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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육일칠 May 12. 2024

버스 터미널 중앙에서 극락을 외치다

창원시외버스터미널 안마 의자는 정말이지 미쳤다. 그 녀석에게 10분간 안마를 받고 나면 몸에 쌓인 피로는 속수무책으로 녹아버린다.


터미널에 도착했는데 시외버스를 타기까지 20분이나 남았다. 어디 카페를 가기엔 왔다 갔다 하면 끝날 시간이다. 아 뭘 하며 기다려야 하나... 고민하던 중 뜬금없이 터미널 안에 있는 안마 의자를 발견했다.

10분에 단 돈 천 원.

터미널 내부 덩그러니 놓여 있는 안마 의자. 장거리 이동에 지친 여행객의 피로를 풀어 버리겠다는 터미널 측의 비장한 각오가 느껴진다.

 ... 안마 한 번 받아 볼까.


안마의자가 총 두 개가 있었는데, 의자 하나는 이미 사람을 극락을 보내고 있었다. 어찌나 좋아 보이는지 의자가 사람을 빨아들이듯이 잡아먹는 느낌이었다. 사람이 많이 지나다니는 터미널 안 정중앙에서도 부끄러움 없이 극락을 가게 된다니. 도대체 얼마나 좋길래 저러나?


지갑을 확인했다. 이런. 천 원짜리 지폐가 있다. 심지어 두 장이나. 그래 운명이구나, 싶어 짐을 옆에 내려놓고 의자에 주저앉았다.


은근히 안마하는 소리가 컸다. 강도 높게 안마를 하니 시원해하는 표정을 숨기기가 어려웠는데, 생판 모르는 분들이 내 얼굴을 극락을 가는 표정으로 알게 되는 게 부끄러웠다. 그런데 내가 안마를 즐기는 것과 내 표정에 부끄러움을 느끼는 것 중 무엇이 중요할까. 당연히 전자다! 돈까지 냈는데 부끄러워할 시간이 어디 있는가. 어차피 한 번 보고 말 사람들에게 부끄러움을 느끼면 뭐 어떤가. 그냥 그렇게 생각하시게 내버려 두어라. 지나가시는 분들도 "시원하신가 보네 ㅋㅋㅋ" 생각하시고 내버려 둘 것이니까. 시원해하는 표정을 보고 '나도 한 번 받아볼까?'생각하시면 더욱 좋고.


안마를 받고 나니 몸이 아주 개운해졌다. 주변 사람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극락을 가는 표정을 보여줄 수 있는 용기가 있는 사람에게만 허락된 개운함이 아닐까. 겨울철 주전부리 때문에 현금을 들고 다녀야 한다는 말이 있는데, 이제는 안마 의자를 이용하기 위해서라도 사시사철 천 원짜리를 가지고 다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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