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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노엘 Aug 12. 2020

우생마사牛生馬死

날씨도, 현실도 내 뜻대로  되지 않을 때

나는 태생적으로 비를 좋아한다.

비가 주는 편안함, 무겁게 가라앉는 몸, 빗소리를 들으며 잠이 들 때의 행복함까지 모든 것을 사랑한다. 

비가 개인 후 들이마시는 공기의 상쾌함과 파란 하늘, 가끔은 선물 같은 무지개까지 무엇 하나 싫은 것이 없다.

 하지만 이번 장맛비는 정말 싫다

그동안 좋아했던 감정들이 어색할 만큼 싫어진다.

정말 이번 장마는 종잡을 수가 없다.

며칠 내리다 보면 맑은 하늘을 보겠지라는 안이한 기대는 번번이 무시당했다. 비가 그친 후 땅 위로 슬그머니 올라오는 습한 공기를 햇살에 말릴 틈도 없이 다시 비가 쏟아부으니 말이다. 아침 출근길 오랜만에 햇살이 보이길래 기분이 좋아져서 롱 원피스를 입고 집을 나섰다. 5분 정도 운전을 하며 달리다 보니 후드득 빗방울이 창문을 두드린다. 햇살은 어디 가고 파란 하늘이 금세 잿빗구름으로 가득하다.

비 오는 날 긴 원피스는 걸을 때 매우 불편하고 우산을 쓰고 걸어도 금방 옷이 젖어버린다.

비 오는 날은 짧은 원피스나 반바지에 슬리퍼가 최고인데 속았다는 기분에 유쾌함은 금세 투덜투덜 불평으로 이어진다.


판데믹 이후 세상의 변화를 예측한다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듯 이번 여름 날씨의 예측도 만만치 않게 힘든 것이 사실인가 보다. 기상청을 물 먹이는 아주 고약한 날씨 녀석이니 말이다.      

아침 뉴스에 늘어난 빗물에 소가 떠내려가다가 극적으로 구조되었는데 구조 후 송아지까지 낳았다는 소식을 접했다. 생명이 있는 모든 것은 소중하니 소의 구조 소식은 감사의 소식이다. 누구든 늘어난 빗물에 피해가 없었으면 싶었다. 

기사를 접하다 보니 순간 우생마사牛生馬死라는 고사성어가 떠올랐다.

홍수에 힘센 말은 자신의 힘을 믿고 물살을 거슬러 가려다가 결국 힘이 빠져서 죽고 소는 물살에 몸을 맡기고 유유히 떠내려가다가 조금씩 뭍으로 방향을 향해 목숨을 구한다는 이야기가 지금의 우리들 삶의 모습에도 딱 맞는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코로나 이후 누구 하나 예외 없이 힘이 드는 상황이다. 그저 오늘을 살아갈 수 있음에 감사하고 하루를 버틸 수 있음에 또 감사하며 살아갈 뿐이다. 간혹 지나친 긍정적 성격으로 올해 초 창업으로 한 해를 시작하신 분들이 주변에도 몇 분 계신다. 비현실적 낙관주의자들이다. 그들은 설마 내게 그런 힘든 상황이 올까라는 생각으로 마음먹은 대로 과감히 일을 시작했고 근황은 물어볼 필요가 없을 정도로 힘들기만 하다고 말하신다. 못 접어서 버티는 중이라고...      


누구든 잘 나가던 때는 분명 있었다.

 스스로의 실력과 기회에 힘입어 승승장구하면서 영원히 풍요를 누리리라 생각했을 것이다. 절대 홍수에 떠내려가는 것을 상상도 못 했을 것이고 어떻게든 살아보려 최선의 노력을 하다 보면 방법은 생겨나리라 쉽게 생각했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 만난 코로나 이후의 세상은 우리의 노력만으로 극복이 힘들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고 있다. 우리는 물의 흐름에 몸을 맡기는 소의 지혜를 당분간은 배워야겠다. 지금은 누가 구해줄 수도 없고 물 밖으로 나갈 방법을 찾지도 못했지만 조용히 상황을 주시하며 숨만 쉬면서라도 몸을 맡겨보자. 그렇게 떠내려가다 보면 하나씩 생각나는 것들이 있을 테고 조금씩 행동하다 보며 강기슭을 만나서 당당히 땅에 발을 딛고 걸어 나오는 기회를 만날 수도 있을지 누가 알까?

물에 둥둥 떠내려오던 소도 속으로는 얼마나 불안했을까? 

오만가지 걱정이 있었을 것이다.

지금의 우리들 머릿속도 오만가지 생각들로 편할 날이 없다.

하지만 준비하고 기다려야만 한다. 

구조의 타이밍을.....

하늘도 스스로 돕는 자를 돕듯이 반드시 새로운 기회를 만날 것이라는 희망만큼은 버리지 말았으면 좋겠다.

나도, 우리도.     


물들어왔을 때 노 저으라는 말이 있다. 

지금의 경제상황은 물이 다 빠져서 흙바닥 위에 올라앉은 상황이다.

 지금 노를 젓고 더 열심히 노력하면 성공할 가능성이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십중팔구 노가 부러지던지 팔이 아파 그만두던지 둘 중 하나가 될 가능성이 훨씬 클 것이다. 

잠시 힘을 빼자.

지금은 노를 내려놓고 배 위에 누워보자. 

평소 바라보지 못했던 하늘도 보고 별도 바라보고 바람도 느껴보자. 

그냥 온전히 물들어올 때를 기다려보자. 

세상 살아가다 보면 내 의지와 상관없이 힘든 상황을 만날 수도 있다. 

누구의 탓도 아니니 원망은 하지 말자.

온몸에 힘을 빼고 순리대로 흘러가게 내버려 두자. 

흘러가면서 만날 새로운 기회를 기다려보는 것이다.

희망만큼은 꼭 가지고 기회를 기다리자. 

    

내일은 비가 그치고 맑은 하늘을 만나고 싶다.

나의 간절한 바람이 더 간절해지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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