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셋(中) - 더 네임 <그녀를 찾아주세요>

노래가 만든 이야기 - 세 번째 이야기

by 작가 정매일

* 작가 개인 사정으로 연재가 늦어진 점 진심 어린 사과의 말씀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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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Hm-yT5Mj64g?si=NRcp3Q1HARyV_PUz

* 노래를 재생하며 글을 읽어보세요.

* 글 중간에 삽입된 이미지는 ai 생성기술로 제작되었음을 말씀드립니다.



맑은 물에 떨어트린 잉크가 컵 전체를 물들이듯, 그의 마음은 더욱 커져갔다. 지난밤 이후, 그녀가 과감해졌기 때문이다. 옷은 더 짧아졌고, 문제를 잘 풀면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보통 이렇게 마음이 다른 곳에 있으면 성적은 떨어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는 본래 공부를 잘하던 학생이었고, 이 마음은 무엇보다 강한 동기부여가 되었다.


'그래도 아직 2등급이야' 방심하지 말라며 그녀는 그를 타일렀다. 2학년 끝날 때까지 1등급은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방학 한 달 만에 등급을 올렸지만, 그녀 말이 맞긴 하다. 방심하지 말고, 선행에 더 박차를 가해야 한다. 그는 마음을 다시 다잡기로 했다. 그래도 어딘가 아쉽기는 하다. '이번 수능 1등급 받으면 뭐 해줄 건데요?' 퉁명스럽게 내뱉었다. 아직 2학년이 선배들이 치르는 수능에서 1등급을 받는다는 것은 정말이지 놀라운 일이긴 하다. 그렇게 받은 1등급을 내년 실전까지 잘 유지한다면 실제로도 좋은 결과를 얻을 것이다. 그걸 그녀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이상한 약속을 한다.


손잡게 해 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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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치열했던 수험생활을 한 번에 요약하는 것은 예의가 아닐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쨌든 결과적으로 그는 그것을 해냈다. 짧지만 그녀의 손을 잡아보았고, 마음이 간지러운 경험을 했다. 수업시간에나 듣던 문학 작품이 머릿속에 살아 숨 쉬는 것만 같았다. 아찔하고도 날카로웠던 스킨십에, 그는 그만 더 큰 그림이 그리고 싶어졌다. 친구들 모두가 찬양하던 그녀의 하얀 살결과 작고 부드러운 손 맵시는 나만 경험해 본 특별함이다. 기본-실력-심화로 단계별 학습을 진행하듯, 그녀와의 다음 단계도 저절로 욕심이 났다. 그다음 단계는 지금의 관계로는 어려울지 모르나 가능성은 존재했다. 그래서 그는 죽어라 공부한 것이다. 하루에 세 시간을 잔 적도 있었고, 걸어가며 단어장을 보다 행인들에게 부딪힌 적도 있었다. 쉬는 시간에 같이 떠들던 친구는 언제부턴가 곁에 오지 않았다. 그는 그렇게 외롭고 고독한 싸움 끝에 수리영역에서 1등급을 획득한 것이다.


어쨌든 이야기의 시작에서 말했듯 그는 S대에 입학했고, 그녀의 후배가 되었다. 허나 그녀는 합격 소식을 전한 이후부터 연락이 닿지 않았다. 적어도 합격했다는 문자에는 답장이 올 줄 알았다. 그렇지만 묵묵부답이었고, 당연히 바쁠 것이라 생각했다. 어딘가 섭섭함이 남아있는 그였지만, 같은 학교니 그래도 찾아가면 만날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가 알고 있는 것은 수학과 07학번이라는 것과 그녀의 이름뿐이었다. 선배들에게 물어도 잘 모르겠다 하였고, 심지어 그 사람이 누구냐고 하였다. 답답함에 학과 사무실을 찾아가고 교수님들께 넌지시 물어보아도 아무도 알지 못했다. 그는 무척이나 혼란스러워졌다. 그녀는 어디로 간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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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랑이었던 그녀는 찾지 못했고, 현실을 살아가는 그의 기억 속에서도 차츰 흐릿해졌다. 어디에 살고 있을지, 잘 지내고 있는지 그거 하나만 알고 싶었던 20대의 시작은 어느새 중반이 되었다. 십 년이 지나도 그때도 사랑일 것 같았던 그녀. 이제는 지나간 인연이다. 하지만 완전히 기억을 지우진 못했다. 첫사랑이 주었던 용기와 설렘은 생채기가 났지만, 그래도 그럭저럭 아물었다. 하나만 묻고 싶다. 아니 두 가지를 묻고 싶다. 잘 지내냐, 사랑했었냐. 자세를 고쳐 앉고 생각해 보니 아무래도 이기적인 질문인 것 같다. 고마웠고, 행복해라. 이게 조금 더 멋있을 것 같다. 진심이기도 하고. 그러나 한편으로는 너무 억울하다. 우리가 이른바 썸이긴 했어도, 잠수이별과 다를 바 없지 않나? 너무 예의 없는 그녀를 꾸짖고 싶다. 갑자기 사라진 건 그녀니까, 그럴 자격이 있다. 그럼 '왜 그랬냐' 이렇게 묻는 게 맞는 것 같다. 비틀 거리는 날이면, 그의 마음은 진자운동을 하듯 온탕과 냉탕을 오갔다. 당황, 원망, 분노, 슬픔, 그리움은 순서대로 그가 느꼈던 감정이었다. 그를 채운 날카로움에 누군가를 둘 여유 따위는 없었다. 그러나 누구나 그랬듯 시간이 서서히 지나며 그녀는 옅어졌다. 그렇게 지웠다 그녀를.


그는 현실을 살기로 했다. 사라진 건 그녀지, 나의 인생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냥 내 인생의 어떤 지나간 조각이었다,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적당히 참석만 하던 학과행사는 더 적극적으로 참여했고, 동아리 활동도 시작했다. 복학한 선배는 가입도 안 되는 줄 알았는데, 그래도 후배들이 참 열려있었다. 사람들과 어울리는 게 이렇게 즐거울 줄이야. 군대에서 몽쉘 받으러 간 절에서 스님이 한 말이 생각났다. '지옥은 결국 네 마음에 있는 것이다'


연합동아리라는 게 있었다. 숙맥인 줄 알았는데, 그래도 여자 후배들과 조금 어울려서인지 곧잘 말을 잘했다. 그러다 말이 잘 통하는 수정이라는 친구와 부쩍 가까워졌다. 두 살 어렸던 수정이는 문화생활을 무척 좋아했다. 그도 그런 걸 싫어하지는 않았고, 시험 기간을 제외하곤 대학로에 자주 놀러 가곤 했다. 둘 다 학생 신분이라 넉넉지는 않았기에 소극장 위주의 다양한 공연들을 접했다. 공연을 보고 낙산공원을 거닐며, 감상을 이야기를 하고 서로를 묻는 일이 어느새 일상에 자리 잡았다. 그렇게 봄에 만난 수정이는 여름에 연인이 되었다.

기억 속에 잠들었던 뜨거운 여름이, 또 다른 이름으로 시작했다. 적어도 한땐 그의 전부였던 그녀의 이름은 멀어지고 있었다. 이제 그녀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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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식으로 사귀기로 한 이후에도 그들은 대학로에 자주 갔다. 상시로 진행되는 공연들은 대부분 관람했지만, 시즌별로 새로이 등장하는 작품들이 있어 관극은 마르지 않는 샘물 같았다. '오빠 이거 어때?' 수정이가 가리킨 손가락 끝에는 '얼라이브'라고 쓰여 있었다. '나를 속박하는 그 모든 것들에 대한 안녕'이라는 문구는 어딘가 심오해 보였으나, 왠지 작품성이 뛰어날 것만 같았다. 그래 이거 괜찮겠네, 하고 발권을 했다. 두 분이실까요? 하는 목소리가 다소 익숙했으나 하루에도 수십 번씩 만나는 서비스 업종의 톤이겠지 하고 넘겨버렸다. 공연장에 입장하여 착석을 하였다. 대학로의 소극장 공연들은 객석 간격이 넓지 않아 무언가 할머니댁에 온 것 같다. 벌써 몇 번째 관람이지만, 그는 올 때마다 그런 생각을 한다. 캐릭터들이 주고받는 호흡을 옹기종기 모여 지켜보는 게 참 정감이 있다. 꽤나 진중한 작품인지, 흔히 존재하는 바람잡이 없이 극은 바로 시작을 하였다. 암전 되었던 무대에 한 줄기의 핀조명이 흐른다. 등을 보이던 주인공이 뒤를 돌아본다. 그 순간 그는 몸이 굳어버렸다.



그토록 찾아달라고 했던, 그녀였다.



-------------------------------(下)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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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2007년 12월에 발매된 더네임의 <그녀를 찾아주세요>입니다. 정규 3집 타이틀곡이네요. 제가 고등학생 때 나온 노래인데요, 저의 미니홈피 BGM이기도 했습니다. 절실한 가사와 호소력 짙은 가차력은 곡을 더욱 슬프게 만들어 주는데요, R&B의 느낌이 가득한 게 어딘가 바이브의 색깔도 엿보입니다. 눈치채셨겠지만, 이 노래는 바이브의 윤민수 씨가 작곡한 노래예요. 그래서 바이브의 결이 곡에 많이 드러납니다. 당시 차트에 순위권에도 오를 만큼 사랑을 받았던 노래인데요, 더네임의 근황은 모르겠으나 프로듀서로 전향했다고 하니 음반업계에 계실 것 같네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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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어진 연인에 대한 미련. 그것은 어디까지 이어질까요? 사라진 관계에 끊어진 연락, 그리고 주위 사람이 없다면 그의 소식은 알기 힘들겠지요. 꼭 한번 다시 보고 싶다면, 하늘에다 찾아달라고 하고 싶은 심정일 것 같아요.


그 절절함을 담은 노래에 애석함을 지닌 인물을 더해 보았습니다. 심지어 서로 간 합의 되지 않은 일방적인 이별이라면, 더욱 애절할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탄생한 이야기입니다. 그와 그녀는 어떻게 된 영문인지, 또 어떻게 될지 이어서 지켜보시면 재밌을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여러분들은 찾고 싶은 사람이 있나요? 어떻게 지내는지 알고 싶은 사람이 있을까요?

누구나 소식이 궁금한 사람은 있지 않을까 싶네요.


노래가 만든 이야기의 세 번째 이야기의 중편, 더네임의 <그녀를 찾아주세요>였습니다.


<노래가 만든 이야기> 연작은 매주 금요일 발행됩니다.





더네임 <그녀를 찾아주세요>


안녕 안녕 안녕

사랑한 그녀가 보내달라 하네요


안녕 안녕 안녕

밤하늘 별들아 그녀 가는 길 비춰주길


하나만 알려주세요 어디에 살고 있을지

몇년쯤이야 지금의 눈물쯤은 참을 수 있겠죠

시간이 흘러간데도 십년이 지나 간데도

그때도 사랑이면 난 어떡합니까

어디서 그녈 찾아야 합..니까..


안녕 안녕 안녕

돌아선 그녀가 멀어져만 가네요


안녕 안녕 안녕

부탁해 빗물아 그녀 눈물을 씻겨주길


하나만 알려주세요 어디에 살고 있을지

몇년쯤이야 지금의 눈물쯤은 참을수 있겠죠

시간이 흘려간데도 십년이 지나 간데도

그때도 사랑이면 난 어떡합니까

어디서 그녈 찾아야 합니까


들어줘요 내 사랑을 도와줘요 누구든지

알고 있다면 그 누구라도 데려다줘요

하나만 전해주세요 그녀와 마주친다면

적어도 한땐 그녀의 전부였던 나의 그 이름을

그녀도 기억한다면 그녀도 울고 있다면

그리움 하나라도 꼭 남아있다면..


내가 갈께요 날 기다려줘요

제발..


그녀를 꼭 찾아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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