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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육일칠 May 19. 2024

롯데월드 캐스트가 불꽃놀이 때 폭죽 소리만 듣는 이유

롯데월드에서 불꽃이 눈앞에서 펑펑 터져도 눈 하나 까딱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 손님의 안전을 신경 써야 하는 캐스트다. 불꽃놀이에 현혹되어 멍 때리다 보면 손님이 위험해지는 상황을 놓칠 수 있다.


롯데월드에서 퍼레이드와 동시에 불꽃놀이를 처음 개시했을 땐 참 불꽃놀이의 유혹을 뿌리치기 힘들었다. 불꽃놀이는 보통 퍼레이드 행렬을 멈추고 난 다음에 진행하고, 손님 분들도 불꽃놀이를 넋 놓고 보느라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는다. 사실 캐스트도 불꽃놀이를 넋 놓고 봐도 큰 문제는 없을 테지만, 불꽃놀이를 보느라 주변을 신경 쓰지 못한 손님이 다칠 수도 있으니 계속 주시는 해야 한다. 그걸 알고 있었고, 바이저님께 지시도 받았지만,


'바이저님도 불꽃놀이 보실 것 같은데...?'


싶어, 불꽃놀이를 첫 개시한 날에만 고개를 들고 넋 놓고 보곤 했었다.


불꽃놀이를 여러 번 겪으며 손님 통제하느라 진을 빼다 보면 이젠 펑펑 터지든 말든 얼른 퇴근하고 싶고, 불꽃놀이가 없는 퍼레이드에서 손님을 통제하듯이 무표정으로 두리번거리며 손님을 살핀다. '불꽃이 터져도 손님의 안전이 중요해!'라는 생각도 있었지만 '불꽃놀이 손님 통제 지친다... 손님 보고 있자'라는 생각도 있다. 불꽃놀이가 끝난 다음 날 아침에 출근해서 폭죽 잔해를 치운 적도 있다. 안전청결 캐스트에게 롯데월드 불꽃놀이는 낭만적인 이벤트가 아닌, 평소보다 신경 쓸 것이 훨씬 많아지는 현실이다.


불꽃놀이에 질릴 때쯤, 불꽃놀이를 목도하고 놀라워하는 손님들의 표정을 지켜보게 된다. 불꽃놀이를 보러 가면 사람들과 같이 불꽃놀이를 보느라 바쁘지, 불꽃놀이를 보는 사람들이 어떤 표정을 하고 있는지는 볼 일이 없다. 불꽃놀이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놀라워하다니, 무표정으로 이를 지켜보는 내가 이상한가 싶을 정도다. 롯데월드를 일터로 바라보는 캐스트와, 모험과 환상의 나라로 바라보는 손님(특히 어린이 손님)의 관점이 다름을 실감하는 순간이다.

불꽃놀이를 바라보는 손님들의 모습. 안전청결 캐스트는 불꽃놀이가 아닌 손님 쪽을 바라봐야 한다.

퍼레이드 공연과 불꽃놀이를 동시에 하다 보니 손님들의 시선은 퍼레이드가 아닌 불꽃놀이에 향해 있다. 평소엔 퍼레이드 공연만 하니 퍼레이드 연기자와 손님이 소통했는데, 불꽃놀이 때는 불꽃 잔해가 튈 위험이 있어서 퍼레이드 연기자와 손님이 소통하지 못할 정도의 거리로 안전차단봉을 설치한다. 퍼레이드 공연이 아닌 불꽃놀이가 주요 볼거리가 된 것. 사실상 퍼레이드 공연을 불꽃놀이와 같이 하는 이유는 손님의 이목을 끌기 위한 것이 아니라, 영상에 예쁘게 담기 위해서가 아닐까. 퍼레이드 때 손님과 소통하려 노력하는 연기자일수록 불꽃놀이 때 공연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불꽃놀이가 모두 끝나고 손님들이 퇴장하기 시작한다. 평소와는 달리 파크 마감 시간인 21시가 넘어서도 곳곳에서 손님들이 유모차를 끌고 나온다. 불꽃놀이 때는 손님을 자주 응대하고 돌발 상황에도 자주 대처해야 하기에 퇴근할 때 녹초가 되지만, 많은 사람들을 한정된 공간에 수용하는 방법을 몸소 배우는 재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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