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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육일칠 Apr 17. 2024

수상한 액체를 유통하는 롯데월드 캐스트가 있다?

당신은 영화 속 등장인물로 출연해 달라는 제안을 받았다. 무료한 일상에 한 줄기 빛 같은 소식. 도파민이 뿜뿜 샘솟는다. 대사가 필요한 역할도 아니고, 출연 시간도 1~2초 내외라서 부담스럽지 않다. "오 재미있겠는데?" 하고 덥석 제안을 받아도, 크게 어려운 일이 아니라서 선택을 책임질 수 있다.

  

롯데월드 안전청결 캐스트 M은 여러 부서의 캐스트에게 위와 같은 제안을 했다. 롯데월드에 수상한 액체를 유통하는 과정을 담은 단편 영화 <중독>. M은 영화를 만들기 위해서 캐스트의 도움이 필요했다.


필자 또한 <중독>에 출연했다. 다른 캐스트와 마찬가지로 대사도 없고 딱 1초간 출연했다. 영화 출연 사실을 혼자만 알아차릴 정도의 짧은 시간의 출연. 민망한 수준의 연기를 보여줄 기회도 없었고, 얼굴을 비치지도 않았다. 유명 영화의 단독 주연처럼 멋있는 모습으로 명대사를 하는... 그런 모습과는 정반대의 일을 했다. 영화 출연을 통해 시청자에게 영향을 주었다면, '나'라는 배우보다는 '수상한 액체를 넌지시 건네는 출연자 1' 통해 이루어졌을 것이다.

출연자 1, 슬그머니 머드카를 끌고 와서... 수상한 액체를 츄러스 가게 문 앞에 놓은 뒤, 똑똑, 문을 두드리고는 다시 슬그머니 사라진다.

실제로 영화 출연으로 가장 큰 영향을 받은 대상은 나 자신이었다. 영화 제작 과정에 직접 참여해 보는 과정이 재미있었다. 단 한 장면에 출연하는 시간, 단 6초. 첫 출연에 내 심장은 180 BPM. 마스크를 쓰고 태연하게 액체를 건네는 영화 속 모습, 전혀 태연하지 않고 요동치는 심장 박동수와 대비된다.


영화에 처음 가담한 출연자가 처음으로 영화에 흥미를 느끼게 되는 순간을 함께한다는 것이 흥미로웠다. 영화를 처음 찍는 사람들이 영화를 만드는 현장은 오합지졸이긴 하지만 말이다. M 캐스트와 함께 영화 제작 겸 메인 출연자인 K캐스트는 촬영 도중 이렇게 말했다.


"매우 즐거운데?"


K 캐스트는 과묵한 편이다. 본인의 감정 잘 드러내지 않는다. 그런 그가 즐거운 감정을 말을 통해 즉흥적으로 드러내다니. M 캐스트가 롯데월드에서 영화를 만드는 일은 방황하는 20대 캐스트에게 "흥미 이정표"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음을 느꼈다. '넌 이런 분야에 흥미를 느끼고 있으니 한 번 가 보는 게 어떠니?' 하고 알려주는 흥미 이정표.


M 캐스트가 만든 흥미 이정표는 영화 출연자인 내게도 방향을 제시해 줬다. 나는 M 캐스트가 롯데월드 안전청결 부서라는 환경을 활용하여 본인이 하고 싶은 영화 촬영을 이루어 낸 사실에 큰 흥미를 느꼈다. M 캐스트가 앞으로도 영화에 대한 흥미를 잃지 않고 행보를 이어나가길 바랐다. 어떻게 하면 M 캐스트가 영화에 대한 흥미를 이어나갈 수 있을지 고민하다가, 결론을 내렸다.


"편영화 <중독> 보고 궁금한 내용으로 질문을 구성해 M 캐스트를 인터뷰해 보자!" 


인터뷰의 목적은 아래 두 가지와 같다. 


목적 1. 단편 영화 <중독>에 애정을 가지는 관객이 있음을 알려, M 캐스트가 영화 제작을 계속해 나갈 동기를 부여

목적 2. 인터뷰를 직접 구성하고 진행해 보며, 인터뷰에 본인이 흥미가 있는지 확인


목적 1은 성공은 했으나, 부여한 동기가 지속될지는 의문스러웠다. 영화 소품으로 수상한 액체를 담는 '로티 물병'이 있는데, 로티 물병은 필자도 일상에서 자주 쓰고 있다. 영화 소품을 아무렇지 않게 쓸 때마다 일상에서도 수상한 액체를 유통하는 느낌이 들어 섬찟했다. 이를 인터뷰에서 들은 M 캐스트는 이렇게 말했다.

 

"이런 분이 계시기에 감독이 행복한 겁니다. 제가 만든 작품에 쓰인 소재가, 관객의 삶에도 어느 정도 스며들어 영향을 준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감독으로서는 행복하죠. 인터뷰어님처럼 제 영화에 관심을 가져주시는 분을 앞으로 계속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영화를 포기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드네요."


다만 M 캐스트에게 들은 영화 제작의 현실은 만만치 않았다. 큰 비용을 들여 만든 영화가 흥행에 실패하면 고스란히 빚이 생겨 생계를 위협한다. 이런 현실에서 M 캐스트가 영화 제작을 이어 나가려면, 그의 제작 활동을 응원해 주는 팬의 애정이 중요하다. 현실적인 문제는 더욱 중요하다. 영화 제작에 있어선 특히 그럴 것이다.


목적 2는 성공했다. 인터뷰가 끝나고 나니 손이 덜덜 떨리고 가슴이 쿵쿵 뛰었다. 하고 싶은 일을 내 손으로 직접 기획해서 실행했다는 뿌듯함이 온몸에 퍼졌다. 인터뷰는 명확한 목적을 실현함으로써, 인터뷰를 받는 사람의 반응을 즉각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공들여 구성한 질문을 받은 M 캐스트가 눈을 반짝이며 기쁜 마음으로 답하는 순간. 살면서 이 순간을 경험할 일이 얼마나 있을까. 해 보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을 현실화하니 인터뷰를 좋아하는지 아닌지 확인할 수 있었고, 인터뷰를 좋아한다는 확신이 드는 순간, 살면서 인터뷰가 아니더라도 사람에게 즉각적으로 기쁨을 주는 일을 계속해서 하고 싶어졌다.  


다음엔 어떤 일이 나를 흥미롭게 할까? 그 흥미를 현실화하고는 또 가슴이 뛸까, 아니면 흥미가 죽어버릴까?  다음 흥미 이정표에 적힌 말은 '그럼 인터뷰 관련 직업을 가져 보는 건 어때?' 정도일까. 무엇이 적혀 있든, 관련 체험 정도는 해 볼 예정이다.


M 캐스트의 인터뷰 내용이 궁금하시다면? 아래 링크 클릭!

M 캐스트는 어쩌다 영화감독이 되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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