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킷 12 댓글 1 공유 작가의 글을 SNS에 공유해보세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임신이 이렇다고 말한 적 없었잖아요?

ep.03 먹덧의 시작 

by 그러닝 Mar 04. 2025



시작은 거창했다. 임신이 되었다는 사실만으로 엄청난 감정의 소용돌이가 몰아 쳤기에, 그 당시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온 우주의 주인공은 바로 '나야 나' 나였다. 출퇴근을 하는 길에도 괜시리 배에 손이 가고, 일을 하다가도 내가 임신을 했다는 사실이 여전히 믿기지 않아 배를 한번 쓰윽 쳐다보곤 했다. 엄마가 될 준비가 되지 않음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으나, 하루 이틀이 지나면 지날 수록 나는 뱃속 아이에게 관심을 가져가기 시작했다. 아직 모성애라는 단어는 너무나 멀게 느껴졌지만, 적어도 내 몸이 아이를 받아들일 준비를 해야 한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히 인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정석다운 임산부의 감정 변화는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예상치 못한 복병, 그 무시무시하다는 입덧이 찾아왔기 때문이다. 



입덧도 아니고 먹덧이라니.. 그건 도대체 뭔데?




나에게 찾아온 증상은 정확히 말하자면 먹덧에 더 가까웠다. 먹지 않으면 속이 메스껍고 곧 토를 할 것만 같은 기분이 드는 증상이었던 거다. 임신을 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나에게 먹덧은 마음껏 먹을 수 있는 권한이 주어진 임산부의 특혜 증상 같은 것인 줄로만 알았다. 그게 먹덧인 줄 알았지, 이렇게 먹지 않으면 곧 화장실로 뛰쳐 가야만 할 것 같은 억울한 증상일 줄은 상상도 못했다. 


임신 5주차 정도에 시작되었던 먹덧은 내 고통스럽던 임신 생활의 본격적인 스타트를 끊었고, 13주가 되기까지 짧지도 길지도 않았던 그 시간 동안 나는 꽤나 큰 쓰라림을 맛봐야 했다. 자고 일어나면 울렁거리는 기분으로 하루를 시작해야 했고, 남편이 사다주는 비스켓으로 입맛을 연명하며 먹덧의 증상을 완화시키려 고군분투를 해야 했다. 평소에는 먹지도 않은 비스켓을 주워다 먹으며 언제쯤 곧 토를 할 것만 같은 이 증상이 멈출까 했고, 뭘 먹어도 곧 다시 차오르는 메스꺼움으로 사는게 다 짜증이 나더라. 그렇다. 난 아직 애를 낳기도 전이었는데, 그냥 사는게 다 피곤했다. 먹덧이 이리 나를 힘들게 할 줄 알았더라면 임신 전에 마음의 준비라도 했었을 텐데, 무지했던 나는 그 어떠한 증상에 대해서도 알지를 못했고 들이닥친 증상들을 겪고 경험하며 고통을 직접 맛보는 수 밖에 없었다. 아주 잠깐 한 아이의 엄마가 된다는 사실이 신비롭게까지 느껴졌던 임신 초기였으나, 곧이어 매일 매일이 먹덧과 함께 지옥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의 나는 약한 멘탈을 겨우 붙잡으며 하루 하루 버텨가고 있었다. 양치를 하다가 첫 토를 했던 그 날, 내가 화장실에서 거울을 보며 흘린 눈물은 아직도 내 마음 속에서 마르지 못했다. 



먹덧과 더불어 체력은 신기할 정도로 나빠져갔다. 원래도 많이 움직이는 걸 딱히 선호하지 않았고, 저질에 가까운 체력을 가지고 있긴 했지만 임신이 나를 이리도 무기력하게 만들 줄은 몰랐다. 끊임없이 쏟아지는 잠과 끊임없이 끓어 오르는 먹덧 증상. 그러는 와중에 바빠도 너무 바쁜 일을 병행해가며 나의 몸은 너덜너덜해졌달까.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오로지 잠만 자고 싶었던 적이 한 두번이 아니었으나, 또다시 출근을 해야 할 수 밖에 없었다. 일을 하면서도 졸음과의 사투를 벌여야 했고, 갑자기 울렁거리는 속을 달래기 위해 가방 속에는 레몬맛 사탕과 비스켓들이 한가득이었다. 일하다 혹여나 토를 할 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달래며, 사무실에 앉아있는 것조차 가시방석이었다. 그땐 그랬다. 누가 나한테 거짓말을 한 것도 아닌데, 난 누군가에게 배신을 당한 것처럼 치떨려 했다. '아니, 임신이 이렇게 힘들다고? 나 아직 만삭도 아닌데?' 임신이 그냥 아이를 가진 것으로 끝나는게 아니라는걸 그 시기에 뼈절이게 느꼈다. 아, 정말 아이를 가진다는 것이 일차원 적인 개념으로 끝날 문제가 아닌, 존중의 마음을 담아 이해를 해야 하는 문제구나 라는 걸 말이다. 


그리고 이 시기, 임신과  출산을 경험했다면 누구나 공감을 할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남편의 역할이라는 걸 말이다. 구역질을 하고 토를 하고, 쓰라린 배를 움켜 쥐며 잠들기 전까지 고통스러워 하는 임산부의 옆에서 든든한 힘이 되어줘야 하는 사람이 바로 다름 아닌 남편이다. 무엇을 먹여야 잘 먹을지, 무엇을 해야 먹덧 혹은 입덧의 고통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날 수 있을지 고민해주고 걱정해 줄 한 사람. 남편의 노력과 희생이 얼마나 필요하고 또 고맙게 느껴지던지. 우리가 비로소 커플이 아닌, 진정으로 한 가족이 되어 간다는 걸 점차 피부로 느껴가고 있었다. 

작가의 이전글 슈퍼우먼이 되기로 결심한 임산부

브런치 로그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