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착"은 "안주"가 아니다.
성장을 믿는다는 건 고통을 믿는다는 것이다. 고통 없이는 성장할 수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
우리가 익숙한 것에서 받는 고통은 단지 "지루함, 권태"뿐이다.
그런 이유로 성장의 적은 바로 "안주"하는 것이다.
성장을 대표하는 말은 "도전 정신", "개척 정신"이다.
황무지를 떠돌던 사람이 황무지를 개척해서 그 땅에 정착한다면 만족은 할 수 있지만, 그것은 "안주"와 이어지지 않는다. 정착의 경우도 거기서 오는 문제들에 직면하게 된다. 나는 떠돌이 생활에 만족하고, 안주하는 사람들을 더 많이 본 것 같다. 그런 사람들이 홈리스나 거지가 된다.
정착민들은 그곳을 지키는 것에서, 더 넓게 개척하는 것에도, 그리고 풍토병이나, 위치에 따른 자연재해에도 저항해야 한다.
안주한다는 것은, 어떤 상황에 익숙해지고, 편안해지는 것이고, 만족하는 것이다. 사전적 의미로는 아래와 같다.
1. 한 곳에 자리를 잡고 편안히 살다. 2. 현재의 상황이나 처지에 만족하다.
나는 "안주하는 것"을 나쁘게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원하는 이상향을 머릿속에 품고 있으면서 현 상황에 안주하는 사람은 바뀌지 않는 상황 속에서 계속해서 고통받게 된다.
안주와 이상향은 공존할 수 없다.
안주를 하기로 했다면 안주! 하고 머릿속에 이상향은 지워라. 그러지 못하면 너는 계속해서 고통받을 것이다.
이상향을 쫒기로 했다면, 지금 이룰 수 없기 때문에 이상향인 것을 쫒기로 했다면, 성장에서 오는 모든 고통을 감내할 것을 선택하고 책임져라.
나는 말해주고 싶다. 그 누구도 당신의 인생을 책임져주지 않는다.
아인슈타인이 말했다는데 "어제와 똑같이 살면서 다른 미래를 기대하는 것은 정신병 초기 증세이다." 왜 정신병 초기 증세라고 말했을까? 정신이 계속해서 고통받고 좀 먹히기 때문이다. 변하지 않는 현실에게 희망마저 좀 먹히기 때문이다. 사실은 스스로 변하려고 움직이지 않았으면서.
선택하고 책임져!!
부딪히고 깨지면서 성장하길 선택할지, 포기를 선택할지.
어떤 것을 선택했든, 책임지라는 말은 "결과"에 대해서만 책임지라는 말이 아니다. 그 과정에서 오는 모든 시련과 역경, 고난과 고통과 비난, 감정 모든 것에 대해서 책임지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책임이 무거운 것이다. 여기서 한 번 더 말해주고 싶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안 할 건지. 당신의 인생은 누구도 책임져주지 않는데.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가? 나도 믿는다. 하지만 나는 능동적인 신앙을 갖고 있다. 이것이 바로 "삶으로 예배하는 것"이다.
방구석에 박혀서 운둔 생활하며 주가 정하신 대로 되길 백 년 기도해 봐라. 뭐가 변하나. 신에게 모든 것을 떠넘기는 사람, 세상에 모든 원인을 두고 세상 탓만 하는 사람.
정말 삼성 전 이건희 회장의 말처럼.. "변할 사람만 변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