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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G Aug 07. 2020

한낮에 이웃이 초인종을 눌렀다.  


두 아이, 모두 학원 간 시간.     

 

맘이 급하다. 앞치마를 벗어던지고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해야한다. 글도 빨리 매듭지어야 하고, 추천 영화도 봐야 하고 인터넷 쇼핑도 해야 한다. 앗! 어제 친구와 통화도 하다 말았지. 어디까지 얘기했더라...


아이들이 있을 땐 '하는 것도 아니오 안 하는 것도 아니오.' 상태가 되므로 온전히 혼자인 이 시간을 백분 활용해야 한다.     


째깍째깍 일분일초가 아쉬운 이때, 초인종이 울렸다. 내 시간을 침범하려는 자에게 문을 열어줄 리 없다. 안 받으면 말겠지 싶어 내버려 뒀다. 그런데 인터폰 화면 속에 낯익은 얼굴이 서있다. 바로 옆집 아줌마다.      


‘내가 뭘 잘 못했나?’

‘아침부터 애들이 피아노 쳐댄 게 문젠가?’

‘혹시 교회 전도?'


온갖 물음표가 머리 위로 둥둥 떠다니는 가운데 문을 열었다... 아줌마 손에 꽃이 들려져있다.


“제가 꽃을 주문했는데 좀 많네요. 좋아하실 것 같아서요”      


심장 펀치, 어퍼 훅!  무뜬금 꽃 선물!


눈썹이 동그랗게 말려 올라갔다. 빨리 그에 상응하는 답을 찾아야 하는데 준비된 답이 없어 어버버 댔다.

      

“아.... 네..... 어머... 어머머... 예쁘네요”     


싸우려고 덤비면 나도 쉽지 않은 여자야! 할 요량으로 기를 뿜고 있었는데 내 표정도 갈피를 못잡고 헤매고 있었다.


"세상에... 어머... 어머... 감사합니다.'

  

어정쩡한 자세로 꽃을 넙죽 받아 들었다. 아! 차라도 한 잔 하고 가라고 할걸... 후회는 늘 뒤늦다.


이사 온 지 4년 차. 그간 옆 집과의 교류는 전혀 없었다. 가족 수가 셋, 애가 우리 큰 애보다 한 살 더 많네 정도만 안다. 지구반대편 얼굴색 다른 사람의 일상도 속속들이 알고 있는데 서너 걸음이면 닿을 거리에 살고 있는 옆집 사정은 몰라도 너무 모르고 살았나 싶다.


오다가다 마주치면 가벼운 목례가 전부. 올 때가 지난 택배를 기다리며 넌지시 잘못 간 택배 없나요?라고 물어본 것 외엔 길게 얘기를 나눠본 적도 없다. 이웃사촌이란 말도 다 옛 말이지 친해지면 괜히 성가실 것 같아 부러 거리를 뒀던 것도 사실이다.  

화병에 꽂을 꽂으며 생각했다. 내가 그동안 너무 딱딱했나 ? 친해지고 싶단 뜻인가? 괜히 맘이 켕겼다. 꽃 향기가 번져갈수록 알 수 없는 감정이 요동쳤다.   


언제부턴가 내 인생에 '뉴페이스' 가 없다는 걸 깨닫는다. 사회생활을 안 해서, 집순이어서 등 나름의 이유를 들어보지만 실은 기회는 얼마든지 있었다. 하지만 굳이 그러고 싶지 않았다. 살다보니 사람이 피로해지는 순간이 왔다.


나를 찌르지 않고, 나 역시 날 세울 일이 없을 만한 사람들... 그 안에서만 안전하게 논다. 불필요한 감정 소모는 모두 제한했다. 적당한 거리는 외로울 망정 상처는 없다.


인연이면 또 만나겠지요... 종교인의 마음으로 관계에 힘을 쫙 빼버리니 거짓말처럼 누구와도 인연이 닿지 않았다 진심이란 알맹이는 쏙 빼고 편의만 찾았으니 언제든 '안녕' 하고 돌아서도 아쉽지 않을 사이만 주위에 남았다.


왠지 씁쓸했다. 그렇게 해서 너는 얼마나 더 행복해졌니?  한낮에 날아든 꽃송이가 내 마음의 빗장에 대고 속삭였다.


그동안 누군가 내 마음에 노크를 해왔을 때 바쁜 척, 모른 척, 그냥 지나가겠거니 뒀다. '날 얼마나 안다고...' '사람 속을 어떻게 알아?' 앞선 편견으로 보이지 않게 밀어낸 적도 있었다.


그들 중 누군가는 꽃을 들고 서있었을지도 모르는데...

 

마음의 빗장을 풀고 이번엔 내가 먼저 옆집 초인종 앞에 섰다.


"저기.. 지난번 꽃 정말 감사했어요. 과일이 맛이 좋아서 저도 좀 나눠 드리려고요."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 그런 세상에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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