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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육일칠 May 05. 2024

롯데월드에서 부부가 잃어버린 약혼반지를 찾아라

롯데월드 안전청결 캐스트로 일하며, 손님에게 실체가 없는 것이든 있는 것이든 날로 얻어먹은 적이 많다. 실체가 없는 것은 손님의 프레첼을 엎어 놓고는 받아먹은 칭찬 VOG였고, 실체가 있는 것은 손님의 잃어버린 약혼반지를 찾는 시늉만 해 놓고는 얻어먹은 커피 기프티콘이다.


안전청결 캐스트답게 쓰레기를 한창 줍고 있던 날.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 부부가 달려와서 말했다.


"저희 반지 좀 찾아 주세요 제발요"


당혹스러워하는 부부의 표정. 약혼반지를 잃어버렸나 보다. 결혼을 해 본 적이 없어 약혼반지를 잃어버릴 때의 감정은 잘 모른다. 두 부부의 떨리는 목소리, 서로 손을 꽉 잡고 있음에도 떨리는 팔, 성숙해 보이는 성인이 울상이 되어 도움을 요청하는 모습을 보면, 약혼반지가 단순한 몇십만 원짜리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음을 알게 된다. 그런 반지를 잃어버렸으니, 당연히 이성을 잃을 수밖에.

 

"많이 당황스러우실 거예요. 충분히 이해합니다. 우선 저희 직원용 무전기로 반지를 찾아보라고 상황 전파할 테니, 돌아다니면서 계속 찾아 주세요. 혹시 어디서 잃어버리셨는지 알 수 있을까요?"


"네네.... 스완 레이크(백조 모양의 탈 것이 공중에서 빙빙 도는 어트랙션) 타고 나오는데 반지가 없어졌어요"


"아 그리고 전화번호 좀 알 수 있을까요? 반지 찾는 즉시 연락 드리겠습니다"


흥분한 손님을 진정시키는 차분한 캐스트인척 했지만, 이성을 잃은 손님의 모습에 차분함을 유지하지 못했다. 약혼반지를 찾는 상황이 생길 줄이야. 단 하나밖에 없는 약혼반지를. 무전으로 상황을 침착하게 보고해야 하는데, 부부의 절박한 표정에 감정이 동요되었는지 입이 떨어지질 않았다.


심지어 롯데월드 직원이 다 들리게끔 무전 보고를 하는 건 처음이었다. 전체 무전이 처음이라서 말을 더듬더라도 상황을 먼저 알려야 했다. 손님의 반지를 찾아야 한다는 사명감도 있었지만, 말을 더듬는 목소리가 롯데월드 전체에 퍼지는 상황이 신경 쓰였다. 약혼반지를 찾아보다가 중간에 서서 휴대폰에 멘트를 적고 연습을 하고 있었다. 근데 그럴 때가 아니지 않은가! 손님이 아마 내 모습을 봤을 텐데, 빨리 안 찾고 뭐 하냐고 재촉할 수도 없으니 속이 타들어갔으리라. 휴대폰에 무전 멘트를 다 정리하고 연습까지 한 다음 그제야 무전을 했다.


"파크 전체 근무자에게 알립니다. 손님이 약혼반지를 애타게 찾고 있습니다. 근무지 주변에 반지 감지하신 근무자께서는 무전번호 25로 무전 주시기 바랍니다"


"네 혹시 어디서 잃어버리셨는지 알 수 있을까요?"


아차, 어디서 잃어버렸는지가 가장 중요한데 그걸 말하지 않다니. 다시 무전을 하려던 도중 들리는 기쁜 소식.


"저희 반지 찾았어요!!"


"반지 찾으셨다고 합니다. 상황 종료입니다. 다행입니다"


'다행입니다'라는 말을 왜 무전기에 했는지 모르겠다. 반지를 잃어버린 손님 못지않게 당황했나 보다. 손님이 반지를 찾게 된 상황에 진심으로 안도하는 사적인 감정이, 공적인 보고 체계에도 전달되는 순간이었다.


답례로 커피 기프티콘을 받았다. 찾아 드리지도 못했는데 말이다. 사실 반지를 찾으면 연락드리겠다는 명목으로 받은 전화번호로 문자를 남겼다.

반지 찾으셔서 정말 다행이고 롯데월드에서 남은 시간 재미있게 보내시길 바랍니다 :)
캐스트님 덕에 반지 찾을 수 있었고, 결혼 생활이 순탄하게 흘러가리라 기대합니다. 커피 한 잔 드시고 힘내세요!

굳이 받을 필요 없는 문자를 받고 부담을 느끼셔서 억지로 주신 기프티콘일까? 아니면 정말 내게 감사함을 느끼셨기에 진심으로 힘을 주기 위한 기프티콘일까?


프레첼을 엎었던 사건도, 약혼반지 분실 사건도, 사건 해결 여부와는 관계없이 손님이 좋은 서비스를 받았다고 느꼈기에 캐스트에게 보상했다. 프레첼 사건 때 칭찬 VOG를 받은 것도, 약혼반지 분실 사건 때 커피 기프티콘을 받은 것 보상이 마땅한 일이 아니었다. 캐스트의 인간적인 면모를 좋게 봐주시고 보상해 주시는 손님의 태도는 감사함을 표해 마땅한 일이다.  두 사건에서는 손님을 '손님에게 친절해야만 하는 캐스트'의 태도로 대했다기보다는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는 사람'의 태도로 대했다. 


 롯데월드 안전청결 캐스트로 일하며, 손님에게 실체가 없는 것이든 있는 것이든 날로 얻어먹은 적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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