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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육일칠 May 12. 2024

미니 퍼레이드-롯데월드는 화요일에 가세요

놀이공원의 삐까뻔쩍한 퍼레이드도 매일 보면 지겨워지기 마련이다. 롯데월드의 안전청결 캐스트로 일하면 하루에 두 번씩 퍼레이드를 본다. 안전청결 캐스트는 손님이 퍼레이드 도중에 난입할까 봐 신경이 곤두서 있다 보니, 반복되는 퍼레이드의 지겨움을 타파하기 위한 연기자 분들의 노력을 신경 쓰지 못한다. 자연스레 손님 통제를 할 때 수백 번째 반복하는 말 '퍼레이드 오후 2시에 시작합니다', n번째 듣는 노래 '롯~데~월~~~~드'  지겨움을 느낀다.

  

이러한 반복 속에서도 질리지 않는 것이 있다. 퍼레이드마다 새로운 손님들이 오면서 다른 반응을 일으키는 것다. 안전청결 캐스트나 연기자 분들은 똑같은 일상이지만, 퍼레이드를 처음 보는 손님에겐 퍼레이드 자체가 일상에서 벗어난 느낌, 즉 비(非) 일상적인 기분을 느낀다. 비일상적인 순간에 신난 손님은 다른 손님과는 다른 본인만의 유일한 반응을 한다. 손님의 새로운 반응에 신난 퍼레이드 연기자 분은 멋있는 제스처를 한 번 더 보여주는 등 새로운 모습을 보여 준다. 이러한 모습 덕에 안전청결 캐스트와 퍼레이드 연기자분들은 반복되는 일상에서 비일상적인 기분을 느낀다.


화요일만 되면 퍼레이드 통제를 하고 싶었다. 화요일에만 열리는 미니 퍼레이드에서는 일반 퍼레이드의 연기자 수를 절반으로 줄여서, 한국인 연기자만 연기를 펼다. 연기자 수가 줄면 생동감이 줄어들 텐데 왜 화요일 퍼레이드를 나가고 싶었냐고? 오히려 반대다. 연기자가 줄어들지만, 기자 분들이 퍼레이드에 진심으로 참여하는 모습이 똑같은 구성의 퍼레이드 보고 싶게 만든다. 아니, 사실 똑같지 않다. 일반 퍼레이드와 달리 미니 퍼레이드는 손님을 통제하는 줄을 치지 않는다. 줄이 없다는 건 어떤 현상을 일으킬까? (유튜브에 나와 있는 영상에선 2부 공연 때 줄이 쳐져있기도 하지만, 필자가 근무할 때 미니 퍼레이드를 통제할 때는 줄이 없는 경우가 더 많았다)


줄을 치지 않으면 손님과 연기자의 경계가 사라진다. 경계가 사라지면 안전청결 캐스트는 난입하는 손님을 억제하는 장치가 없기에 본인이 억제하는 장치가 되어야 한다. 일반 퍼레이드보다 미니 퍼레이드 때 손님을 면밀히 주시해야 한다. 캐스트가 손님을 면밀히 주시해 준다면, 연기자 분들은 손님과 연기자의 경계가 없는 상황에서도 위험한 일이 일어나지 않으리라고 안심하기에, 일반 퍼레이드보다 손님과 자유롭게 소통할 수 있게 된다. 손님을 통제하는 줄은 어른의 가슴 높이 정도의 한 줄 정도로 쳐져 있지만, 손님은 '연기자와 나 사이에 가로막는 것이 없다'라는 생각이 들면 심적으로 더욱 연기자와 가까워졌 느낀다.


미니 퍼레이드 때 통제하는 줄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일반 퍼레이드에 비해 손님도 적고 연기자도 적어서 줄이 필요 없는 것이 아닌가 생각할 수 있으나, 퍼레이드 행렬의 가장 뒷 줄에서만큼은 안전청결 캐스트 두 명이 각각 길의 끝과 끝에 서서 통제 줄의 양 끝을 잡고 행렬을 따라간다. "여기가 퍼레이드 행렬의 끝 지점이다" 임을 알리는 동시에, 행렬을 따라오는 손님이 갑자기 난입하는 경우를 방지하기 위해서다.  

미니 퍼레이드 1부 공연이 끝난 후의 모습. 퍼레이드 행렬의 마지막을 안전청결 캐스트가 사진 왼쪽에서 줄을 잡고 따라가고 있다.

줄을 잡고 따라가며 손님을 통제하는 건 은근히 고통스러운 일이다. 미니 퍼레이드가 일반 퍼레이드에 비해 생동감이 넘치다 보니, 속에서 내적 흥은 잔뜩 올라오는데 외적으로는 통제를 하고 있어야 하니까. 춤도 추고 싶고 노래도 부르고 싶은데, 통제 요원이 그래서는 안 되지 않는가. 이 퍼레이드 연기자 분들이 캐스트가 내적 흥이 올라왔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캐스트를 유혹하는 순간이 있다. 줄을 잡고 가만히 서 있으면, 연기자가 춤을 추고 있다가 갑자기 캐스트 쪽으로 다가와서는 줄로 림보를 하기 시작한다. 또는 줄에 잠시 기댔다가 탄성을 이용해서 앞으로 튕겨 나간다. 통제 줄은 '안전청결 캐스트는 손님을 통제하는 역할'임을 손님에게 알리는 소품이다. 이 줄로 퍼레이드 연기자가 림보를 하거나 새총 고무줄놀이를 하는 순간, 줄은 퍼레이드 공연의 소품이 된다. 안전청결 캐스트는 이러한 퍼레이드 연기자의 욕심(?)에도 굴하지 않고 손님을 통제하는 역할로 줄을 사용해야 한다. 미니 퍼레이드는 이렇게 연기자가 손님을 통제하는 상황 일시적으로 부드럽게 만들어 주곤 한다. 손님은 딱딱한 표정을 하고 있던 안전청결 캐스트가 퍼레이드 연기자의 장난 덕에 활짝 웃는 모습을 보고 신기해하며 웃음을 짓는다.


"야 봐봐 통제하는 사람한테 장난도 친다 ㅋㅋㅋㅋ 신기하네"


미니 퍼레이드를 통제하는 역할에서 특히 줄잡기를 좋아했던 이유가 있다. 줄잡기를 하면 퍼레이드 연기자 분들이 레이드 행진 전에 스탠바이하는 모습을 직접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손님이 안 보이는 곳에서 퍼레이드 연기자들이 준비를 하기에 안전청결 캐스트도 손님이 안 보이는 곳에서 통제하는 줄을 가지고 대기하고 있는다. 행진이 시작되면 행렬 끝에 따라붙어서 뒤로 따라붙는 손님을 통제한다. 


미니 퍼레이드 때는 통제 인원이 많이 필요하지 않다. 캐스트 단체 카톡 방에서 #사다리게임을 돌려서 10명 중 4명은 퍼레이드 손님을 통제하러 나가고 나머지 6명은 파크를 전체적으로 청소하곤 했는데, 내가 파크 청소가 걸리면 퍼레이드 손님 통제하는 캐스트에게 부탁해서 역할을 바꾸곤 했다. 심지어 퍼레이드 통제 인원 4명 중 2명은 줄잡기 역할, 2명은 정지 공연이 이루어지는 곳에 상주하는 역할이다. 후자의 역할이 리면 동료 캐스트에게 말한다.


"줄잡기 역할 걸리셨는데 혹시 바꿀 생각 ... 있으실까요?"

"네 뭐 바꿉시다!(... 아싸. 줄잡기가 훨씬 귀찮은데 잘 됐네 )"


신기한 것은, 퍼레이드 시작 전임에도 불구하고 퍼레이드 연기자들은 마치 퍼레이드를 하고 있는 것처럼 연기한다는 것이다. 미니 퍼레이드 줄잡기 역할을 좋아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이다. 아무리 퍼레이드에 진심으로 연기하더라도, 손님에게 보이지 않을 때는 연기자가 아닌 일반인처럼 행동할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연기자 분들은 퍼레이드의 처음부터 끝뿐만 아니라, 처음을 준비하는 순간마저 퍼레이드 공연의 콘셉트를 지키고자 노력한다. 롯데월드의 테마성을 지키기 위한 노력일 것이다. 퍼레이드 공연에 나오는 인형탈을 쓴 연기자 덕분일지도 모르겠다. 인형탈을 쓴 순간 그 사람은 인형탈을 쓴 연기자가 아니라, 인형이 나타내는 캐릭터가 된다. 정확히는 그런 캐릭터가 되어야만 한다. 여긴 롯데월드라는 '테마'파크, 즉 스토리가 있는 파크이니까. 그런 캐릭터가 있으면 인간의 모습을 한 연기자들도 본인이 롯데월드에서 연기하는 역할에 신경 쓰게 되지 않을까.


퍼레이드가 시작하지 않았는데도 연기자 분들이 그들의 역할에 심취해 있는 모습이 부러웠고, 시급을 받고 일할 뿐이라는 마인드를 가진 안전청결 캐스트인 나와 대척점에 있어 보였다. 안전청결 캐스트의 손님을 통제하는 업무 특성상 손님에게 즐거움을 주는 경우도 드물고, 단순 안내("거기 올라가시면 안 돼요~ 나오시면 안 돼요~ 등등 간단한 통제)를 하며 본인이 무대 위의 연기자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퍼레이드 연기자는 롯데월드의 테마성을 손님에게 직접 전달할 수 있기에, 손님 통제와 같은 다소 딱딱한 업무를 하는 안전청결 캐스트에 비해 본인이 롯데월드라는 테마파크에서 일하고 있음을 자주 인식한다. 미니 퍼레이드의 연기자 분들이 퍼레이드를 즐기는 모습 매일 퍼레이드를 보는 안전청결 캐스트에게도 즐거움을 주었다. 덕분에 질리지 않게 안전청결 캐스트 근무를 했다.  


매일 퍼레이드를 보는 롯데월드 캐스트도 새로움을 느낄 정도의 퍼레이드를 관람하고 싶다면, 화요일에 롯데월드 어드벤처 부산에 방문하는 건 어떨까? 연기자 분이 매일 바뀌어서 생동감이 폭발하는 퍼레이드가 아닐 수는 있으나, 통제하는 줄이 없는 퍼레이드를 보며 연기자와 자유롭게 소통해 보는 경험은 소중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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