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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노엘 Aug 26. 2020

삶은 오뒷세우스의 귀향처럼

무엇을 만나게 될지 아무것도 모르지만 여행처럼 떠나는 모험의 삶을 살자

내 삶이 심플 라이프 그 자체였을 때가 있었다.

8시 출근, 6시 퇴근

직장인의 삶, 엄마의 삶

그 사이에는 다른 어떤 것도 시간을 빼서 할 수 있는 시간이 없을 만큼 하루가 초침처럼 정확히 움직였다.

지금부터 뛰어.

앞만 보고 뛰어.

내 인생에 태클을 걸지 마.

진성의 트로트 노랫말처럼 정신없이 앞만 보고 뛰었던 30대, 40대는 감사하게도 체력이 받쳐주는 시절이었다.

그 바쁜 시간들 속에서 내게 일상을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은 남편의 여름휴가와 아이들의 여름방학이 맞춰지는 기간이었다.

그때 결심했다.

휴가만큼은 고생한 나를 위한 여행으로 준비하자.

그리고 무조건 떠나자.

아이들이 모두 성장하고 나면 부모와 함께 할 시간이 더 없어진다는 것을 알았기에 방학기간만큼은 부모와의 추억 만들기에 최선을 다했다. 현실의 바쁜 일상을 훌훌 털어버리고 잠시라도 공간이동을 할 수 있는 여행은 바쁜 시간 속의 휴식이 주는 최고의 달콤함이었다. 소중한 가족들과  낯선 여행지에서 낯선 음식들을 먹으며 낯선 공간이 주는 긴장감과 호기심이 즐겁기만 했다. 아이들의 초중고 시절 공부보다는 추억 만들기에 공을 들이도록 나를 일깨워주었던 칼럼 속 문장 하나가 지금도 기억난다.

여행을 떠나보지 못한 사람은 인생의 책장을 한 장도 넘겨보지 못한 사람이다.

이 짧은 문장은 살아있는 듯 생명력이 느껴졌고 결국은 내 가슴속에 훅 들어와 나를 움직이게 만들었다.

내 삶의 책장을 넘겨보리라는 목표로 계획을 세우고 꿈을 꾸며 다람쥐 쳇바퀴 돌듯하는 내 삶을 버텨내는 힘을 키웠다.

'조금만 버티면 돼. 새로운 책장을 넘길 수 있어. 나는 내 인생의 책을 쓰는 거야.'

누군가는 말한다.

길 떠나면 고생인데 뭐하러 돈 쓰고 시간 써서 고생하러  가느냐고.

하지만 내 마음속에 답은 준비되어 있었다.

돈 쓰고 시간 써서 떠나는 고생이야말로 나를 살게 해 주는 힘이 된다는 것을.....


인문학을 공부하면서 고전 읽기를 처음 접하게 되었다.

입문서 같은 일리아스 오뒷세이아를 읽으며 10년의 트로이 전쟁 후 고향 이타케를 향한 귀향에 10년의 세월이 걸린 오뒷세우스가 처음에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지혜로운 오뒷세우스가 키르케의 유혹이나 칼립소의 제안을 따랐다면 불멸의 삶을 얻을 수도 있고 위험과 고통이 없는 편안한 삶을 살 수도 있었을 텐데 굳이 힘든 모험을 10년 동안이나 겪으면서 20년 만에 고향땅을 밟았으니 말이다. 결국 고난의 세월을 이겨내고 고향에 도착한 오뒷세우스는 아내 페넬로페와 편안하게 오래오래 잘 살았답니다로 이야기가 끝날 것이라 생각했지만 그 이후에도 오뒷세우스는 모험의 길을 떠났다고 한다. 오뒷세우스야 말로 인생의 책장을 수도 없이 넘겼으며 오롯이 주어진 삶을 자신의 의지대로 경험하고 이겨내며 살았기 때문에 2500년이 지난 지금도 고전의 입문서가 되어 많은 이들에게 끊임없이 읽히며 삶의 의미를 생각하게 만들어준다.


단 한 번도 현실의 편안함에 안주하지 않고 부딪치고 모험하고 느끼고 경험하는 오뒷세우스의 삶.

힘들었지만  모험과 여행을 통해 배움이 있고 깨달음이 있는 삶이었다.

고전을 읽다 보면 주인공의 삶이 수천 년이 지난 지금의 내 삶의 모습과 오버랩이 된다.

그리고 내 삶 속에 질문을 던진다.

나라면 과연 그렇게 도전하는 길을 떠날 수 있었을까?

달콤한 현실과의 타협에서 머무르고 싶지는 않았을까?

하나의 목표 달성을 위해 10년, 20년을 한결같이 기억하고 따를 수 있었을까?

집 떠나면 고생인데 또다시 모험 같은 여행을 떠날 수 있었을까?

무수히 많은 질문들을 내 안에 던져보며 과연 나라면 어땠을까를 생각하고 또 생각해본다.


단순하게 휴식과 추억 만들기 같은 소소한 즐거움을 얻기 위한 것이 나에게는 여행의 목적이었다면

오뒷세우스의 여행은 진정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는 여행이었다.

내가 상상했던 여행은 바쁜 일상을 벗어나는 하나의 탈출구 같은 것이었다면

오뒷세우스의 여행은 끊임없이 인생의 새로운 목표를 만들고 도전하는 여행이었다.

내가 넘기고자 했던 삶의 책장은 여행 에세이 정도의 읽을거리였다면 오뒷세우스의 삶은 스펙터클한 장편소설이었다. 생각이 근시안적으로  짧았던 나는 칼럼의 내용을 있는 그대로

떠남과 즐김의 여행이라고만 생각했다는 것을  고전을 읽으면서 깨달았다.

하지만 이제는 그 문장의 뜻을 정확히 이해할 수 있다.

여행의 떠남이란 단순히 캐리어를 끌고 비행기를 타고 휴식을 위한 떠남이 아니다.

인생에서 여행을 떠남이라 함은 겪어보지 못한 미래의 경험이고 도전이며 부딪침인 것이다.

낯선 경험 속에서 끝없이 자신을 시험하고 극복하는 과정에서 스스로를 단련하고 자신감을 얻는 과정이다.

그러한 과정을 통해서 남들의 이야기가 아닌 내가 겪은 이야기들만 엮어가는 나만의 책이 되는 것이다.


이왕이면 부딪침 없이

이왕이면 꽃길만 걷기를 우리는 소망한다.

하지만 얼마나 밋밋하고 재미없는 삶인까?

다소 위험하지만 경험해야만 한다.

다소 불안하지만 부딪쳐야만 한다.

다소 아프지만 겪어보아야만 한다.

삶은 그렇게 쓰여지는 나만의 여행기록 인생 책인 것이다.


여행이 끝남은 삶이 끝나는 것이다.

우리는 아직도 끝나지 않은 여행길의 나그네이다.

무엇을 만날지, 무엇을 얻게 될지 두렵지만

오뒷세우스의 지혜처럼 매 순간 나만의 지혜로움으로 잘 극복하 살아가리라.

그것이 이 세상에 와서 해볼 수 있는 가장 큰 즐거움일 테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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