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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새미 May 07. 2024

주간 새미일기

2024.04.30 (화)~2024.05.04(토)

2024.04.30 (화)

지난번 공원에 놀러 갔다가, 공원 호수에서 열심히 채집활동을 하고 있는 친구들을 보았다. 그 친구들의 채집함에는 새우와 소금쟁이가 잔뜩 담겨있었다. 가을이는 그 친구들을 무척 부러워했다. 그래서 자기도 채집도구를 사달라고 했었다. 인터넷에서 주문한 채집도구들이 오늘 아침에 집 앞에 도착했다. 아침부터 아이는 그 채집도구들을 꺼내보며 설레어했다. 오늘 하원하고 공원에 가자며 잔뜩 상기된 표정을 해 보이던 아이는 신나게 등원을 했다. 하원시간. 하원하자마자 아이는 나에게 채집도구를 챙겨 나왔냐고 물었다. 내가 그렇다고 하자 아이는 당장 공원에 가자며 킥보드를 타고 앞서 달려 나간다. 우리도 그 호수에서 새우와 소금쟁이들을 잡았다. 채집함에 넣은 새우와 소금쟁이들을 아이들은 연신 신기해하며 들여다보았다. 사실 나도 신기했다. 4마리의 새우 중에 2마리는 알까지 벤 상태였다. 우와… 신기해. 나는 사실 재밌게 잡은 뒤에 다 풀어주고 갈 생각이었으나 아이는 집에 데리고 가고 싶어 했다. 잘 설득을 해서 소금쟁이들은 다 풀어주었는데, 새우는 집에 가서 키우고 싶다는 아이…;; 일단 집에 데리고 오기는 했다. 나는 수중생물 키운 경험이 많은 언니에게 새우를 어떻게 키우면 좋을지 물어보았다. 그런데 언니 말이 새우는 물 맞추는 게 어려워서 잘 죽는단다. 물쇼크에 약해서 물을 잘못 갈아주거나 먹이가 썩어서 물이 오염되면 쉽게 죽는다고…;;; 사실 집에 돌아온다음 어항 사주겠다고 애 둘 데리고 마트까지 갔었는데, 나는 어항을 사지 않고 집에 돌아왔다. 그리고 아이를 설득했다. 새우를 위해서는 호수에 다시 풀어주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집에서 키우면 금방 죽을 거라고 말이다. 오늘 하루 실컷 구경하고 내일 호수에 가서 풀어주자고 했다. 아이들은 살아있는 생명을 키우는 게 그렇게 신기하고 좋은가보다. 얼마 전부터 유치원에서도 토끼 두 마리를 기르기 시작했는데, 그 토끼들도 얼마나 좋아하는지 모른다. 그래서 가끔 반려동물을 키워볼까도 고민하긴 하는데, 좁은 곳에서 갇혀 사는 동물들이 불쌍하기도 하고 결국 내 일이 늘어나는 것이기도 하기에 늘 망설여진다. 살아있는 생물이 주는 신비함과 즐거움이 확실히 있지만 일단 이 새우들은 돌려보내주기로 한다. 돌아가서 아기들도 잘 낳기를^^


2024.05.01 (수)

5월의 시작. 소위 말하는 ‘가정의 달’의 시작이다. 그 첫 시작은 근로자의 날로, 아이들 둘 다 등원을 하지 않게 되었다. 고로 나에게는 ’추가‘ 근로의 날이다. 하지만 날이 좋아 친한 가족들과 함께 수목원에 가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왔다. 문제는 너~~~~무 피곤하다는 것. 아이 둘과 하루종일 밖에 있다 보니 진이 빠진다. 문제는 집에 와서 저녁 차려먹고 저녁 차려먹은 거 치우고, 애들 씻기고 또 치우고, 빨래 돌리고 쓰레기 내 다 버리고 하다 보면 사람이 점점 한계치에 다다른다. 하지만 가장 큰 업무가 남았다. 아이들을 재우는 것. 결국 애들 재우다 폭발. 애들 둘을 다 울리고 말았다. 아 이러면 또 현타가 온다. 가정의 달의 시작이 되는 하루를 이렇게 마무리하는구나. 난 역시 가정의 달이 싫다. 신기한 건 내 가정이 생기고 나서야 비로소 가정의 달이 싫어졌다는 것이다. 이건 대체 누굴 위한 가정의 달인가. 어린이날도 좋고, 어버이날도 좋다 이거다. 근데 왜 온갖 날들을 다 한 달에 몰아넣어놔서 사람을 이렇게 진 빠지게 하느냔 말이다. 여러 달로 흩어놓았으면 좀 좋았겠냐 이 말이다. 벌써부터 어버이날에 어머니댁에 뭐 사갈지 너무 고민인데 딱히 답도 없다. 하…  가정을 위한 달인데, 가정에 질리게 되고야 마는 이 죽일 놈의 가정의 달. 벌써부터 5월 한 달이 걱정이다. 오늘 하루 천국과 지옥을 오간다.


2024.05.03 (금)

여름이 어린이집 상담을 했다. 여름이가 친구들을 밀고 때린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작년에도 한 번씩 그런 적이 있다고 듣긴 했었는데, 그땐 아이가 어려서 훈육의 필요성을 이야기하지 않으셨지만 지금은 달랐다. 이제는 한 해 더 자랐으니 가르쳐주어야 할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선생님 이야기를 들어보니 이제는 안 되는 걸 알면서도 의도적으로 친구를 괴롭히는 행동을 할 때도 있는 것 같았고, 특정 친구와 유독 트러블이 많이 발생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선생님은 전혀 여름이를 문제아인 듯 이야기하지 않으셨고, 단지 여름이가 그렇게 행동할 때 원에서 잘 교육할 테니 집에서도 함께 잘 가르쳐달라는 부탁의 말씀이었다.) 상담을 마치고 집에 돌아온 나는 생각이 많아졌다. 세상에 나쁜 아이는 없다. 여름이도 나쁜 아이라서 그렇게 행동한 게 아니다. 결국 어른들이 아이에게 잘 가르쳐주어야 할 일만 남은 것이다. 감사하게도, 올해 담임선생님이 그러한 (인간관계 속의) 규칙을 중요하게 생각하시고 잘 가르쳐주고자 애써주시는 분이시라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이제 나와 남편도 집에서 잘 가르쳐 주면 되는 것이다. 즉, 올바른 훈육을 해주면 되는 것이다. 결론은 심플하게 도출되었는데, 내 마음은 웬일인지 심플하지 못하다. 돌아보면 나는 ‘훈육’이라는 것 자체에 익숙하지 않은 육아를 했었던 것 같다. 가을이가 워낙 유순하고 무던한 아이라 가을이를 특별히 훈육할 일이 잘 없었다. 그래서 나는 아이를 어떻게 훈육해야 하는지 별로 고민해보지도 않았던 듯싶다. 여름이가 가을이를 밀고 때리는 일이 자주 있었지만, 가을이가 그것에 대해 크게 반응하지 않았고 여름이에게 반격하는 일도 없었다. 그렇기에 나도 내가 눈으로 본 일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혼을 냈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그저 멀리서 “여름아~ 누나 때리면 안 되지~!!”하며 큰소리로 이야기하는 것에 그칠 때도 많았다. 맞다. 그리고 막내라고 봐준 적도 많았다. 가을이가 워낙 동생에게 늘 양보도 잘하고, 뭐든 잘 받아주는 성품이라 나도 그런 가을이에게 기대서 여름이가 떼쓰고 심술부려도 대충 봐주고 넘어간 적도 많았다. 그렇게 내가 아이를 훈육하는 일에 정성을 다하지 않은 것이 지금의 결과를 낳은 것 같아 반성이 되었다. 그리고 여름이에게 미안했다. 내가 안일하게 넘어가 준 일들이 여름이에게 그렇게 행동해도 괜찮다는 메시지를 주었을 것이었다. 결국 여름이의 잘못이 아니라 나의 잘못으로 여름이가 친구들과 어울려 함께하는데 어려움이 발생하게 된 것이었다. 나도 반성을 했으니 앞으로는 그렇게 하지 않으면 되는 것이다. 이제는 제대로 가르쳐 주면 되는 것이다. 새삼 되새기게 되는 것이 있었다. 누구든 어느 분야에서든 ‘성장’을 하기 위해서는 ‘고통‘과 ’인내‘가 따르는 법이라는 사실이다. 2년 넘게 꾸준히 하고 있는 필라테스지만, 나는 아직도 수업을 받고 오면 어느 정도의 근육통을 앓는다. 필라테스를 처음 시작 할 때는 더 심했다. 며칠을 온몸이 너무 아파 어떤 때는 진통제를 먹기도 했다. 아이도 이제 또 다른 모양의 성장이 필요한 시기가 되었다. 선생님이, 엄마아빠가 하는 훈육이 아이는 아플 것이다. 하지만 올바른 훈육의 과정을 거치고 나면 아이는 (관계가, 정신이, 마음이) 더 건강한 아이가 될 것이다. 그리고 나도 성장이 필요할 테다. 더 건강한 부모가 되기 위해서 나도 훈육을 잘하도록 훈련되어야 할 것이다. 내가 부모님께 혼날 때는 몰랐지만, 사실 훈육은 당하는 사람보다 하는 사람이 더 힘든 일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훈육은 육아에 있어서 가장 힘든 테스크 중에 하나다. 아이에게 해도 되는 것, 하면 안 되는 것, 해야 하는 것을 어떻게 잘 (구분해서) 가르쳐줄 것인지 고민이 된다. 사실, 고민이랄 것이 없이 (대부분의 육아가 그렇듯) 바로 실전 돌입이긴 하다. 오늘 저녁에도 밥 먹기 전에 간식을 먹겠다고 때를 쓰는 여름이에게 저녁을 먹고 간식을 먹어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 주기 위해 한참을 씨름했고 그 과정에서 아이는 한참을 울었다. 저녁식사 후에 내가 자유시간을 갖기 위해 집을 나서는 순간에도 나에게 인사를 하러 나오면서 누나를 밀치는 여름이에게 그렇게 행동하면 안 된다는 것을 단호하게 이야기하고 누나에게 사과시키는 작업을 했다. 훈육이 필요한 순간은 생각보다 자주 도래한다. 그러니 나도 실전경험을 통해 계속해서 부딪히며 배워야 하는 것이다. 때로는 나도 실수할 테고 그 실수를 통해 더 나은 방법을 배울 테다. 중요한 것은 지치지 않고 그 순간들에 최선을 다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더불어 훈육의 과정 안에서도 아이를 더 많이 안아주고, 예뻐하고, 칭찬하는데도 애를 써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두 번째 육아인데도 새삼 참 부모가 되는 것은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또 느낀다. 그래도 나는 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완벽하지 않아도 배워 갈 것이다. 선생님과의 상담을 통해 이러한 고민들을 할 수 있었음에, 나름의 깨달음도 얻고 다짐도 얻을 수 있었음에 감사하다.


2024.05.04 (토)

시댁에 가서 점심식사를 하고 아이들과 ’ 북서울 꿈의 숲‘에 가서 저녁때까지 놀았다. 저녁 식사 후에는 북악스카이웨이 팔각정에 가서 서울야경을 본다음 차를 타고 집에 돌아오는 길이었다. 낮잠도 안 자고 하루종일 바깥놀이를 한 둘째는 피곤함에 투정을 부리기 시작했다. 잠깐 보여주던 영상도 꺼버리고 카시트에 태우니 막 울기 시작한 둘째. 문제는 운전을 하는 남편도 극도의 피곤함에 제정신이 아녔다는 데 있었다. 결국 남편은 계속 우는 둘째를 향해 버럭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아이는 더 크게 통곡할 뿐이었다. 내가 뒷좌석에 팔을 뻗어 아이를 쓰다듬어주며 달래주었고, 아이는 겨우 울음을 그치기는 했지만 계속 징징거리는 목소리로 중얼중얼거렸다. 한참을 계속 그렇게 가다가, 듣다 듣다 또 짜증이 치민 남편은 신호가 걸려 멈춰 있는 틈을 타 뒤를 돌아보고 또 아이에게 버럭 화를 냈고, 여름이는 다시 또 울음을 터트렸다. 하… 애나 남편이나 졸리다고 짜증 내는 건 똑같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둘 다 졸려서 제정신이 아니라 그렇다… 이해하자… 이해하자… 중간에서 나라도 참자… 나까지 화내면 이건 전쟁이다 싶어 참았다. 나는 아이를 겨우겨우 달래주었고, 아이는 작은 목소리로 아빠를 부르기 시작했다. “아빠… 아빠…”  아직도 화가 풀리지 않았는지 남편은 대답을 하지 않았다. “아빠… 아빠…” 결국 보다 못한 내가 한마디 했다. “아빠~ 여름이가 불러요~ 대답해 주세요~“ 했더니, 겨우 대답을 한 남편. 아빠의 대답을 듣자 여름이는 갑자기 엉뚱한 얘기를 꺼냈다. 지난번에 아빠랑 철도박물관에 가서 기차를 보았던 이야기를 꺼내는  여름이. ”아빠~ 우리 아까(지난번에) 기차 보러 갔었지? “ 아빠가 화를 내자 화해의 손길을 내밀며 아빠와의 좋았던 추억을 이야기하는 아이. 우리 그때 좋았지 않냐며 대화의 물꼬를 트는 아이를 보고 있자니, 아이가 어른보다 낫다는 생각이 든다. 기차본거 좋았다고 다음에는 엄마도 같이 가자는 여름이. (지난번에는 아빠랑 누나랑만 갔었다.) 나는 꼭 그러자고 대답했다. 아이를 키우면서 늘 느끼는 것이지만, 사랑은 내리사랑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부모가 아이를 더 사랑하는 것 같지만, 사실 아닐 때가 많다. 나는 아이가 부모를 더 사랑해 줄 때가 많다고 느낀다. 부모가 어떠한 모습이던지, 부모가 나에게 화를 낸다 하더라도 아이는 부모를 금방 용서하고 사랑한다. 이보다 조건 없는 사랑이 있을까. 오늘은 남편이라는 간장종지가 여름이라는 대접에 담기는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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