 응원하며 나의 쓰기를 위해 기꺼이 한 몸 내어줄 수 있다 하니 맘 편히 꺼내 쓸 수 있다.      


그런 이야기 중에 메시지가 있다고 생각되는 글은 (자체 선정기준) 오마이 뉴스에 발행하고 있다. 기사가 등재되면 한없이 기쁘지만, 걱정도 함께 온다. 기사는 브런치와 달리 좀 더 많은 불특정 다수에게 노출된다. 좋아요는 신랄하고, 댓글은 무자비한 수준이다.       


얼마 전, ‘밥 프리를 선언합니다’ 기사가 그랬다. 공감의 댓글도 많았지만 악플도 부지기수였다. 어떤 분은 기사의 쓰레기 댓글을 보고 왔는데 브런치에는 공감의 댓글이 많아 다행이라며 응원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갔다. (김동진 작가님, 감사합니다... 감동의 눈물)


악플의 내용은 뭐 이런 식이다.      

애미란 사람이 애 팔아서 글 쓰냐?
그럴 거면 애 새끼는 왜 낳았냐
집구석에서 밥도 안하면 뭐하냐 돈 버는거 힘든지 모르고..

- 애들한테 허락받고 쓰는데요

- 저 혼자 낳은 거 아닌데요.

- 제발 가능하면 재취업 좀... 돈 벌고 싶어 죽겠어요.     


따박따박 대댓글을 달고 싶지만 속으로 삼킨다. 애꿎은 설거지 그릇만 박박 닦으며, ‘우이 씨 잘 알지도 못하면서....’이라고 구시렁댄다.     


남편은 나의 충실한 모니터 요원이다. 자기가 보기에도 악플 세례를 받는 아내가 불안했던지 내게 실명이 아닌 가명을 쓰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난 명예욕 있는 여자라 안된다고 못 박았다. 정말 괜찮아?라고 하는데 나는 쿨내 풀풀 풍기며 말했다     


“무플보다 악플이 낫대잖아”     


나을 리 없다. 남편이 가고 나면 손톱을 물어뜯고 다리를 달달달 떨며 소처럼 댓글을 되새김질한다.   


어찌나 말들이 뾰족한지 가슴을 콕콕 찌른다. [그냥 죽으세요 행복인줄도 모르고] '다음 얘기도 육아신세 한탄인데 어쩌지...''전업맘의 심정을 대변하는 글을 쓰고 싶어...' [집에서 놀고 먹으면서 속 편한 소리 하네]  헉! 악플 예상 시나리오까지 절로 막 떠오른다. 사막의 모래강처럼 벗어나려 하면 할수록 더 깊이 빠져들게 된다.      


그러다 결국은 이게 뭐 하는 짓인가... 조용히 입 닫고 안 쓰면 되지 않나...라는 생각에 이르게 된다. 글린이 (글초보) 에겐 아주 치명적이다. 얼마 쓰지도 않았는데 벌써 절필을 고민하다니... 멘탈 위험 경보다.


유리멘탈을 강화유리로 바꾸려면 써야 하는 이유를 계속 상기시켜야 한다. 그 이유가 딱히 떠오르지 않을 땐 글신에게 도움을 받는다. 이미 이 길을 지나간 나의 글쓰기 신. 그들이 쓴 글을 아주 성스럽게 읽어 내려가는 것이다. 구구절절 맞는 말씀, 공감의 문장에 밑줄까지 쫙쫙 그어가며 읽다 보면  글신은 내게 기적처럼 응답을 준다.      


“글신이시여~! 글을 써야 하나요 말아야 하나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써야 하느니라...”


5G 보다 더 빠른 응답 속도, 글신님의 뜻이니 따르는 수 밖에 없다. 비평과 비난을 구분하라라는 말처럼 비평이 아닌 비난의 글에 내가 숨을 필요가 없다는 것도 깨닫는다.      

 

악플은 고질병처럼 계속 찾아올 것이다. 그때마다 나는 글신님의 글을 부여잡고 기도를 하거나 있어빌리티한 가명으로 독자들을 찾아갈지도 모른다. 하지만 틀림없는 건 지금껏 그래 왔듯 앞으로도 글쓰기를 놓지 않을 거라는 점이다.


작가가 독자보다 많은 세상이란다. 그 많은 작가들이 악플과 무플과 선플을 넘나들며 자신의 생각을 글로 옮기는 건 무엇때문일까? 보아하니 생각만큼 돈이 되지도, 명예가 생기는 일도 아닌듯 하다. 그들은 그저 자신의 자리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있는거라 생각한다. 자신이 살고 있는 생애 감촉을 함께 느껴보자고...


그게 아니라면 내가 무슨 수로, 중년도 명랑하게 보낼 수 있다는 걸 알 것이며, 비혼주의자들이 어떤 마음으로 세상을 헤쳐나가는 지 알 것인가...


그러니, 나 역시 욕을 온 몸으로 맞더라도 이자리에서 묵묵히 쓰는 수 밖에 없다. 백수 라이터, 후줄근한 전업 맘의 삶도 누군가에게 희망이 될지 어떻게 알겠는가?   


그런데, 악플러는 알랑가 모르겠다. 어쨌든 이 구역에선  쓰는 사람이 이기는 게임이라는 것.      


“그렇게 꼴 보기 싫으면 당신도 당신의 이야기를 써보세요.”라고 이자리를 빌어 용기내 말해본다.


그때 난 그에게 욕이 아닌 응원의 댓글을 달겠다.

결국 써내고야 마는 당신, 좋아요! 꾸욱!!!

나는 유리멘탈이지만 이렇게 대인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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