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가다가, 해야 하는 일. 하기로 한 일 등이 진전 없이 멈춰버릴 때가 있다. 이번에도 그랬다. 이번에도 그런 나를 관찰해 봤다.
나는 성장 없이 천재처럼 완벽하길 원했다.
진정 진심으로 성장을 믿는다는 건 바로 지금 완벽할 수 없다는 걸 인정하고 몇 번이고 부딪히고 깨지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바로 지금, 어떤 이유로든 멈춰있다면 무의식 깊은 곳에서 성장에 대한 진심 어린 믿음이 흔들리고 있다는 뜻이다.
과거에 쌓아온 모든 것들을 떠올린다. 여기까지 오는데 완벽한 날은 단 하루도 없었다. 잊지 말자. 나는 하늘이 내려준 천재가 아니라 기어올라가야 되는 범부다.
부딪히고 깨지면서 생각해라. 분석은 범부가 더 크게 구조적으로 이기기 위해서 하는 것이다.
2024-04-07 일 0312시
불안하고 불완전한 감자에게
여기까지 오는데 완벽한 날을 단 하루도 없었어. 완벽한 날, 단 한 번도 없이 여기까지 왔다는 게 믿어져?
똑같이 불안하고 불완전한 감자 사이에 얼마나 큰 차이가 생길지. 두 눈 똑바로 뜨고 봐.
나 곧 싹튼다.
-터프한 감자가.
2023-05-07 수 0207시
위에 보이는 두 개의 메모를 각각의 날짜에 했었다. 나는 마침내 깨달았다. "성장"은 자연법칙이라는 것을 인생은 쉽다기보다 단순하다. 그런데 그 단순함이 너무 단단해서. 물렁한 것들이 부딪혀 보고 멋대로 어렵다고 생각하고 포기하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은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라"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이 말의 참뜻은 시도를 독려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나는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의 진정한 참 뜻을 알아냈다.
세상만사, 성장이 적용된다. 성장은 자연법칙이니까.
갓난아기들이 태어나서 걷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도와 실패가 있었을까? 모든 것에 대해서 도대체 얼마나 많은 실패가 있었을까?
실패는 반드시 필요했던 과정의 다른 말이다.
그런데 나는 실패에 대해서 이렇게 생각한다. "실패는 반드시 필요했던 과정의 다른 말이다."라고 예를 들어보자 아주 사소한 원인으로 당신이 실패했다. 그렇다면 성장하는 작은 규모에서 그 실수를 겪어서 배우는 게 좋을까? 아니면 운이 좋게도 규모가 커진 후에 작은 실수에 무너지는 게 좋을까? 모든 것은 어차피 겪어야 하는 과정에 있다. 성장을 믿는다면, 이것도 자연스럽게 믿게 된다.
주짓수에는 "이기거나 배우거나"라는 교훈이 있다. 포기하고 멈추지 않는 이상! 패배란 없는 것이다.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에 내가 모든 글귀를 통틀어 가장 좋아하는 문장이 나온다. "인간은 파괴될지언정 패배하지 않는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의 참뜻은 바로.
너는 어차피 실패하게 될 건데, 그걸 두려워할 필요가 있냐는 거다.
그리고 그런 시도와 실패를 경험 삼아 공부하고 배워서, "숙련도"를 높여 계속해서 "다시" 반복하면서 성공률을 높여야 한다.
실패에는 고통이 따른다. 하지만 성장은 그 고통에서 온다고 믿는 것이다.
니체가 말한다. "나를 죽이지 못하는 고통은 나를 더 강하게 만든다."
고통이 성장의 증인이다.
성장이 자연법칙이기 때문에, 부딪히고 깨지는 경험으로 배우고 성숙해지고, 다시 도전하지 않으면.
우리는 절대로 올라설 수 없다.
또 자연법칙이기 때문에, 각 분야에 높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사람들은 필연적으로 수많은 실패와 자기 파괴적인 도전에 자기 자신을 내던졌을 것이 분명하다.
그러니까 믿어라. 내가 말하는 자연법칙은 동물과 식물 사이에서도 일어나는 것들을 관찰한 후에 결론 내린 것들이다.
성장은 동물과 식물에서도 인간과 같은 방식으로 일어난다. 그것은 자연법칙이기 때문이다.
너는 아무것도 아니다. 네가 상처받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죽지 않는 한, 너는 반드시 더 강해질 테니까. 이것은 자연이 보증하는 법칙이다.
오히려 나는 '천재'라는 것을 믿지 못하겠다. 나에게 천재라는 사람이 다가온다면 나는 그 사람이 말하는 재능이란 것을 의심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