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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넛바나나 May 01. 2024

 오늘, 식탁의 맛(1)

콩자반을 먹어야 하는 날


그날은 상담이 좀처럼 잘 안되어 기가 죽었다. 곤란하고 괴로움이 느껴지는 날이었다.

‘그래, 아직 내가 부족한 탓이지. 공부가 더 필요한 상담자야 나는.’


에너지가 소진된 몸을 이끌고 집에 도착하자마자 냉장고를 열었다. 반찬 중 유독 콩자반을 향해 내 눈길이 쏠렸다. 콩자반을 꺼냈다. 어느 순간 나는 콩자반을 한 개씩 먹고 있었다.

‘어? 왜 내가 이것을 하나씩 먹고 있지?’

콩자반을 집중해서 하나씩 먹고 있는 나에게 온 신경이 집중하다 보니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아…! 나는 쉽게 성공할 수 있는 무언가를 찾고 있었구나!’

동그란 모양을 가진 조그마한 크기의 콩자반은 작은 집중력으로 성취감을 크게 느끼기에 충분했다. 콩자반을 입에 하나씩 넣을 때마다 기분이 좋아졌다. 마치 입속이라는 축구 골대에 골을 하나씩 넣는 기분이랄까. 내 안에서는 수십번의 골 세레머니를 하고 있었다. 식탁 위에서 나는 영웅이 되었다. 그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내가 나를 영웅으로 여기고 있었다.

이토록 일이 잘 안 풀릴 때마다, 실패했다는 기분이 들 때마다, 성취감을 식탁에서 찾게 된 건 언제부터였을까.


밥 식(食), 높을 탁(卓). 식탁은 함께 둘러앉아 음식을 먹는 장이기도 했지만, 나에게는 훈련의 장이기도 했다. 어릴 적 식탁 교육은 아빠의 엄격한 규칙 속에서 이루어졌다. 아빠는 우리가 젓가락을 제대로 익힐 때까지 훈련을 시키셨다. 식사를 함께할 때면 아빠는 나지막히 말씀하곤 하셨다.


 “너 그렇게 젓가락질할 거면 밥 먹지 마.”

올바른 젓가락질이라고 하는 V자 젓가락질은 어린 나에게는 굉장한 집중력과 노력이 필요했다. 힘을 줘야 하는 손가락 근육 부위와 움직여야 하는 각도가 미세하게 맞아떨어져야 젓가락질에 성공할 수 있었다.


‘무슨 밥을 이렇게 힘들어하면서까지 먹어야 하나….’

아빠의 엄격한 규율이 혹독하게만 느껴졌다. 그러나 젓가락질을 올바르게 잡는 훈련을 하면서 인내력을 경험했다. 그리고 내가 원하는 목표물을 정확하게 집고 입속으로 넣는 순간들을 통해서 소소한 성공들을 경험했다. 어느새 나는 편안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을 수 있게 되었다. 그동안 불편하기만 했던 식탁이 편안해졌다.

 

식탁은 나에게 성취감과 안정감을 가져다주는 곳이 되었다. 아빠는 편함이 아니라 불편함을 선택하고 극복해 냈을 때 더 큰 유익이 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으셨던 것일까. 아빠의 엄격한 젓가락질 훈련은 성인이 되어보니 실패감을 극복할 수 있는 ‘자가 치료제’가 되었다.  

   

나에게 식탁(食卓)은 식탁(蝕擢)이 되었다.

좀먹을 식(蝕), 뽑을 탁(擢). 처한 일이나 상황이 ‘좀’에게 물리는 것처럼 곤란하고 괴로울지라도 뽑아 제거해 버릴 수 있는 곳.      


오늘 식탁의 맛은 소소한 성공 경험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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