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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G Sep 01. 2020

남편의 이상한 취미

왜 그걸 보고 있어?!

나는 남편이라는 세계를 만나 온갖 괴괴한 문명을 접하게 됐다. 솔직히 '우와'하는 감탄보다 왜 저러나 싶은 노이해의 마음이 더 크다.


가령, 고장 난 걸 굳이 땀 뻘뻘 흘리며 분해하고 있는 것.

- 그냥 a.s를 맡기면 될 텐데...

"이게  많아 보여도 양이 별로 안돼"

- "이 음식들이? 진정코? "

1분 간격으로 티브이 채널을 계속 돌리는 것.

- 제발 한 채널만 보자 정신없어.


그중 노이해의 최고봉은 남편의 취미활동이다. 결혼 전 남편은 특별히 좋아하는 것도 취미 활동이랄 것도 없는 사람이었다. 그에 반해 나는 좋아하는 것도 많고 이런저런 취미 찾기가 취미였던 사람이다. 오죽하면 남편에게 하고 싶은 게 하나도 없냐며 핀잔을 주기도 했는데...


드디어 몇 해전 남편에게도 취미란 게 생겼다. 그런데 그 취미란 게 너무 이상하다. 한번 들어보시라.


주말 오전이 되면 남편은 야구모자와 캠핑의자를 챙겨 "갔다 올게" 한 마디를 남기고 떠난다. 그가 향한 곳은 야구 시합장이다. 프로야구도 아니고 메이저리그는 더더욱 아닌 그냥 동네 아저씨들이 모여서 경기하는 곳.


직접 경기에 참여하는 것도 아니고 멀찌감치서 구경만 하는데 그게 그렇게 재밌단다. 지나가는 말로 오늘 어땠냐 물어보면 39대 1로 한 팀이 처참히 깨졌는데 블라블라. 4번 타자가 어쩌고 투수가 어쩌고 블라블라. 그 재미 차라리 남편 혼자만 아는 게 낫겠다 싶어 영혼 없는 리액션만 해주다 만다.


어떤 때는 야구 마니아인 11살 아들을 데리고 가기도 한다. 야구 모자에 유니폼, 야구가방까지 챙겨 메고 나가선 그 근처에서 캐치볼을 한다. 그 정도 차림이면 전지훈련 정도는 가줘야 하는건데 말이다. 나와 딸은 속으로 같이 가자할까 두렵다. 몇 번 따라 가보기도 했는데 대체 어느 포인트가 재밌는지 전혀 감을 잡지 못했다.


내 눈엔 그저 주말에 가정 팽개치고 나온 아저씨들의 공치기가 못마땅할 뿐이었다. '주말에 와이프 혼자 애들 보고 있을 텐데...' '빨리 좀 끝내고 들어가지~' 내 눈에서 나오는 레이저를 보고 남편은 다시는 같이 가자고 하지 않는다.


경기 내용이 흥미진진하면 말도 않겠다. 지는 팀은 매번 지고 이기는 팀은 매번 이긴다. 경기 보는 맛이란 자고로 엎치고 뒤치고 하는 심쫄맛으로 보는 것 아닌가? 이렇게 밋밋한 경기 플레이를 유일하게 흥미롭게 지켜보는 이. 바로 내 남편이다.


얼마 전엔 웃픈 일도 있었다. 매 주말마다 지정좌석에 앉아 심각하게 경기를 보고 있으니 팀원 중 한 명이 쭈뼛거리며 다가와 묻더란다 "혹시 스카우트 담당자세요?"라고. 남편이 아니라고 했더니 다소 실망한 표정으로 돌아서려다 남편의 풍채를 보고 혹시 자기 야구팀에 들어오지 않겠냐며 되려 남편에게 스카우트 제의를 했단다. 남편은 응원만 하겠다고 거절을 했다고 한다. 나는 그 말을 듣고 그 나이에 길거리 캐스팅도 당하냐며 힘껏 기뻐해 주었다.

야구는 사회의 축소판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런 관점에서 사회인 야구팀은 이상적인 사회상을 보여주는 집단인 듯하다. 정치적 눈치싸움도 없고 실력을 포장할 필요도 없다. 개인의 실력이 곧 팀의 우승과 직결되니 시샘 보단 환호해주는 동료들이 더 많을 것이다. 살아남기 위한 경쟁보단 함께 즐기는 것이 우선인 곳이다. 더욱이 판을 뒤엎을 홈런 한 방도 꿈꿀 수 있지 않은가?


남편이 늘 말해오던 부조리한 사회와는 다른 이상적인 사회를 그 안에서 찾고 있는 건가 싶어 남편을 짠하게 쳐다봤다. 하지만 이것은 나의 작가적 시선이고 화성 남자의 깊은 뜻을 금성 여자가 어찌 헤아리겠는가...


사회인 야구단 경기는 시즌제가 아니라 주말 full타임으로 쉬지 않고 개최된다. 남편은 또 그에 맞춰 열심히 관람을 하러 간다. 하긴, 비싼 관람료도 없고 위험하지도 않은 이 취미를 나로서도 마땅히 반대할 이유는 없다.


언젠가 남편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 아니, 저 사람들은 프로 야구 갈 것도 아닌데 왜 저렇게 열심히 해?"


남편이 그런다


"꼭 뭐가 되려고 열심히 해야 하나?"


괜히 머쓱해졌다. 하긴 나도 뭐가 되기 위해 글을 쓰는 게 아니고 남편도 스카우트를 하기 위해 관람하는 것이 아니다. 즐기는 것에 어떤 의미도 부여할 필욘 없다. 내가 즐거우면 그뿐.  


이제는 남편의 이상한 취미를 머리로 이해하기보다 마음으로 존중하려 한다. 생각해보니 남편도 수시로 바뀌는 내 취미 활동에 알 수 없는 표정을 한 적도 많지 않았던가...


그저 각자의 즐거움에 집중하면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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